K리그/시즌별 외국인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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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 변천
3. 시즌별 분류
3.1. 1983 시즌
3.2. 1984 시즌
3.3. 1985 시즌
3.4. 1986 시즌
3.5. 1987 시즌
3.6. 1988 시즌
3.7. 1989 시즌
3.8. 1990 시즌
3.9. 1991 시즌
3.10. 1992 시즌
3.11. 1993 시즌
3.12. 1994 시즌
3.13. 1995 시즌
3.14. 1996 시즌
3.15. 1997 시즌
3.16. 1998 시즌
3.17. 1999 시즌
3.18. 2000 시즌
3.19. 2001 시즌
3.20. 2002 시즌
3.21. 2003 시즌
3.22. 2004 시즌
3.23. 2005 시즌
3.24. 2006 시즌
3.25. 2007 시즌
3.26. 2008 시즌
3.27. 2009 시즌
3.28. 2010 시즌
3.29. 2011 시즌
3.30. 2012 시즌
3.31. 2013 시즌
3.32. 2014 시즌
3.33. 2015 시즌
3.34. 2016 시즌
3.35. 2017 시즌
3.36. 2018 시즌
3.37. 2019 시즌
3.38. 2020 시즌
3.39. 2021 시즌
3.40. 2022 시즌
3.41. 2023 시즌
3.42. 2024 시즌
1. 개요[편집]
K리그1 및 K리그2에서 활동한 역대 외국인 선수를 시즌별로 정리해 놓은 문서다. 역대 외국인 선수을 국가별로 정리한 내용은 K리그/국가별 외국인 선수에서 확인할 수 있고 아시아 쿼터제를 통해 입단한 외국인 선수에 대한 내용은 아시아 쿼터제/K리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대] 표시는 국가대표 성인 A대표팀 출장을 기준으로 한다.
2.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 변천[편집]
3. 시즌별 분류[편집]
3.1. 1983 시즌[편집]
-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 기용 구단은 포항제철 돌핀스로 포항제철의 브라질 협력사의 주선으로 2명의 브라질 선수를 데려온 것이 K리그 외국인 선수 역사의 첫 시작이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활약상은 미미했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브라질로 돌아갔다.
3.2. 1984 시즌[편집]
- 놀랍게도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가 3명이나 한국 무대에서 뛴 시즌이다. 조지 알하산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하며 무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을 2차례나 수상한 아프리카 특급 공격수였고, 피야퐁 피우온은 1984년 LA 올림픽 지역예선 태국 대표로 우리나라와 맞붙어 우리에게 패배를 선사하는 골을 넣으면서 한국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태국 대표팀 유망주였다. 또한 시즌 중반 포항제철에 입단한 윌시뉴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자국 명문 플루미넨시에서 주전으로 뛰었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도 있는 특급 이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선수 모두 1980년대 외국 문화에 무지했던 한국의 환경에 적응을 어려워하며 명성만큼의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고 결국 이 중 피아퐁만이 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 로프 란스베르헌이 시즌 도움왕 타이틀을 따냈다.
3.3. 1985 시즌[편집]
- K리그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을 피야퐁 피우온이 차지했다. 피아퐁은 도움왕까지 석권하며 말 그대로 리그를 지배했다.
3.4. 1986 시즌[편집]
3.5. 1987 시즌[편집]
3.6. 1988 시즌[편집]
- 지금까지도 유일한 외국인 선수 없는 시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개최했던 연도다.
3.7. 1989 시즌[편집]
- 현재도 브라질 다음 가는 외국인 선수 수급 경로인 동유럽에서 온 선수가 처음 등장한 시즌이다. 특히 타데우시 시비옹테크는 매우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시즌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고 테드의 성공을 보고 구단들이 앞다투어 동구권 선수를 적극 영입하기 시작했다.
3.8. 1990 시즌[편집]
- K리그 최초의 외국인 골키퍼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일화 천마의 루마니아 국적 선수인 마르첼 러저레아누
3.9. 1991 시즌[편집]
- 확실히 동구권이 대세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시즌. 포철의 그렉 브라운을 제외하고는 전원 구 공산권 유럽 출신 선수엿다. 거기에 다수가 국가대표 출신이라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 공산권 붕괴 직후의 경제 위기로 K리그가 일종의 특수를 탄 셈이다.
3.10. 1992 시즌[편집]
- 발레리 사리체프가 처음 K리그에 등장한 시즌이다. 그리고 사리체프는 2000년 신의손이란 이름으로 귀화를 한 뒤 2004년까지 활동하는 최장수 외국인 골키퍼가 된다.[4] 또 한명의 K리그 레전드 라데 보그다노비치도 이 때 데뷔했다. 사리체프와 라데는 90년대 K리그 공, 수의 탑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3.11. 1993 시즌[편집]
3.12. 1994 시즌[편집]
- 1994 미국 월드컵 준비로 인해 각 구단의 대표급 선수가 자주 차출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이 시즌부터 차출 인원에 따라 외국인 선수를 1명 더 기용할 수 있는 제한적 확장을 도입했다.
- 1992 시즌부터 등장한 라데 보그다노비치가 본격적으로 리그를 씹어먹기 시작한 시즌이다.
3.13. 1995 시즌[편집]
3.14. 1996 시즌[편집]
3.15. 1997 시즌[편집]
3.16. 1998 시즌[편집]
- K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선수가 나왔다.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차출된 미첼 펜세가 그 주인공. 그러나 그는 이후에 저지르는 사건사고로 불명예의 유명세를 타게 된다.
3.17. 1999 시즌[편집]
- 미첼 펜세에 이어서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 크리스티안 둘카가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먹튀의 전설이 된다(...)
- 이시즌부터 K리그 외국인 골키퍼 영입이 금지되었다.
