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 (r3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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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방송공사, 영문약칭 KBS[4] 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 방송사로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을 운영하며, 자회사를 통해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한다. 본사 주소는 (우)0723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5] EBS처럼 메인 방송 채널이 1TV, 2TV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6]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공식 홈페이지 문구
2001년 3월 3일[7] 이후 약칭인 한국방송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방송공사.[8] 별명으로는 크브스, 케백수 등이 있다.
2023년 3월 3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였다.
2. 상징[편집]
2.1. 기업 정신[편집]
1973 ~ 2003[9]
- 사훈
품위있는 방송, 능률적인 경영, 협조 속의 단결[10]
1992
- 방송이념
문화의 샘터, 겨레의 길잡이[11]
- 경영목표
믿음주는 방송, 앞서가는 기술, 함께하는 경영
- 인재상
봉사하는 방송인, 탐구하는 창조인, 서로돕는 협동인
1993 ~ 1994
- 방송이념
인간 사랑, 자연 사랑, 나라 사랑 - 그린정신
2015 ~ 2019
- 비전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
- 미션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Beyond TV! Rock the World!)
- 핵심가치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 공정, 혁신, 열정, 소통
2019 ~ 2022
- 중장기 목표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신뢰, 창의, 혁신
- 5대 세부목표
독보적 신뢰, 압도적 영향력, 콘텐츠 도달률 강화, 글로벌 미디어로 변화, 창의적 조직으로 변화
2023 ~
- 중장기 목표
공영방송 50년, 국민의 KBS로 거듭나겠습니다
- 5대 핵심비전
개방, 신뢰, 안전, 품질, 다양성
2.2. 로고[편집]
KBS(한국방송공사) 로고 변천사 (사표-社票)
- 2세대 로고 (1973년 3월 2일 ~ 1984년 10월 28일): 문화공보부 산하 국영 중앙방송국에서 현재의 한국방송공사로 개편되면서 쓰게 된 로고. KBS 무대부에 있었던 변승우가 디자인했다.
- 3세대 로고 (1984년 10월 29일 ~ 현재): KBS의 최장수 CI. 디자인포커스 대표였던 정준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글씨체는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15] 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방송국 Cl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CI다.[19] 여담이지만 저 로고, 원래는 서울 올림픽 로고 경쟁작 중 하나였고, 낙선한 이후 한국방송공사가 써먹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회에 당선된 양승춘 디자이너는 이후 SBS의 초대(初代) 로고를 디자인했다.근거 1, 근거 2 로고피디아에 따르면 1983년판이 있다고 하는데, 영상이 삭제돼서 상세 내용은 불명.
- 4세대 로고 (2024년 ?월 ~ 예정): KBS가 CI 개정을 발표하기 1년 전 시점인 2022년에 이미 KBS CI 개정 용역을 입찰해 4곳의 브랜딩회사를 추려냈었다. 입찰공고, 입찰 후보 통지 KBS는 일단 2023년 3월에 CI 초안을 발표한 뒤에 개정 절차를 걸쳐 같은 해 9월부터 방송에 적용한다고 언론에 밝혔다.[20] 초기 KBS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미디어스 기사
그 후 한 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3년 5월에 KBS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플랫폼인 "KBS 국민패널" 회원들을 상대로 CI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2023년 7월 5일, 특허청에서 운영하는 KIPRIS에 새로운 CI로 추정되는 로고가 올라왔다.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된 상태지만, 아직 등록이 결정되지는 않았으며, 7월 시점 기준으로 KBS에서도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는 없다. 다만, 9월에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라는 큰 스포츠 대회가 열리는데, 이 시기에 로고를 변경하면 스튜디오, CG 작업을 두 번하는 꼴이므로, 이 대회까지는 마이크 캡, 중계진 패치 등에서 3세대 로고를 유지하고, 효율적인 로고 변경을 위해 항저우 아시안 게임 이후에나 로고 개정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2.3. 마스코트[편집]
-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출처 voozclub에서 만들었다.(포트폴리오)[21]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디자인의 호불호가 꽤 많은 편으로, 루리웹에 올라온 글에서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난장판이다.
동글이 다시 데려와이 때문인지 초창기에만 많이 쓰이고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에는 올림픽 기간이나 몇몇 ID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다.
-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다들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방송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KBS 본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정식 이름은 K2다. 그런데 9년 전에 나온 KBS 스테이션 ID에 대한 홍보지에는 공이라고 쓰여있다.
2015년부터는 방송 안내나 SNS 페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이 마스코트에서 팔다리를 없엔 모습의 노란 공 디자인은 간간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 새 마스코트인 케빗에게 대를 이어달라는 말과 함께 13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인 깔깔티비에서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채널의 마스코트 노릇을 하고 있다.
2.4. 슬로건[편집]
2.4.1. TV[편집]
2.4.1.1.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세상[23]
2.4.1.2. 2003년 ~ 현재[편집]
- 한국인의 중심채널[24]
- 젋은 채널[25]
- 사랑하기 때문에[26]
- Beyond the TV! Rock the World![27]
- 다함께 KBS2[28]
- TV는 2TV가 재미있습니다[29]
- TV는 2TV, 재밌다[30]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31]
- 오늘을 담는 창[32]
- 내일을 여는 빛[33]
- Digital · Disaster · Depth[34]
- 오늘을 담고 내일을 열다
2.4.2. 라디오[편집]
2.4.2.1. 1970년대[편집]
2.4.2.2. 1980년대[편집]
- 슬기로운 생활의 벗[37]
2.4.2.3.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내일[38]
2.4.2.4. 2003년 ~ 현재[편집]
3. 마케팅[편집]
3.1. 사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 사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KBS 사가
김수철 작사ㆍ작곡
밝은 미래를 함께 여는 우리는 KBS
새 시대 새로움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의 진실한 열정은 세계를 밝혀주리라
우리는 KBS 사랑과 정의를 전해주리라
우리는 KBS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리라
KBS 한국방송
맑은 지혜가 샘 솟는다 우리는 KBS
사랑과 믿음이 모여 동서남북 하나가 된다
우리의 인류애로 온 누리엔 평화의 꽃 피어난다
우리는 KBS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리라
우리는 KBS 이 세상 환하게 비춰주리라
KBS 한국방송
3.2. 로고송[편집]
KBS 노래 (1974년 ~ 1993년)
1974년 3월 1일부터 라디오 시그널로 쓰기 위해 노래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 쓴 곡이다. 일종의 로고송이다. 1970년대에 TV에도 중간중간에 나왔던 것으로 보이며, 1984년부터 1993년까지 KBS 9시뉴스 시작전 ID로고송으로 멜로디 일부가 나온 적이 있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방송시작 고지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며 1992년과 1993년 총 두 해에 걸쳐서 2TV ID 로고송으로도 쓰이기도 했다.[42] 2005년까지 KBS 사회교육 제1방송(972kHz. 현재 KBS 한민족방송)의 오후 1시 오프닝때도 이 음악이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는 실로폰음이 나왔다. 꽤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로고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KBS 로고송
역대 KBS 1TV 로고송에 대한 내용은 KBS 1TV 문서 참고하십시오.
2021년 8월 16일에 공개된 새 로고송의 여러 버전에 대한 내용은 오늘을 담는 창 문서 참고하십시오.
역대 KBS 2TV 로고송에 대한 내용은 KBS 2TV 문서 참고하십시오.
3.2.1. TV[편집]
3.2.1.1. KBS 1TV[편집]
- 중앙방송국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전) #
- KBS 텔레비전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후 ~ 1980년 11월)
- KBS 제1텔레비전입니다 (1980년 12월 ~ 1984년)
-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 (1988년)
- 영원한 우리들의[43] KBS KBS (1991년 ~ 1993년)
- KBS KBS 제1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44]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45] (2001년 3월 3일 ~ 현재)[46][47]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 (2018, 2019년, 국경일)[48]
3.2.1.2. KBS 2TV[편집]
- KBS 제2텔레비전입니다 (1980년대 초반 ~ 1984년)
- 즐겁고 유익한 KBS 제2텔레비전 (1984년 ~ 1987년)[49][50]
-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제2텔레비전 (1987년 ~ 1991년)[51]
- KBS KBS 제2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년 6월 27일)[52]
- KBS KBS KBS 한국방송 (사랑해) (2003년 6월 28일 ~ 2009년 일자 미상)[53][54]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년)
3.3. 라디오[편집]
- 사랑하기 때문에 KBS(2007년 ~ 현재)[55]
- (반주) KBS 1라디오(2013년 ~ 2018년)[56]
- 대한민국 중심채널 KBS 1라디오(2018년 ~ 현재)[57]
-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KBS 해피FM(2007년 ~ 현재)[58]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2018 ~ 현재)[59]
- 너와나의 U-KBS MUSIC
- Listen to the music
3.4. 방송지표[편집]
4.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사옥[편집]
5.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 12. 1.(본관) / 1988. 6.(신관)~현재)[편집]
- 본관: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12,396.7m² 규모로 1976년 12월 1일 준공되었으며, 현재 전략기획실, 경영본부, 라디오센터, 아나운서실 등이 사용하고 있다. 또 견학관인 KBS ON도 4~5층에 자리잡고 있다.
- 신관: 지하 2층, 지상 9층, 연면적 63,987m² 규모로 1988년 6월 준공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 용도로 지어졌으며 현재 편성본부, 보도본부, 제작1본부, 예능센터, 기술본부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62]
- 공개홀
- KBS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10,890m², 좌석수 1,661석 규모로 1991년 9월 7일 개관하였다. 현재 열린음악회, KBS 연기대상, KBS 가요대축제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공연 대관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간 관객 입장이 끊겼다.
- 본관 TV 공개홀(TS-1): 현재 아침마당, 누가 누가 잘하나, 시사 직격, KBS 119상 시상식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이 이루어진 곳이다.
- 신관 TV 공개홀(TS-15): 2000년 준공되어 현재 뮤직뱅크, KBS 연예대상, KBS 내 삶을 바꾸는 선택, 더 시즌즈에서 사용하고 있다.[63] 역시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일반 관객들은 입장이 허용되지 못했다.
- 별관 공개홀(TS-D): 현재 가요무대와 각종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 KBS 아트홀: 구 라디오공개홀로 1985년 개관하였다.
- 연구동 : 지상 2~5층 규모의 건물 4동(3~5동, 관리동. 1~2동은 결번, 연면적 15,487.63m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77년에 완공되었다. 본래 국회 의원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1990년에 양도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나 사택으로 생각하는 그 건물이다.[64] 현재 미디어기술연구소, 심의실 및 본사 건물에 입주하지 못한 각종 부서들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개그콘서트 연습실도 있었으나, 종방이후 미사용.