3.18. 2000 시즌[편집]
3.19. 2001 시즌[편집]
- 창단 이후 여러 내부 사정으로 인해 무려 4개 시즌이나 외국인 선수 없이 리그를 치렀던 대전 시티즌이 드디어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를 기용한 시즌이다. 그 중 영입 1호 선수인 파파 오마르 콜리는 아직까지도 대전 올드 팬들이 기억하는 선수다.
3.20. 2002 시즌[편집]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했던 레오마르 레이리아가 전북에 입단해 큰 화제가 되었다.
- 수원 삼성의 가브리엘 포페스쿠가 리그 역사상 3번째로 월드컵 본선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었다.
3.21. 2003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기용할 수 없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가 무려 둘이나 리그에 들어왔다. 먼저 브라질 리그에서 엄청난 거물급 선수인 마그누 아우베스가 전북 현대에 시즌 전 입단해 리그를 평정했고, 후반기에는 브라질 대표로 2003년 CONCACAF 골드컵 본선 무대까지 밟은 유망주 공격수 나드손이 수원 삼성에 입단해 반년간 14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 처음으로 시즌 중 대한민국 귀화를 통해 외국인 선수에서 내국인 선수로 신분이 바뀌는 사례가 등장했다. 이전 발레리 사리체프의 경우 처럼 시즌 시작 전 귀화로 한국인이 된 경우는 있었지만, 시즌 진행중에 이런 사례가 등장한 적은 없었다. 주인공은 데니스 락티오노프와 야센코 사비토비치로 두 선수는 이성남, 이싸빅이란 이름으로 한국인이 되어 리그 중후반기를 소화했다. 게다가 이 두 선수는 모두 성남 일화 소속이었으므로, 성남 일화는 여름이적시장에서 무려 2명이나 외국인 선수를 더 기용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77] 데니스와 이싸빅은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인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
- 부산 아이콘스에서 활약했던 잉글랜드 국적의 제이미 큐레튼은 잉글랜드 프로 축구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인 EPL부터 9부 리그인 에섹스 시니어리그까지 무려 9개 디비전에서 모두 골을 넣어본 최초의 선수로 노익장의 화신이다. 이 선수의 커리어 유일무이한 해외무대 진출이 바로 K리그였다.
- 훗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를 차지하는 그라피테가 바티스타라는 등록명으로 안양 LG에서 6개월간 뛰었었다. 심지어 9경기에서 0골 0도움의 극심한 부진을 기록하며 조기 방출되었다.
3.22. 2004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리그 역사상 4번째 월드컵 본선 경력 외국인 선수인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 알파이 외잘란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그러나 그는 앞선 미첼 펜세보다도 더 추한 모습으로 리그를 빠르게 떠났다. 경기장에서도 별로였고, 인간적으로도 매우 별로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또한 유로 2000 본선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멤버였던 파울루 힝크도 전북 현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이 선수 또한 저조한 경기력으로 리그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3.23. 2005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월드컵 본선 경력이 있는 세바스티안 치미로티치가 인천에 입단하며 외국인 선수로는 5번째 월드컵 본선 출전자 K리거가 되었다. 그러나 3경기 1골로 매우 부진했고, 팀과의 이별도 매우 깔끔하지 못했다.
- 라디보예 마니치는 시즌 중반 귀화를 선언하며 마니산이란 이름으로 한국인 선수로써 등록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후 자녀 교육문제에 직면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바로 세르비아로 떠났다. 다시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돌아갈 수도 없던게, 이미 그가 귀화하면서 여유가 생긴 1장의 영입 권한을 세바스티안 치미로티치로 채웠기 때문이다.
- 한편 수원 삼성은 유로 2004에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던 마토 네레틀랴크를 영입해 또 한명의 빅네임을 영입했다.
3.24. 2006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인정받는 아디의 K리그 데뷔시즌이다. 이 시즌 이후 아디는 7년간 FC 서울에서 선수로, 그리고 은퇴 후 5년간 코치로 도합 12년을 K리그에 몸담게 된다.
3.25. 2007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현 리그 최장수 외국인 선수인 데얀 다먀노비치가 이 시즌에 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데뷔시즌부터 19골을 몰아치는 위력을 발휘했다.
3.26. 2008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3.27. 2009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아시아쿼터로 리웨이펑이 K리그에 등장했다.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 본선을 경험한 몇 안되는 선수다. 그는 기존 중국 국대로 국내팬들에게 쌓았던 거칠고 깡패같다는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시키며 오히려 투혼과 파이팅 넘치는 수비로 수원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 반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의 주역인 토다 카즈유키는 나올때마다 잘 해줬지만 잦은 부상으로 1년만에 방출되는 씁쓸한 결말을 맞는다.
- 또한 200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멤버인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우리시오 몰리나가 성남 일화에 입단하며 K리그에 데뷔한 시즌이다.
3.28. 2010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광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2006 독일 월드컵에 각각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던 다카하라 나오히로와 오그넨 코로만이 리그에 등장했다. 두 선수 모두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수준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활약을 해줬다는 평이다.
3.29. 2011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상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 시즌 개막 직전 2011 AFC 아시안컵에서 자주 봤던 아시아 각국 대표급 선수가 대거 K리그에 진출했다. 이전부터 성남 일화의 수비 주축이었던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는 아시안컵에서 호주 대표팀 준우승의 주역이었고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미드필더였던 황보원은 대회가 끝난 직후 전북 현대로 이적해 왔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핵심 자원 중 세르베르 제파로프가 FC 서울로 완전 이적을 해 왔고 알렉산데르 게인리흐는 수원 삼성, 티무르 카파제는 인천 유나이티드로 무려 3명이나 K리그에 입성했다.
3.30. 2012 시즌[편집]
- 군경 구단인 상주 상무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