사옥 개방은 다른 지상파 3사에 비해 개방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오전 5시 부터 ~ 밤 12시 까지 건물 개방이 된다. 출입가능 범위는 신관, 본관 1층 로비 등은 자유로이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나 라디오 스튜디오가 오픈스튜디오 방식이라서 매일밤 DJ 진행자의 팬들이 모여서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크게 문제없이 이용이 가능하긴 하나, 일부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잠긴다.
2016년 고대영 사장 시절 기존의 연구동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66,891.30㎡ 규모의 '미래방송센터'를 세우고 이후 기존 본관과 신관을 리모델링하여 여의도 별관과 수원센터의 기능을 죄다 흡수하려 했으나,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이듬해 고 사장 퇴진으로 표류 상태이다. 게다가 양승동 사장 체제 이후에도 재원조달 문제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관련 부서인 미래방송센터추진단이 아예 공중분해까지 되어 신사옥 건립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사실 KBS의 여의도 신규 사옥 건립은 여러 번 추진된 바 있으나, 본관과 별관의 거대한 규모로 인해 번번히 무산돼왔다. 본관은 40년이 넘은 노후 건조물이지만, 연면적이 11만 제곱 미터가 넘고, 신관의 연면적은 63,000제곱미터이다. 2014년 개장한 MBC 글로벌미디어센터의 연면적조차도 15만 제곱 미터에 못미치기 때문에, KBS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신규 사옥의 필요성으로 '공간 부족'을 절대로 주장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N(케이블 채널)은 2007년 기어이 상암 미디어센터를 건설해 본사를 옮겼기 때문에(#)[65] 여의도 사옥의 대규모 리모델링이나 신축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TV스튜디오는 본관에 7개(1~7), 신관에 4개(11~14), 별관에 3개(A, C, D)가 위치해 있다. 라디오스튜디오는 본관에만 있다.
5.2. 여의도 별관 (1980. 12. 1.~현재)[편집]
1980년 4월 준공되어 동양방송의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다가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사라지자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드라마센터, 공영미디어연구소, 콘텐츠사업 관련부서, KBS 사우회, KBS한국어진흥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5.3. 수원센터 (2000. 11.~현재)[편집]
연면적 75,460.47㎡ 규모로 2000년 11월 준공되었다. 현재 드라마센터[66] , KBS경인방송센터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교양 및 예능도 여기서 녹화한다. 인재개발원, 방송박물관, KBS수원아트홀도 같은 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계동행정복지센터도 세들어서 위치하고 있다.
5.4. 상암 미디어센터 (2007. 12.~현재)[편집]
6. 특징[편집]
6.1. 법인현황[편집]
- 설립근거: 방송법 제43조 1항 외 관련 법령
- 임무 및 기능: 동법 §43~§68 참조[67]
- 조직현황: #KBS 홈페이지 조직도 참조.
- 인력현황: 사장 포함 상임임원 10인[68] , 비상임임원(이사) 11인[69] , 정규직 총원(T/O) 5,548인 중 현원 4,726인.(2019년 말 기준)[70]
- 직원평균보수: 기본급 5,011만 원 + 수당 등 4,688만 원 = 합계 9,699만 원[71]
- 2020년 손익현황: 수입 1조 4,341억 6,200만 원[공적재원 6,922억 700만 원(수신료 6,790억 2,400만 원+정부보조금 131억 8,300만 원), 자체수입(광고+콘텐츠판매+협찬+자산매각 등) 7,419억 5,500만 원)] / 지출 1조 4,014억 7,200만 원, 당기순이익 326억 9,000만 원
기타 정보는 KBS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항목 참조.(#)[72]
6.2. 조직도[편집]
- 김의철 사장
- 김덕재 부사장 겸 제작2본부장 - 비서실
- 인적자원실(인사기획/운영, 인재개발원), 심의실, 성평등센터, 시청자센터(서비스/사업)
- 노사협력주간, 지역정책실, KBS공영성강화프로젝트팀
- 전략기획실(최선욱 실장) - 법무실, 데이터정책
- 전략기획국 - 정책기획, 전략개발, 계열사협력, 예술인고용보험프로젝트팀
- 예산국, 대외협력국(대외협력, 커뮤니케이션), 공영미디어연구소
- 편성본부(신재국 본부장)
- 보도본부(손관수 본부장) - 기획, 뉴스전문위원실, 재난미디어센터, 남북교류협력단, 보도그래픽, 선거방송기획단
- 제작1본부(이재오 본부장) - 제작기획1부, 제작운영
- 제작2본부 - 제작기획2부
- 예능센터(조현아 센터장) - 1CP(뮤직뱅크), 2~9CP, 예능사업,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
- 콘텐츠사업국(콘텐츠사업, 지식재산권), 광고국(기획/마케팅)
- 드라마센터(황의경 센터장) - 1~7CP, 드라마사업
- 기술본부(김병국 본부장) - 미디어기술연구소, 미디어송출
- 기술관리국(기술기획, 기술운영, 장비관리), 미디어인프라국(제작시설, 시스템구축)
- 방송네트워크국 - 네트워크운영, 송신시설, 송신소(소래/남산/관악산/김제/당진/화성)
- 제작기술센터(오종연 센터장) - 후반제작
- TV기술국(총감독1~4), 보도기술국(총감독1/2), 중계기술국(총감독1/2), 라디오기술국
- 경영본부(박연 본부장) - 안전관리실, 신청사추진단
- 총무시설국(총무시설, 건축가전, 전력운영), 경영관리국(재무, 구매, 자산운용, 후생)
- 수신료국 - 수신료운영, 사업지사(강북/강남/인천/경기남부/경기동부/경기북부)
- 경영정보국 - 경영정보, 정보인프라
- 이사회(남영진 이사장) - 이사회사무국
- 감사(박찬욱 감사) - 감사실(기획/방송/기술/경영)
6.2.1. 조직[편집]
6.3. 편성정책[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편성정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지배구조[편집]
8. 임직원[편집]
출처는 여기
8.1. 임원[편집]
8.1.1. 공사화 이전 (1927~1973)[편집]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
- 윤백남 (1932~1933)
- 김정진 (1933~1936)
- 심우섭[74] (1936~1939)
경성방송국 제2방송부장
- 이혜구 직무대행 (1942)
- 노창성[75] (1942~1943)
조선방송협회장
- 이정섭 (1945~1948)
공보부 서울중앙방송국장[76]
- 이혜구 (1945~1947/1949)
- 홍양명 (1947~1948)
- 이관희 (1948~1949)
- 노창성 (1949~1953)
- 이운용 (1953~1960)
- 조흔파 (1960~1961)
- 윤길구 (1961~1963/1966)
- 김재연 (1963/1966~1968)
- 이홍수 (1963~1966)
공보부 서울국제방송국장[77]
공보부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장[79]
- 황기오 (1962)
- 이홍수 (1962~1963)
- 김재연 (1963~1965)
- 김진영 (1966~1968)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장[80]
8.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편집]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됨.
- 송지영 (1984~1988)
- 노정팔 (1988~1993)
- 김태길 (1993~1996)
- 김채윤 (1996~1998)
- 이세중 (1998~2000)
- 지명관 (2000~2003)
- 이종수 (2003~2006)
- 김금수 (2006~2008)
- 유재천 (2008~2009)
- 손병두 (2009~2012)
- 이길영 (2012~2014)
- 이인호 (2014~2018)
- 변석찬 이사장대행 (2018)
- 전영일 이사장대행 (2018)
- 김상근 (2018~2021)
- 남영진 (2021~2023)
사장
사실상 한국 방송계를 선도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방송협회 회장 및 지상파UHD방송추진협회(UHD코리아) 회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1973년 이후 역대 사장 중 암묵적인 외압이나 내부 반발에 의한 사임 등은 제치고 공식적으로 사장에서 해임당한 사례는 정연주와 길환영, 고대영 사장 세명이다. 정연주 사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 길환영 사장과 고대영 사장은 각각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보도 통제 논란 등과 보도국장으로 재직시 금품수수 및 보도 누락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 등 여러 논란로 인한 공영성 훼손으로 이사회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배임은 훗날 무죄로 판명났고(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 실제 의도는 윗선에서의 언론통제라는 평가가 대다수. 이어 고대영 역시 취소소송에서 승소하여, 문재인 정부의 위법한 해임처분이었음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이원홍과 정연주 두 사장은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칭호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 제작 등에 있어 시시콜콜 개입했기 때문(...)[86] 그리고 사장들 대부분은 기자 출신이며,[87] 이병순 이후 내부 출신이 사장이 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방송법 일부 개정에 따라 사장 선임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부사장
- 최창봉 (1973~1976)
- 김재중 (1976~1980)
- 윤혁기[88] (1989~1990)
- 손영호[89] (1990~1994)
- 최동호 (1994~1998)
- 이형모[90] (1998~2000)
- 강대영 / 김형준[91] (2000~2003)
- 안동수[92] (2003~2005)
- 김홍 (2005~2008)
- 이원군[93] (2007~2008)
- 김성묵[94] / 유광호 (2008~2009)
- 조대현 / 김영해[95] (2009~2011)
- 길환영 (2011~2012)
- 전홍구[96] / 류현순[97] (2013~2014)
- 금동수[98] (2014~2015)
- 전진국 (2015~2017)
- 조문재[99] (2015~2016)
- 조인석[100] / 이종옥 (2017~2018)
- 정필모 (2018~2020)
- 임병걸 (2020~2021)
- 김덕재 (2021~)
감사
- 노정팔 (1973~1977)
- 이치순 (1977~1980)
- 임진택 (1980~1982)
- 김수득 (1982~1986)
- 유태완 (1986~1990)
- 차종호 (1990~1992)
- 조봉균 (1992~1994)
- 이철호 (1994~1998)
- 방원혁 (1998~2000)
- 전준모 (2000~2003)
- 강동순 (2003~2006)[101]
- 변원일 (2006~2009)
- 이길영 (2009~2012)
- 김승종 (2012~2015)
- 전홍구 (2015~2018)
- 김영헌 (2018~2021)
- 박찬욱 (2021~)
편성책임자
TV는 편성본부장, 라디오는 라디오센터장이 책임자 위치에 있다. 1973년 공사창립 당시 방송총국이 책임지다가 1976년경부터 '방송담당이사' 호칭으로 변경되었고, 1980년 언론기본법 제정 이후 방송편성책임자 공표가 의무화되어 1981년에는 1TV, 2TV, 3TV-라디오담당이사로 3분할되었다가 1984년 사업본부제 도입 후 '방송본부'로 통일되었다.
1986년 조직개편 때 TV-라디오본부로 이원화되었다가 1991년 '방송총본부'가 생기면서 그쪽 예하로 재편되었고, 앞서 말한 두 본부에 각자 속했던 매체별 편성실이 분리/통합되어 '편성실'로 개편되었다. 1993년 방송총본부가 해체되어 그 임무가 편성운영본부로 넘어갔다.
1998년 편성운영본부가 해체되어 그 기능은 산하 기구였던 편성실에 넘겨졌고, 동년 12월에는 신설된 방송정책실이 맡기 시작하여 편성실도 그쪽 예하로 가면서 '편성국'이 되었다. 2000년에는 편성본부로 넘겨졌다가 2010년 조직개편 때 편성본부가 편성센터로 격하되었고, 일부 핵심 기능은 신설된 사장 직속기구 '편성실'로 넘겨졌다가 2013년 이 둘이 합쳐져 편성본부로 다시 확대되었고, 2016년 방송본부로 또 개편되어 TV와 라디오편성을 모두 담당하였다.
- 최서영 (1980~1981)
- 윤혁기 (1981~1984(1TV) / 1984~1985)
- 손영호 (1981~1984(2TV) / 1985~1986)
- 정순일 (1981~1983, 3TV 및 라디오)
- 차종호 (1983~1984, 3TV 및 라디오)
- 김도진 (1986~1988, TV) / 박근주 (1986~1988, 라디오)
- 장한성 (1988~1991, TV) / 전영효 (1988~1991, 라디오)
- 강병우 (1991, 1993~1996)
- 박성범 (1991~1993)
- 안국정 (1996~1998)
- 최충웅 (1998)
- 이석우 (1998)
- 강대영 (1998~2000)
- 이흥주 (2000~2001)
- 김승종 (2001~2003)
- 이원군 (2003~2005, TV)
- 조원석 (2004~2008, 라디오)
- 장윤택 (2005~2006, TV)
- 남성우 (2006~2008, TV)
- 최종을 (2008~2009)
- 이혁주 (2009~2010)
- 서재석 (2010~2012)
- 서재원 (2012)
- 전진국 (2012~2014)
- 권순우 (2014~2015)
- 김성수 (2015~2017)
- 김영국 (2017~2018)
- 황용호 (2018~2020, TV / 2018~2019, 라디오)
- 국은주 (2019~2020, 라디오)
- 한창록 (2020~2021, TV) / 최봉현 (2020~2022, 라디오)
- 강희중[102] (2021~2023, TV)
- 신원섭 (2023, 라디오)
- 정일서 (2023~, 라디오)
- 신재국 (2023~, TV)
8.2. 직원[편집]
공채는 공사 출범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서울중앙방송국 시절에 관리직은 문화공보부 공무원[103] , 전문직은 임시직이었으나, 1973년 공사 출범 이후부터 사원 신분으로 하고 있다. 다만 1984년에는 공채 없이 134명을 특채했다.[104]
8.2.1. 보도본부[편집]
8.2.1.1. 기자[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 NEW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1.2. 기상캐스터[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 NEW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1.3. 장애인 앵커[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 NEW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2. 아나운서[편집]
- 일러두기
-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기수(공사화 이후 기준) 및 성별(동일 기수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순, 지역권은 지역권순 우선)로 나열합니다.
- 단, 지역권 아나운서는 계속 지역방송(총)국에서 머물게 됩니다.
- 취소선은 사망(재직 전후),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직), 전향(타 부서, 일반관리직 영전), 이직(다른 직종), 이적(다른 방송국)한 아나운서 입니다.[105]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아나운서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CBS(기독교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언론통폐합 전에 퇴사한 아나운서는 기재하지 않습니다.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아나운서입니다.
[※]
8.2.3. 성우[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 성우극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4. 탤런트[편집]
- 일러두기
- 활동중인 탤런트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혹은 무명 및 특채 탤런트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탤런트입니다.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탤런트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탤런트입니다.
8.2.5. 코미디언[편집]
- 일러두기
- 활동중인 코미디언을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혹은 무명 및 특채 코미디언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탤런트입니다.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탤런트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코미디언입니다.
8.2.6. 프로듀서[편집]
볼드체로 표시된 인물은 임원에 속한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라디오, 편성
- 1945년 입사:
노정팔[229] ,이상만 - 1961년 입사:
고성원,김재형[230] ,이남섭[231] ,황정태 - 1963년 입사:
차재영[232] - 1964년 입사:
김영희 - 1965년 입사:
김연진[233] ,박철[234] ,이정훈[235] - 1967년 입사:
이흥주 - 1968년 입사:
최선규 - 1969년 입사:
강일파,이유황,이진욱,정영철,주일청[236] - 1970년 입사:
박경식,안국정[237] - 1971년 입사:
김승종[238] ,김충길,김현숙,김홍종,백재하,장기오,장형일,최상식 - 1972년 입사:
김수동[239] ,정선언 - 1973년(1기) 입사:
최상현[240] ,곽명세,금웅명[241] ,김재현,김종건,정수웅[242] ,박현순,조의진,홍성룡,이종하,한신평,이석우,박윤행,윤기호,장병도,박건삼[243] ,김균태,윤재동,장동선,장병기,주대식,안경은,박인배,김광식,강동순[244] - 1974년(2기) 입사:
이양구,조원석[245] ,윤창환,윤상문,이철용[246] ,손장권,유시창 - 1975년(3기) 입사:
송영구,강진호,이윤선,홍성우,양성수,이동순,홍성용,차갑진[247] ,류시형,김세근 - 1977년(4기) 입사:
이원군[248] ,허규,방진혁,박진수,강진환,박수창 - 1978년(5기) 입사:
경명철#[249] ,박현정,이순철,이영국,임웅빈,변연식,박영규,조대현,김혜경,박준남,장충길 - 1979년(6기) 입사:
김영신,박희정,윤종배,이규환,이양훈,이원익,김시연,이승원[250] ,진병윤,현정주 - 1980년(7기) 입사:
강성철 - 1981년(8기) 입사:
신상용[251] ,고희일,공영화[252] ,권순우[253] ,길환영,김대화,김영선[254] ,김철수A[255] ,김현준,박수동,성준기[256] ,송주하,송희일,안상윤[257] ,엄기백,오동석,이녹영,이상여,이영돈,이영희,이응진,이종한[258] ,이현석,전용길[259] ,진기웅[260] ,최길규,홍성덕,황우섭[261] ,최수형[262] - 1982년(9기) 입사:
김상기,김종식,박영주,신현수,오진규,윤명식,이민홍,장해랑[263] ,정을영,주병대[264] ,채치성,이상우 - 1983년(10기) 입사:
박해선[265] - 1984년 입사:
나상엽,박태호[266] ,정훈[267] ,허성룡 - 1985년(11기) 입사: 고영탁, 김명욱,
김성환,김종선[268] ,김철수B[269] , 남현주,문창석,노윤갑, 박정미[270] ,서재석[271] ,윤석호[272] , 이덕건,이상요[273] , 임주빈, 임혜선,전기상[274] ,전산,전진국[275] ,허웅[276] ,현상윤[277] ,홍혜경[278] - 1985년(특채) 입사:
변석찬[279] - 1986년(13기)[280] 입사:
구수환,조인석[281] , 정성효[282] ,함형진[283] - 1987년(14기) 입사:
김영진,민영문[284] ,박중민[285] ,신경섭[286] ,이기원[287] ,이상운[288] ,이성주,이용우[289] ,이은수,황용호[290] - 1987년(15기) 입사:
고흥식[291] , 곽기원,국은주[292] ,김정수,우종택[293] ,오세강[294] , 이강현 - 1989년(16기) 입사: 김창범,
양승동, 어수선,이재영, 장영주 - 1990년(17기) 입사: 김덕재 (부사장)[295] , 신재국 (편성본부장), 공용철,
이강택[296] ,문보현[297] , 조해달, 최철호, 홍성협,권혁만[298] - 1991년(18기) 입사:
강일수,김종창, 신창석, 윤태호, 이원희, 임세형, 최지영,표민수[299] ,한창록[300] - 1992년(19기) 입사:
김석윤, 김영도,김평중, 심광흠, 이재우,최봉현,한정석[301] , 한준서 - 1993년(20기) 입사: 황의경 (드라마센터장)[302] , 황대준 (대전방송총국장),
강희중, 류지열[303] , 배경수[304] , 손현철, 유건식[305] ,이건준[306] ,이훈희[307] ,정해룡[308] - 1994년(21기) 입사: 김호상 (울산방송국장), 김성근[309] , 배경수, 윤선원,
이욱정,이형민[310] , 최기록, 한경천[311] , 홍석구[312] ,황대준 - 1995년(22기) 입사: 이재오 (제작1본부장), 정일서 (라디오센터장), 김정환 (국제방송국장), 서용하 (멀티플랫폼전략국장), 양홍선 (부산방송총국장), 이내규 (시사교양1국장), 한경택 (협력제작국장), 최재복 (1TV 편성부장), 고정훈, 고찬수[313] , 권오훈,
권용택[314] ,김규태[315] , 김민철, 김상무,김영삼[316] , 김윤환, 김은주, 김정록, 김진수, 김창회, 김한석, 김현기, 김현수, 김현철, 김형석, 김형준, 나원식, 류송희, 민노형, 박건, 박기현[317] , 박성철, 박유경, 박정수, 박충원, 배용화,서수민[318] , 성준해, 손성배, 송웅달, 송주미, 안종호, 안주식, 유태진,윤성식[319] , 윤성도, 윤중경, 이경묵, 이계창,이명한[320] , 이민호, 이병창, 이선동, 이재혁, 이정수, 이진서, 이황선, 임기순, 임현진,전창근[321] , 전희수, 정현모,정희섭[322] , 최기석, 한응식, 홍경수, 홍진표 - 1996년(23기) 입사: 박융식 (멀티플랫폼편성국장), 김은정, 김종석, 김형주, 김희수, 남유진, 문석민, 박성용, 박은희, 백종희, 손종호, 손준영, 연종우, 오인교, 은경수, 이병용, 이제석, 장영우, 정승우, 최용수, 한상준
- 1997년(24기) 입사: 조현아 (예능센터장), 김정은 (제작기획1부장), 박성주 (편성제작부장), 강병택[323] , 강성훈, 강요한,
곽정환[324], 권계홍[325] ,권재영[326] , 기민수[327] , 김강훈, 김광수[328] , 김상휘[329] ,김석현[330] , 김신일, 김영선, 김원, 김정규[331] , 김정희, 김진환, 김필준, 나영, 류명준, 문소산, 문준하, 민일홍, 박기호, 박일해, 박창, 백주환, 신동조, 오수진, 원종재, 유경숙, 유웅식, 유현기, 유희원, 윤영식,윤현준[332] ,이동희[333] , 이세희[334] , 이원규, 이정환, 전우성[335] , 정택수, 정혜경,조승욱[336] , 조정훈, 최근영,최재형, 최지원, 최필곤, 하태석,함영훈[337] , 홍기호, 홍순영, 황응구 - 1998년(25기) 입사: 김영동,
김정민, 박용석, 이동우, 이정섭, 이혁휘, 조준희, 지병현, 지형욱, 한동규 - 2000년(26기) 입사: 김연미, 김영조, 김용호, 박정연, 손승현, 유광태, 이소연, 이승하, 이형진, 이호경[338]
- 2001년(27기[339] ) 입사:
김성윤[340] , 김영균,김원석[341] , 김호상,나영석[342] ,모완일[343] , 박정유,박현석[344] ,신원호[345] , 황인혁 - 2002년(28기) 입사:
고민구[346] ,김수아[347] , 김지연, 김형주, 노상훈, 문성훈,송현욱[348], 신미진, 이성범,이응복[349], 윤병준 - 2003년(29기) 입사: 강윤기, 고세준, 기훈석, 김경정, 김상미, 김세원, 김영민, 김자현, 김진원, 김홍범, 박지영[350] , 박진호, 안준용, 염지선[351] , 오은일, 이기리, 이진희, 이태웅, 이현정, 전인태, 정미영[352] , 정효영, 조성숙, 허양재
- 2004년(30기) 입사: 강남경, 김광수, 김대현, 김무성, 김민희, 김승욱, 김영숙,
김진우[353] , 김한솔, 김해룡, 남진현[354] , 류종훈, 박덕선, 박석형, 박성재, 박용훈, 박정훈, 백상훈, 백승철, 손지원, 양자영, 양천호, 윤진영, 이기연, 이동은,이예지[355] , 이은형, 이은진, 이정윤, 이준화, 이지운, 이충언, 이형일, 임병석, 전수영, 정경아, 정범수, 정희선, 조민지, 조지호, 지성찬, 최수영, 최승화, 최형준 - 2005년(31기) 입사
- 2006년(32기) 입사: 김미해, 남상원, 박진석[361] , 손자연, 유재우, 유지윤, 장윤선, 지우진, 하종백
- 2007년(34기) 입사: 김동휘, 김영우, 김윤정, 김정하, 김정현, 김태두, 박수정, 박지은, 박현진,
유종선, 윤민아, 이선희, 이재훈, 이태헌, 장효선, 전온누리, 조영중, 진정회, 홍아람 - 2008년(35기) 입사: 김근해, 김민경, 김범수, 박민정, 서승표, 안상미, 안지민,
원승연[362] , 유정아, 유혜진,유호진[363] , 이명희, 이윤정, 정연희, 정현재, 현재성, 황초아 - 2009년(36기) 입사: 김은비, 손수희, 심정애, 안상은, 이주영, 이호, 임종윤, 최윤석
- 2010년(37기) 입사: 김민정, 김아리, 유경현, 유희진, 이지희, 전진, 최진영, 하동현
- 2011년(38기) 입사: 길다영, 김가람,
김민석[364] , 김은곤, 문지혜, 박병길, 박상욱, 상은지, 손성권[365] ,유일용[366] , 이승문, 이원식, 이정규, 임효주, 정재윤, 최승현 - 2012년(39기) 입사: 강민채, 김민회,
김성[367] , 김희선, 이해돈, 배선정, 장민석, 전혜란, 조나은, 조현웅, 최지훈 - 2014년(41기) 입사: 구상모, 김승용,
방글이, 이다솔, 이은규, 이인건, 최윤영, 최현정 - 2015년(42기) 입사: 권재오, 문경원, 박정환, 이상혁, 조애진, 정승안, 최승범, 최유빈
- 2016년(42기) 입사: 서지원, 이승민, 이이백, 이지웅, 이현정, 장민구, 전아영, 최윤화
- 2018년(44기) 입사: 신민섭, 유혜진
- 2019년(45기) 입사: 정용재
- 2021년(48기) 입사: 강재훈, 김미래[368] , 김상엽, 노준호, 임지수, 임현정, 조수민
- 그 외:
강민구,김성수[369] ,김시규[370] ,김영국[371] ,김진홍[372] , 김충[373] ,오용한,이원규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제작
1991년 이후 이들은 KBS 미디어 소속이다.
-
공승환[374] - 구혜선[375]
- 김웅종
- 김정욱
- 박소영[376]
- 서원석
- 이경숙[377]
- 이영주[378]
- 이재길
- 임근택[379]
- 장경수[380]
- 하인성
- 허이선[381]
- 현혜원[382]
8.2.7. 엔지니어[편집]
- 이인관: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5년 8.15 광복 후 서울중앙방송국 발족 당시 연희방송소장을 맡다가 1948년 체신부 전무국 무선과장으로 이동됐다가, 1950년 공보처 방송국 송신과장으로 다시 옮긴 후 1953년부터 공보실 ~ 공보부 방송관리국 기감으로 수년 간 재직했고, 1968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돌아왔다가 1970년부터 3년여 간 방송관리국 기술담당관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6년 간 이사 겸 기술총국장을 역임했고, 1991년부터 4년 동안 KBS 사우회장을 지냈다. 1960년 방송문화상을 비롯 홍조근정훈장(1960), 녹조근정훈장(1967), 국무총리표창(1970), 대통령표창(1971), 옥관문화훈장(1977) 등의 수훈을 받았으며 2007년 2월 23일 작고.
- 한기선: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4년 청주방송국 개국요원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45년 8.15 광복 후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계장으로 발령났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전시방송국 기술과장으로 있다가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장을 맡기도 했다. 1956년 공보실 방송관리국 시설과장으로 옮긴 뒤 1968년 기술담당관으로 승진했고, 1970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또 옮기고 1973년 소래송신소장으로 내려가 이듬해 정년퇴임했다. 저서로는 <음학공학(1961)>, <건축의 음향설계(시릴 M. 해리스 & 번 O. 너드슨 공저 / 번역)>, <소리와 빛(1984)> 등이 있으며, 방송문화상 기술부문(1961), 한국방송대상 공로상(1974), 홍조근정훈장(1975) 등을 받았다. 2001년 작고.
- 박경환: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기술부 제1중계과 등지에 몸담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을 비롯, 1949년 백범 김구 국민장, 1958년 경부역전 및 경인역전 마라톤, 5.16 혁명 기념 시가행진 등지 현대사 속 중요한 사건들의 실황중계를 맡았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올림픽 중계방송 업무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총국 조정국 라디오조정부장을 비롯해 제작기술국 중계부장(1977~1979), 당진송신소장(1979~1980), 소래송신소장(1980), 제작기술국장(1980), 기술이사(1980~1983) 등을 두루 거쳤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KBS 민선 1기 이사를 지냈으며 2016년 7월 22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었다. 1982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 김성배: 기자와는 동명이인.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1950년 6.25 전쟁 당시 대전, 대구, 부산으로 각각 피난다니며 중앙방송을 도왔고, 1951년 서울 수복 후 정동으로 돌아와 선임으로 일하다 1960 로마 올림픽 때 기술요원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1962년 기술과 계장으로 올랐다가 1967년 공보부 시설과로 옮겨 시설담당관을 맡은 후 운용계장(1968~1972), 시설과장(1972~1973) 등을 거쳐 1973년 공사 창립 당시 기술국 기술관리부장으로 몸담았다. 그러고서 시설국장(1976~1980), 소래송신소장(1980) 등을 맡다가 1980년경 퇴사했고, 1987년 KBS 사우회 창립 당시 부회장을 1년 맡은 후 1995년까지 감사를 맡았고, 한국방송인동우회 부회장도 맡았다. 2016년 7월 29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 1979년 대통령표창 수훈.
- 송재극: 1956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1963년 이리송신소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오른 후 1968년 남양송신소로 발령나 500kW 대출력 건설에 참여했고, 연희송신소를 1971년 경기도 부천군 소래읍 미산리(현 시흥시 미산동)로 옮기는 데 주도한 바 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기술총국 시설부장을 비롯, 기술국장(1976~1980), 시설국장(1980~1981), 남산송신소장(1981), 기술본부장(1981~1983), 방송기기종합정비실(소)장(1983~1985), 기술정책개발반 국장(1985~1986), 종합조정실(1986) 등을 거쳐 1986년 말 KBS의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자 방송망사업국장으로 있었고, 1988년 5월 KBS 방송연수원 교수로 돌아와 연말까지 맡고 퇴직했다. 이후 한국데이타통신 연구위원,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위원 및 이사, 고문, 한국방송공학회(현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1991~1993년 및 2001~2003년까지 두 차례 KBS 이사를 지냈고, 2021년 2월 3일 작고. 대통령표창(1972 / 1976), 한국방송대상 기술상(1983), 국민포장(1986) 등 수훈.
- 강진구: 195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 개국 당시 그쪽으로 옮긴 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삼성전자 및 삼성반도체통신 대표이사, 삼성전기 회장 등지 역임. 2017년 8월 19일 작고.
- 조찬길: 1957년 공보실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시절부터 공채 입사한 이래 운암송신소장 등을 지냈고, 1973년 공사화 후 중계부장을 시작으로 김제송신소, 시설1차장 등을 거쳐 방송망관리실장(1981~1983/1988(부본부장대우)), 방송기기종합정비실장(1983~1984), 방송망감시실장(1984~1986), 라디오기술국장(1986~1988) 등을 두루 거친 후, 1988년 11월 서영훈 사장 취임에 따라 기술본부장까지 승진했다가 1991년 촉탁으로 전환되면서 제작지원단준비단장으로 발령나 자회사 'KBS 아트비전'의 창립을 주도한 뒤, 초대 사장으로 선임되어 2년간 지냈다. 이후 KBS 제4기 이사로 재직했으며 2014년 12월 17일 작고.
- 안흥식: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1년 공보부 방송관리국으로 이동되었다가 이듬해 MBC로 이직.
- 장용섭: 1959년 6월 전주방송국 입사. 1962년 서울국제방송국 기술과로 올라온 후 1967년부터 3년 동안 문화공보부 방송관리국에 몸담은 바 있다가 이후 중앙방송국 시설과로 배치되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기술국 기술관리부에 배속된 후 1976년 시설국으로 옮겨 차장으로 승진했고, 1979년 청주방송국 기술부장으로 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 감사실 검사역으로 본사에 돌아왔다. 그 뒤 수원송신소장(1981~1987), 기술관리국 방송망시설부장(1987~1988), 라디오기술국장(1988~1989), 방송망관리실 운용국장(1989~1990), 방송망관리국장(1990~1992) 등을 두루 거치다가 1992년 12월 22일부로 정년퇴임한 후,[383] 1993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이사로 임명되어 1년을 지내다 1994년 마포종합유선방송 기술이사로 영전되었고, 1997년 전무까지 승진해 2년을 지냈다. 1991년 한국방송대상 송출기술상 수상.
- 오승룡: 성우와 동명이인. 대한방송(HLKZ-TV) 출신으로 1959년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한 후 1961년 TV방송 개국 당시 비디오맨으로 활동했고, 1962년에 보수반장 및 중계기술 감독을 했다가 1963년부터 KBS 제1차 시설확장공사 책임기사를 맡아 남산 사옥 스튜디오 확장공사를 이끌었다. 이후 전주방송국 이리송신소장, 제1조정계장 등을 거쳐 1968년 MBC로 이직했다가 1972년 KBS 제2조정과로 돌아왔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국 라디오조정부장으로 올랐다가 이후 중계부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1976년 이후 미국 웨스팅하우스로 옮겼다가 1978년 연수원 연구실로 돌아온 후, 부산방송국 기술부장(1979~1981), 기술국 기술보전부장(1981~1984), 올림픽방송본부 기술개발실 기술기획담당(1984~1985), 기술부장(1985~1987), 텔레비전기술국 부국장(1987~1988), 방송망관리실/기술본부 시설국장(1988~1991), 방송연수원 교수(1991~1993) 등을 두루 거쳤다.
- 홍기준: 1960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영선: 성우, 정치인과 동명이인. 1960년 목포방송국 입사 후 중앙방송국 기술과로 옮기기도 했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1979년 기술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보전부장(1980~1981), 운용기술부장(1981~1982), 소래송신소장(1982~1983), 방송망관리실장(1983), 당진송신소장(1983~1987), 김제송신소장(1987~1989), 라디오기술국장(1989~1990), 방송기기정비센터 국장(1990~1991), 기술본부장(1991~1992) 등을 두루 거쳐 1992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다. 1995년 중앙케이블비젼 설립 후 초대 대표이사를 수년 간 맡으며 1995년부터 4년 동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까지 맡았다. 1992년 국민포장 수훈.
- 김순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로 옮겼다가 1969년 MBC로 또 옮겼다.
- 최인열: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윤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광식: 1961년 7월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남산TV송신소 공사현장에서 근무한 바 있고, 1968년 제2부조정과에도 몸담았다. 1973년 공사화 후 건설본부 기술부장을 비롯 제작기술국 텔레비전중계부장(1977~1979), 제작기술국장(1979~1980), 시설국장(1980~1983), 기술본부장(1983~1988), 올림픽기술본부장(1987~1988), 기술상담역(1988~1991) 등을 두루 거쳐 1991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감사로 내려가 2년을 지냈다. 1993년 KBS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도 역임했으며, 2017년 2월 15일 작고.
- 서정원: 축구인과 동명이인. 1961년 대전방송국에 입사한 후 식장산중계소장 등을 맡다가 1981년 기술부장까지 올랐고, 1982년 감사실 검사역으로 본사에 입성했다가 1984년 강릉방송국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그 뒤 기술본부/기술관리국 기술기획부장(1985~1988), 화성송신소장(1988~1992), 시설국 기술위원(1993), 기술관리국장(1993~1994), 중계기술국장(1994~1995), 기술본부장(1995~1997) 등을 두루 거쳐 1997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1987년 국민포장 수훈.
- 고흥복: 1962년 공보부 방송관리국 시설과에 입사한 후 이듬해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로 발령났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이일로: 1963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에 입사 후 1968년 중앙방송국 출범 당시 그쪽으로 이동되어 한동안 기술부에서 일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시설국 관리부 차장으로 승진하여 1976년 기술부로 옮기기도 했고, 1979년 춘천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장(1980~1984), 기술본부 방송망관리실 시설운용담당(1984~1986), 전송시설관리담당(1986), 기술관리국 방송망관리부장(1986~1988), 운용국장(1988~1989), 텔레비전기술국장(1989~1990), 제작기술국장(1990~1991), TV기술국장(1991~1993), 기술본부장(1993~1995)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2년을 지낸 뒤, 1997년 KBS 영상사업단 고문으로 추대되어 1년 간 지냈다. 그 뒤 한국멀티넷 기술부문장(2000~2001), 한국디지털위성방송 기술고문(2002~2005), KBS 경영평가위원(2003~2005) 등을 맡다가 2003년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현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 설립을 주도하여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2009년부터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TV프로그램 제작기법(1983)>, <뉴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1984)>, <방송기술의 이해(1992)>, <디지털 방송기술사전(1995, NHK방송기술연구소 저 / 번역)> 등이 있으며, 공보부장관 표창(1965), 제6회 백제미술대전 사진부문 대상(1987, 체육부장관상) 등 수훈.
- 김순길: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기술과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오정수: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윤재덕: 극단 드라마센터 출신으로,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으로 입사했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조동근: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이종성: 196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선권: 1973년 11월 무선기술B 직종으로 입사한 이래 여수방송국 신원송신소(1974~1978), 순천방송국 고흥중계소(1978~1980), 광주방송국 비아송신소(1980~1984) 등지를 전전하다가 1984년 방송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면서 그 쪽으로 배치되었다. 1988년 원주방송국 현업기술부 소속으로 KBS에 돌아와 이듬해 제작기술국 TV제작기술부로 올려졌으며, 1990년 광주총국 라디오기술부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1993년 시설국 자동화사업부 차장을 거쳐 제주총국 기술국장(1999~2001), 기술관리국 장비관리부주간(2001~2003), 방송망기기정비국 검사부주간(2003~2004), 남산송신소장(2004~2008), 소래송신소장(2009~2010) 등을 거쳐 2010년부터 2년 동안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을 지내고 퇴사.
- 안동수: 1974년 11월 전기직으로 입사한 이래 올림픽방송본부 관리국 자료관리부 등지에 몸담다가 1989년 제2기 KBS 노동조합(1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1990년 KBS 사태 당시 총파업을 지휘하다 구속 후 1991년 해고 처분을 받았고, 1993년에 사면 후 복직되어 1994년 부장급 기술위원, 1999년 기술연구소장, 2000년 남산송신소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까지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후보 신청도 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2018년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창립 시부터 수석부회장을 역임 중이고, 콘텐츠웨어 회장, 서울벤처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유비쿼터스미디어콘텐츠연합 수석부총재 등도 맡고 있다.
- 임정규: 자황중학교 교사 출신. 1974년 11월 무선직A로 입사한 후 초기에는 제주방송국에서 순환 근무하다 1979년 청주국으로 옮겼고, 1983년 한국언론연구원 주관 하에 영국 연수를 거친 뒤 1983년 본사 보도본부 보도기술부로 옮긴 이래 1990년 한-소 수교 및 1992년 한-중 수교,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등 역대 대통령들의 정상외교 과정을 TV 화면에 담아내는 데 기여해왔다. 1990년 국제부로 갔다가 1993년 전주방송총국 기술관리부장으로 처음 간부직을 맡아 1994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현업총감독으로 본사에 복귀한 후, 위성기술총감독(2000~2001), 제작본부 TV기술국 주간(2001~2002), TV기술국장(2002~2003), 기술본부장(2003~2004) 등을 두루 거쳐 2004년 KBS 아트비전 감사로 발령나 1년을 몸담았다. 이후 2012년 KBS 이사회 경영평가위원을 거쳐 동년도부터 3년여 간 이사까지 맡았다. 저서로는 <역대 대통령 정상외교(2014)>가 있다.
- 김영해: 1978년 입사 이래 TV기술국 편집관리부와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등지를 전전하다가 1995년 보도기술부 감독으로 올랐고, 2003년 영월방송국장을 비롯해 보도기술팀장(2004~2006), 춘천방송총국장(2006~2008), 기술본부장(2008~2009)을 거쳐 2009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을 역임했다. 2022년 8월 23일 작고.
- 김순기(金順起):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시흥송신소장을 시초로 연천중계소장(1983~1985), 방송망감시실 유무선통신망 관리담당(1985~1986), 시설운용담당(1986), 수원송신소장(1987~1988), 시설국 자동화사업부장(1988~1992), 위성방송준비국 방송부주간(1992~1993), 방송기기정비실장(1993~1994), 방송망관리국장(1994~1997), 기술본부장(1997~1998) 등을 두루 거쳐 1998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고, 2003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 이일성: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이곳에 배치되어 1981년 차장으로 승진했다가, 1990년 군산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뉴미디어국 기술부주간(1993~1994), 기획예산국 기술부주간(1994), 김포송신소장(1994~1997) 등을 지냈다.
- 조해남: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이곳에 배치된 이래 2003년 기술개발국 장비관리부주간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장비보전팀장(2004~2005), 방송기술연구팀장(2005), 중계인프라팀장(2005~2008), 남산송신소장(2009), 기술본부장(2009~2010) 등을 두루 거쳐 2010년 KBS 비즈니스 감사로 발령났다, 2011년 JTBC 기술센터장으로 영전된 후 기술부문이 'JTBC미디어텍'으로 분사되면서 초대 대표이사를 5년여 간 맡았다.
- 김석두: 1981년 입사한 이래 TV기술국을 비롯 여수방송국 망운산중계소(1990~1993), 기술관리국 기술관리부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방송망관리국 개봉송신소 감독으로 간부직을 처음 맡은 후, 춘천방송총국 기술국장(2001~2005), 정책기획센터 난시청해소프로젝트팀장(2005~2007), 기술전략기획팀 부장(2007~2008), 기술전략기획팀장(2008), 기술관리국장(2009~2010), 네트워크관리국장(2010~2011) 등을 거쳐 2014년 기술본부장까지 올라 1년여 간 맡았다.
- 이종화: 1982년 입사한 이래 기술연구소에서 일해 오며 1994년 차장으로 승진했다가, 1999년 기술관리부 기술협력부주간을 시초로 기술기획부 기술협력부주간(2000~2001), 기술관리부 기술기획부주간(2002~2003), 기술연구소 연구부주간(2003~2004), 디지털미디어센터 멀티미디어팀장(2004~2005), 미래미디어전략국장(2010~2011), 기술전략국장(2011~2012), 제주방송총국장(2012~2013) 등지 역임. 1999년에 출간된 <HDTV 이론과 기술>의 공저자이기도 하며 동년도에 다산기술상 수상.
- 이종옥: 1985년 입사한 이래 2006년 대전방송총국 기술팀장을 시초로 방송시설국 제작시설부장(2010~2011), 방송시설국장(2011~2012),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기술본부장(2012~2014) 등을 각각 거치다가 2014년 KBS 비즈니스 이사로 이동했고, 2017년 본사 경영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이듬해 양승동 사장이 취임하면서 사임했다.
- 진종철: 1987년 입사한 이래 대구방송총국 기술팀 등지를 돌며 엔지니어로서 일할 적 KBS노동조합(1노조,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제4~5대 대의원, 6~8대 안동지부장, 대구-경북 시도지부장 등을 거쳐 2005년 위원장까지 오르며 반 정연주 성향의 선두에 있었으며, 2008년 정연주 사장 퇴임 후 2009년 1월 KBS홀 팀장을 시초로 시청자사업팀장(2009~2010), 시청자권익보호국장(2010~2011), 네트워크관리국장(2011~2012) 등을 거쳐 2012년 (재)디지털시청100%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다.
- 박병열: 철도청, 한국전기통신공사 출신으로, 1987년 입사 이래 2006년 광주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2010년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기획부장, 2011년 기술기획부장, 2012년 원주방송국장 등을 거쳐 2013년 퇴임 후, 2014년부터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코리아) 사무총장을 맡다가 이듬해 기술본부(제작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지만 2016년 노조 측의 70% 불신임으로 2017년 1월 면직됐다. 이후 2017년부터 3년 동안 KBS 비즈니스 감사를 지냈다. 2020년 안세기술 상무이사로 영전.
- 김순기(金舜基): 1987년 입사 후 2005년 춘천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TV제작본부 TV편집기술팀장(2007~2008), 기술본부 기술관리국 기술기획팀장(2009~2010),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운영부장(2010~2011), 제작리소스센터/제작기술센터 보도기술국장(2011~2014), 제작기술센터장(2014~2016), 네트워크센터장(2016~2017), 제작기술본부장(2017~2018) 등을 거쳤다. 2018년 퇴임 이후 2019년부터 자유미디어국민행동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7년 방송의 날을 기념해 국무총리표창 수훈.
- 김용덕: 1989년 입사 이래 엔지니어 시절 용문산중계소, TV중계부, 관악산송신소 등지에서 일하며 KBS기술인협회 사무처장,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사무국장, 제6대 KBS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2018년 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다가 2019~2021년까지 KBS 비즈니스 이사를 지냄.
- 김병국: 1989년 입사 후 울산 무룡산 송신소 근무를 시초로 엔지니어 외길을 걸으며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부산지부장 등지에 몸담기도 했고,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네트워크본부장을 시초로 처음 간부직을 맡아 2019년 지상파UHD방송추진위원회(UHD코리아)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고, 2020년 제주방송총국장을 거쳐 이듬해 김의철 사장 취임 후 기술본부장으로 등극했다.
8.2.8. 기타[편집]
- 이장춘: 1963년 서울국제방송국 PD로 입사한 이래 1998년 퇴직 시까지 중앙출장소장, 업무국장, 기획조정실 기획예산관리담당 부장, 방송편성위원회 방송자료센터부장, 관재국장, 전산정보실장, 제주방송총국장 등을 두루 거친 방송 전문가로, 퇴사 이후 (사)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등지를 역임함.(블로그[384] )
- 이일구: 1980년 미술직 입사 후 1991년 KBS 아트비전 설립 당시 합류. 용의 눈물, 개그콘서트, 인간극장, 아침마당 등 자사 프로그램 타이틀로고 디자인을 맡아왔고, 서예에도 능해 2001년 제24회 원곡서예상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2002년 KBS 아트비전 그래픽부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경영기획국(팀)장(2003~2008), 미술제작국장(2009~2010), 의상제작부장(2011~2012), 상임이사(2012~2013) 등지 역임. (다음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1997년 조선일보 인터뷰)
- 전홍구: 1981년 행정직 입사. 1993년 춘천방송총국 총무부장을 비롯해 개혁기획단 차장(1998), 인사관리부주간(1998~2000), 인사/임금제도부주간(2000~2003), 총무국(팀)장(2003~2006/2009), 관재팀장(2006~2008),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2009~2013), 부사장(2013~2015), 감사(2015~2018) 등을 지냈다.
- 금동수: 1982년 행정직 입사. 1999년 노무부주간을 비롯해 2014년 3월 정년퇴임 시까지 KBS SKY 사장(2002~2005), 편성본부 저작권팀장(2005~2006), 노사협력팀장(2006~2008), 인적자원센터장(2008), 인력관리실장(2009~2010), KBS 미디어 사장(2010~2011), 글로벌전략센터장(2011~2012), 창원방송총국장(2012~2014) 등을 거쳤다. 2014년 5월 조대현 사장 취임 후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1년여 간 맡았다.
- 지한규: 신필름영화예술학교 출신으로 상업사진을 찍다가 1977년에 선배의 조언으로 수중촬영에 발을 들였고, 1984년 수중촬영전문기사로 입사한 이래 <한려수도 해저1천리>, <형사 25시>, <검생이의 달>, <용의 눈물> 등 드라마, 다큐멘터리 프로의 촬영을 맡았다. 2006년 그리메상 공로상 수상.[385]
- 은문기: 1985년 경영직 입사. 2002년 편성본부 콘텐츠정책보조관을 비롯해 2004년 KBS 인터넷 이사 및 글로벌센터 글로벌전략팀장, 2007년 KBS 아메리카 사장, 2011년 감사실장, 2012년 스마트KBS추진단장, 2014년 창원방송총국장 등을 거쳐 2017년 KBS 시큐리티 사장을 7개월 동안 맡았고, 2018년 이후 재원관리국(수신료국) 강북사업지사로 내려간 후 2020년 3월 31일 정년퇴임.
- 이석인: 1985년 미술직 입사. <달려라 하니>, <명탐정 번개> 등 여러 TV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함. 보도그래픽부 제작위원, 영상그래픽부 차장, 보도그래픽부장(2011~2013) 등을 맡아왔고, 그 외에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 지평캘리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함.
- 이완성: 동양정밀 출신. 1985년 입사 이래 2018년까지 속초방송국 총무부장, 경영본부 노무부주간, 사내근로복지기금 파견직원, 라디오 제작운영팀장, 노사협력팀장(주간), 정책주간, 청주방송총국장, KBS 시큐리티 사장, 시청자본부장 등을 거쳤다. 이후 아이텍 사외이사 역임.
- 지연옥: 1985년 특채 입사 이래 홍보실에서 근무하다 방송문화연구원 차장, 수원센터 연수2부주간 겸 교수, 시청자센터장 등을 거쳐 2009년 경영본부장까지 오름으로써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KBS 임원직에 올랐고, 2010년 시청자본부장, 2011년 KBS 비즈니스 이사 등지 역임.
9. 채널[편집]
참조 사항: 2002년 5월 이전까지는 뉴스,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KBS 로고(워터마크) 표시가 없었다. 이후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가[386] , 2003년 12월 1일 ~ 2010년 12월 31일까지 로고(워터마크) 위치가 왼쪽,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오른쪽에 표출중이다. 2018년 9월 3일부터 1TV와 2TV의 로고(워터마크)가 바뀌었다. 2020년 10월 20일부터 로고가 좀 더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지역국 폰트는 KBS 내부에서 사용하는 폰트로 변경하였다. 예전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엔딩 크레딧에 '제작' 폰트로 사용된 바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TV에서 사용하지 않고 내부용 폰트로 썼다가 30년 만에 TV에서 다시 쓰이게 된 셈이다.
9.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편집]
- 2023년 기준 운영중인 채널
- KBS 1TV(U-KBS STAR, ⓤKBS★)
- KBS NEWS D(UHD MMS)
- KBS 제1라디오(보이는 라디오, UHD MMS)
- KBS 2TV(U-KBS HEART, ⓤKBS♥)
- KBS 1TV(U-KBS STAR, ⓤKBS★)
- 2022년 기준 폐지된 채널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당시 화재로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던 DBC 대한방송의 TV 장비와 인력을 인수하였고, DBC가 원래는 KORCAD-TV(HLKZ)라는 RCA 제휴 민간방송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후덜덜한 방송장비를 갖고 있었다.[389]
현재 지상파 TV채널로는 KBS 1TV과 KBS 2TV를 운영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교육방송인 KBS 3TV도 있었지만[390] 1990년에 독립해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되었다.[391]
참고로 KBS1에는 한국의 지상파 TV채널 중 유일하게 상업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392] 하지만, 1994년 10월 1일 이전에는 상업광고를 했었다. KBS1에서 대놓고 9시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XX약품 광고가 나왔다.)[393][394] 다만 아무 시간대나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주로 스포츠 중계방송이나 특집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편성하거나 특정시간대를 정해서 광고를 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10월 8일 05:00부터 KBS 1TV의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상파로서는 최초다.[395]
KBS2의 경우 1980년에 내려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명시된 신문-방송 겸영 금지로 과거 민영방송이었던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로 이관되며 추가된 채널이다.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은 기존의 KBS 채널이었던 KBS1에서 담당하고 있었기에,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KBS2에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적었으며, 심지어 각종 대형사건 및 중요 행사와 관련하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뉴스속보나 생중계를 내보내는데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규방송을 당당하게 방송해 주던 단 둘 뿐이였던(EBS 포함) 지상파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KBS2는 전쟁이 나도 드라마나 쇼프로를 방송해 줄 거라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
2003년부터 KBS1은 푸른색(한색) 계열 '큐브' 디자인을, KBS2는 비슷한 시기부터 노란색(난색) 계열 '서클' 다자인을 BI로 쓰고 있다. 2015년 이 CI를 중심으로 방송 디자인이 개편된 적이 있었는데, KBS 9시 뉴스의 2015년 오프닝이나 KBS2 NEXT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이후에는 대놓고 채널 로고와 방송 디자인에 적용되어 있는 상황이며 표어도 각각 '오늘을 담는 창', '내일을 여는 빛'이 붙었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UHD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9-2번에 KBS NEWS D를 송출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시청할 수 있는 KBS 월드라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제작이 아니라 그냥 방송콘텐츠에다가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온 영문 자막을 그대로 덧씌워서 내보내는 형식이다.[396] 시청 국가 및 지역에 따라 편성표는 각각 운영된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에겐 꽤 인기있는 모양이다.[397]
KBS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음을 돌려쓴다.
9.2. 지상파 라디오 방송[편집]
- 2023년 기준 운영중인 채널
- 2022년 기준 폐지된 채널
과거에는 '사회교육방송'이란 것도 존재했으며[402] , 섬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전 9시 45분부터 방송되는 일기예보를 듣고 실제로 일기도를 그렸다. 물론 대략 80년대 얘기이며, 이제는 매시 58분마다 KBS 제1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다.[403][404]
하지만 국가기반 공영방송국 주제에 KBS 2FM은 광고방송을 이유로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405] 그래서 지방에서는 U-KBS MUSIC이라는 T-DMB V-Radio방송을 들어야하는데 한 프로그램만 릴레이를 하지 않고 자체방송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든 프로를 청취할 수 있다가 면허문제로 두 프로그램 대신 새 자체 프로그램이 송출되고 있다.
9.3. PP(KBS N)[편집]
- KBS drama
- KBS joy
- KBS N SPORTS
- KBS Story: 2013년 1월 1일 개국. 케이블TV 각 SO에서 기존 KBS Prime을 송출하던 번호를 배정받았다.
- KBS Kids
- KBS LIFE: 2015년 3월 8일자로 KBS Prime에서 변경.
- KBS N PLUS: 2017년 6월 개국한 OTT 전용 채널.
지상파 채널 외의 계열 방송사로는 KBS N이 있으며, 케이블 채널로 KBS drama, KBS joy, KBS N SPORTS, KBS W, KBS Kids, KBS N LIFE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KBS위성1,2를 관할하는 위성방송 PP로 출범했으나 해당 채널들이 전부 폐국하면서[406] 2006년 이후 유료방송 PP로 노선을 전환했다.
9.4. 인터넷 방송[편집]
- KBS NEWS D (舊 KBS 24시 뉴스)
KBS N 전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성하는 OTT 전용 채널, 2017년 6월 개국했다. myK, wavve 등에서 볼 수 있다.
9.4.1. esports KBS[편집]
e-스포츠 전문 유튜브 채널.
9.5. 유튜브 채널[편집]
운영 소관 부서는 편성본부 멀티플랫폼편성국이며, 2016년부터 3년 동안 미래사업본부 산하 디지털서비스국이었으나, 2019년 조직 개편 후 편성본부 산하로 이동되어 '디지털미디어국'이 됐다가, 2021년 조직 개편으로 현 명칭이 되었다.
- 공식 채널
- 뉴스
- 시사: 구 시사기획 창
- 선거방송기획단: 구 정치합시다
- 남북의 창
- 사사건건
- 질문하는 기자들 Q(종영)
- KBS추적: 구 시사멘터리 추적(2022년 8월 25일 이후로 KBS 시사와 통합)
-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 머니올라 - 구 사건 탐구: 사탐 티비
- 체크살 - 구 팩톡: 가짜뉴스 퇴치 프로젝트(폐쇄)
- 크랩: KBS DIGITALNEWSLAB
- 윤창희의 생존경제: 구 속고살지마
- 보다 VIEW(폐쇄)
- KBS News Sao Paulo
- KBS 교양
- KBS LIFE
- 다큐멘터리
- 해보라: 구 KBS지식 / 해 볼만한 아침 M&W
- 생방송 심야토론(종영(2022년 6월 25일 방영분 이후 업로드 중단))
- 국악한마당
- 인간극장
- 동물의 왕국
- 걸어서 세계속으로
- 생로병사의 비밀
- 역사저널 그날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 더 라이브
- 추적60분: 추적 60분이 2019년에 종영 직후 시사 직격으로 변경되었으나 2023년에 다시 복귀.
- 어린이
- KBS HUMAN: 뭉클티비: 구 KBS my K
- 클래식
- 허스토리
- KBS 실험실
- 기막힌 티비: 구 디지털 시청자칼럼((2018년 9월 10일~2021년 8월 17일), 2022년 10월 8일 이후로 KBS 실험실과 통합)
- 파일:KBS Entertain 로고.png 예능
- [파일:깔깔티비 채널 프로필 이미지.png 깔깔티비
- 크큭티비
- [파일:애니멀포유 유튜브 채널.jpg 동물티비: 애니멀포유
- KBS StarTV: 인물사전
- [파일:KBS 퀴즈 매니아 프로필.jpg 퀴즈 매니아(폐쇄)
- 슈퍼맨이 돌아왔다
- [파일:구라철 시즌3 로고.png 구라철
- 굿보스: 구 뻔타스틱(중단)
- 근슐랭가이드: 구 도니스쿨(중단)
- [파일:KBS 같이삽시다 유튜브 채널.jpg 같이삽시다
- 리슨 업(종영)
- KBS Kpop
- Again 가요톱10: KBS KPOP Classic
- 파일:kbs골든케이팝 로고.jpg 골든케이팝
- 스튜디오 K
- 아이돌 인간극장: KBS Kpop에서 독립한 채널
- 드라마
- KBS Drama Classic: 구 KBS 안테나
- 몬스터유니온: 구 KBS Drama(2020년 12월 24일 이후로 업로드 중단)
- 케미 TV
- KBS WORLD
- KBS WORLD News
- KBS WORLD Vietnamese
- K-Series : STORY & MUSIC: 구 KBS WORLD Latino / WE K-POP
- KBS America
- KBS WATV
- KBS World Arabic
- KBS WORLD Indonesian
- KBS WORLD Spanish
- KBS KONG
- 스포츠
- 옛날티비: KBS Archive
- [파일:esports KBS.png esports KBS
- KBS교향악단
- KBS국악관현악단
- KBS성우극회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9.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편집]
1995년 10월 9일에 한국 방송사로서 최초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7년 뉴스클립 다시보기 서비스, 1998년 본격적인 VOD 서비스 시작 때부터 2001년 초반까지는 주로 리얼 플레이어를 통해 회원가입/로그인 없이 무료로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407] 이후 회원제로 전환되었고, 2006년에 라디오 전용 프로그램인 Kong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다. 2012년경에 myK가 출시되어 이제는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를 막아놓은 MBC와 3분마다 광고를 봐야 하는(...) SBS와도 차별화되는 부분. 한국교육방송공사도 EBS Play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BBC의 iPlayer(플래시 기반)와 다르게 K플레이어는 그놈의 ActiveX 설치를 요구하기에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에서만 사용가능(...). 다만 일반적인 AOD, VOD는 2012년경 방영분부터는 WMA/WMV기반이 아닌 AAC/MP4 기반이기에 크롬 등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도 이용 가능. 홈페이지 자체는 2002년부터 자회사 KBS 인터넷(구 크레지오닷컴)이 위탁 운영을 맡기 시작했고, 2011년 그 회사가 KBS 미디어로 합쳐지면서 KBS 미디어가 운영 중이다.
KBS의 VOD 서비스가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저화질에 한해 무료라는 점. EBS마저도 일부 VOD가 유료이다. 그러나 KBS만큼은 무료 VOD 서비스를 고수하고 하는데, 고화질 다시보기의 경우 WMP 시절에는 일정 기간 동안 300K까지 제공했다가 2005년경 이후 '고화질(700K)'을 추가시켜 KBS 미디어의 유료 VOD 사이트인 콘피아와 연동되게 했고, 2010년대 들어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wavve로 연결되게 했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된 이후에는 드라마(일일 드라마를 제외한 월화 드라마/수목 드라마 등 평일 및 주말 드라마들)와 해피선데이, 해피투게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3주 정도 유료 서비스를 하다가 기간이 지나면 저화질에 한해 무료로 전환된다.[408] 수신료를 받는 마당에 이거라도 무료로 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타 방송사도 무료 VOD/AOD 서비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문화방송과 SBS는 라디오 AOD 서비스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시행 중이고, 지역방송과 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TV 프로그램일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대부분 프로그램의 VOD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서비스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전 방송분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이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409] 이로 인해 옛날 프로그램 매니아들은 당연히 불만을 품어왔고, 일부는 비싼 돈 들여가며 KBS 미디어를 통해 프로그램 복사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들어 홈페이지에서 옛날 프로그램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SBS, MBC와 비교해 더욱 까이나, 2019년부터 '옛날티비', '깔깔티비', '크큭티비', 'KBS Drama Classic', '같이삽시다', 'KBS실험실' 등지 유튜브 채널들에 옛날 프로그램 업로드를 분산시키고 있다.[410]
이곳에서 독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중계해 준다.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서울특별시청 등지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영상이다.[411]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 D-50 특별 생방송도 방송 이후 다음날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9.7. 팟캐스트[편집]
2013년까지는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한 후 별도의 프로그램(ActiveX)을 설치하여 로그인후 다운로드해야 하는 등 BBC, MBC와 비교해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으나 2014년부터는 아이튠즈 체제로 전환하여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 방송 현황[편집]
10.1. 프로그램[편집]
자세한 내용은 KBS/프로그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2. 재난 방송[편집]
언젠가부터 KBS는 자사의 특보방송이나 재난 대비용 spot 홍보영상 등에 "KBS는 재난주관방송사입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 실제로 KBS는 태풍, 산불, 폭설 등 기상 재난재해 관련 주관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영어로 된 뉴스 티커 자막도 제공 중이다.[412]
아직은 지진재난방송에 대해서는 비교적 미흡하다. 옆나라 일본을 보면 지진 2초 후 세부적인 지도, 상황, 앵커의 대처, 지진전문방송으로 넘어가는 등 대처에 적극적이다. 아무래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흡한 편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12월에 발생한 ‘제주 서남서 41km 해역 지진’에서 대처하는 모습은 ‘경주 지진’, ‘포항 지진’ 때의 보도보다 훨씬 나아졌다. 방송 송출 중, 경보와 대략적인 지진 상황을 알리고, 3~4분 후에 지도를 포함한 지진파가 미치는 지역, CCTV 등 지진 피해 현황이 담긴 세부적인 내용을 송출, 보도하는 등 많이 발전했다고는 보여지지만 이건 지진에만 해당되는 사항.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 장마/호우 등의 재난의 경우에는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당시의 논란과 같이 아예 재난주관방송사의 임무를 망각한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된 적 있으며,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수도권/논란 항목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수도권, 그 중에서도 서울 위주의 재난방송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재난관련 속보는 타 방송사 자막속보를 보는 것이 더 빠른 경우도 있다. 실제로 태풍이 한반도를 직격할 때 가만히 보면 수도권을 강타할 경우와 아닌 경우 방송편성 자체가 확연히 차이날 정도이다. 2023년 현재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보도본부가 속보체제로 들어가는 시간은 빨라야 20분 내외로, 이웃나라 NHK와 비교해보면 너무 많이 차이나서 할 말이 없을 수준이다.[413]
10.3. 방송망[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전국 방송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4. 네트워크[편집]
서울 외에도 지방에 9개 방송총국, 9개 방송국, 1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3개 해외지국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또한 각 지역방송국은 MBC-지역 MBC, SBS-지역민방처럼 네트워크 협력관계가 아닌, KBS라는 단일조직 내에 있다. 따라서 순환발령을 통해서 본사 직원이 지역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지역방송국 직원이 본사로 올라올 수도 있다. (다만, 신입사원 선발시에 전국권 TO와 지역권 TO를 분리해서 뽑는데, 전국권 TO만 서울본사로 바로 발령이 가능하고, 지역국 TO로 입사한 경우 최소 5년간 서울 본사로 전출이 불가능하다.)[414][415]
2004년 감사원 지적사항으로 지방 방송국 통폐합이 이루어 지면서 군산시, 남원시 (이상 전주), 속초시, 태백시 (이상 강릉), 영월군(원주)[416] , 공주시(대전), 여수시(순천) 7개 방송국이 인근 방송(총)국으로 합쳐졌다. 그런데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라디오 주파수 목록에는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이 7개 방송국이 독립된 방송국으로 적혀있다(...).[417] 당시 각 지역에서 반발이 많았으며, 여러 사연도 많았다. 여수방송국은 전라남도 동부권에서 순천방송국보다 훨씬 먼저 생겼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여수국은 철거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태백국 역시 철거되어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며, 전라북도에서는 2개의 지역국이 문을 닫으며 전주총국만 남게 되었으며, 충청남도에서도 공주국이 문을 닫으며 대전총국이 대전·충남 전역을 책임지게 되었다.[418] 그리고 유일하게 군에 있던 영월국이 없어졌다. 참고로 폐국된 영월국이 이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로 쓰인 바 있다.
라디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본사에서 지역국으로 시보나 방송시작멘트를 넘길 때 나는 효과음(띠리리리~ 띠리리리~)이 난 적이 있었다. 2016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역국 멘트를 송출할 때 서울 본사 멘트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었다.
2019년 8월 들어 KBS 본사 측에서 적자 경영개선 대책 중 하나로 지역방송국 기능축소를 제시해 구성원들의 반발이 크다. 2020년부터 지역방송국(경인, 강릉, 울산 제외)의 뉴스를 비롯한 TV 로컬방송을 폐지시키고 모두 상부 총국으로 이관하는 이른바 거점센터 기능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국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송출과 수신 개선 서비스, 수신료 징수 등의 반쪽 기능만 가능하게 된 셈이다. 당장 이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지역 언론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몇몇 구성원들은 삭발시위까지 했다. 심지어 여수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옆동네 KBS순천방송국의 기능 축소 문제를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KBS는 2020년 2월 3일부로 지역총국 중심 뉴스 통합 정책을 밀어붙여 시작했다. 매주 월-목 KBS 뉴스 7은 본사 뉴스를 받지 않고 40분 통으로 지역뉴스를 진행하며[419] 다만 을지역국의 경우 KBS 뉴스 9 로컬방송은 살려 놨다. 그러나 애초에 을지역국의 취재인력이 취재기자 2명, 영상기자 1명(...)으로 확 줄었기 때문에 을지역국에서 만들 수 있는 리포트기사는 꼴랑 1~2꼭지에 불과해 이거 말고는 그냥 총국에서 만든 기사를 중계하는 셈이 되었다. 게다가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KBS가 재난방송 체제로 접어들자, 여기에 총국중심으로 전 취재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뉴스9 로컬도 총국에서 모두 때우고 있다.
10.5. 계열사[편집]
- 현존
- 해산/매각
- KBS 문화사업단: 구 한국방송사업단. 1999년 KBS 영상사업단으로 합병.
- KBS 인터넷: 구 크레지오닷컴(2000년 설립). 2002년에 사명(약칭 KBSi)이 변경되었고 2011년 KBS 미디어로 합병.
- KBS 제작단(현 한국방송제작단): 1999년 코네스컨소시엄으로 매각.
- KBS LA: 구 미주한국방송(KTE). 기존의 SBC(중앙일보 계열)와 KTB(한국일보 계열), TV 코리아 3개 방송사를 합병한 방송사로 2008년 KBS 아메리카에 합병.
- 한국방송출판: 구 KBS 미디어 출판사업부. 《TV 유치원》 및 《굿모닝 팝스》 등의 발행처다.
10.6. 공익재단[편집]
- KBS 강태원복지재단
11. 간행물[편집]
11.1. 기록물[편집]
- KBS 연감 (1961~1973/1995~)[420]
- KBS 연지 (1975~1995)
11.2. 정기간행물[편집]
11.2.1. 잡지[편집]
- 여성백과[월간] (1981~1993)
- 월간 방송[월간] (1981~1984)
- 텔리비전[월간] (1984~1985)
- 문화정보[월간] (1985~1989)
- KBS 저널[월간] (1988~2005/2010~2012)
- TV유치원[월간] (1991~)
- 굿모닝 팝스[격월간] (1991~)
- 지구촌 영상음악[월간] (1993~2005)
- FM매거진[월간] (1993~1996)
- 게임피아[월간] (1995~2003)
11.3. 교재[편집]
12.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노동조합[편집]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교섭대표노조): 민주노총 소속. 2009년 KBS 1노조의 우경화에 반발한 젊은 조합원들이 1노조를 탈퇴한 뒤 만들었으며, 2018년부터 1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로 승격되었다. 특히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투쟁에 앞장섰던 노조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해 공영방송이 아닌 노영방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2018년에는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방송차량서비스 노조)를 통합해 '방송차량지부'로 개편시켰다.
- KBS 노동조합: 1988년 결성. 미가맹. 원래 메인노조이자 언노련의 핵심이었으나, IMF 시대에 지역방송국 통폐합 과정에서 기술직들이 대거 갈려나가면서 기술직 출신 조합원들과 아나운서, PD 출신 조합원들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결국 기술직들의 지지를 받아 2006년 당선된 박승규 노조위원장(전 스포츠국장)이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사장 축출 시도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면서 언론노조에서 제명되었다. 2009년 언론노조 KBS노조가 생긴 후 대항 노조 자리를 굳히고 있으며,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좌천되거나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옛 간부나 사원들이 이 노조에 많이 있다.
- KBS 공영노동조합: 미가맹. 2011년 복수노조 허용 후 무보직 1직급 직원들이 결성한 노조.
15. 교통편[편집]
15.1. 본관ㆍ신관[편집]
지하철
버스
- KBS 정류장 : 부천 버스 10, 부천 버스 70-2,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5615, 서울 버스 5618
- 국회의사당역 정류장 : 고양 버스 108, 용인 버스 7007-1, 광역급행버스 M7625,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260,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463, 서울 버스 6713, 서울 버스 7613, 서울 버스 영등포10
- 여의도공원/전경련회관 정류장 : 고양 버스 871, 광명 버스 11-1, 광명 버스 11-2, 부천 버스 83, 부천 버스 88, 부천 버스 700, 시흥 버스 530, 안산 버스 301, 안산 버스 320, 서울 버스 160, 서울 버스 360,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600, 서울 버스 662,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713, 서울 버스 6623, 서울 버스 6628, 서울 버스 6654
- 국회의사당 정류장 : 김포 버스 1002
15.2. 별관[편집]
지하철
버스
- KBS별관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261, 서울 버스 262,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505,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33, 서울 버스 5634, 용인 버스 7007-1, 광역급행버스 M7625, 부천 버스 700, 서울 버스 영등포11
- 샛강역.앙카라공원/진주아파트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505,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33, 서울 버스 5634, 서울 버스 영등포10, 고양 버스 108
- 샛강역1번출구.여의도자이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261, 서울 버스 262,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753,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23, 서울 버스 6713, 광역급행버스 M7625, 서울 버스 영등포11
- 샛강역4번출구.여의도자이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753,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18, 서울 버스 5623, 서울 버스 6713, 서울 버스 영등포10
16. 메일 주소[편집]
사원들의 이메일 주소가 비범하다. 박대기(waiting)를 필두로 최선중(best-ing), 신선민(freshmin), 김빛이라(glory), 정새배(newboat), 안양봉(beebee), 이지은(easy), 노태영(lotte0), 김진화(evolution), 이효용(utility), 정해주(seyo)(...) 등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재미있는 이메일 주소를 만든다. 단순히 이름을 따서 ptk(박대기) 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그대로 직역해 주소로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
박대기가 트위터에서 밝힌 바로는 본인들이 직접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이메일 주소가 더 쉽게 각인이 될 것이고, 그러면 제보가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은 것이라고. 개중에는 면접 당시부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온다는 열정적인 지원자들도 있다고 한다.
17. 여담[편집]
-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가맹사이며 2002년부터 이사국 지위를 지녔고, 2011~2018년 및 2021년부터 두 차례 회장사를 맡을 정도로 일본 NHK, 중국 CCTV 등과 더불어 아시아 방송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 간혹 영국의 BBC와 독일의 ARD, ZDF, 도이칠란트 라디오와 프랑스의 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PBS, NPR 등 해외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 역할이나 개념상으로 일본의 NHK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제작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421] 과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NHK의 방송 포맷을 많이 벤치마킹하기도 했고, 현재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이처럼 일본 NHK와 닮은 방송성격 때문에 아직도 기성세대에서는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확한 법인격적 성질은 국영이 아닌 영조물법인체로서의 공사(공기업)이다.[422] 예산과 인사문제는 KBS이사회에서 심의, 의결하며, 결산에 있어서만 방통위 제출 후 감사원 검토 및 국회 의결 절차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KBS이사 임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할 뿐, 민주화 이전처럼 재정과 인사에서 통제를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공공기관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만 전시방송 및 재난방송을 주관하는 방송사인 점, 대북방송을 송출한다는 점 등은 과거 내무부 산하 국영방송 시절의 흔적이고, 여전히 정부와 밀접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다. 케이블의 지상파 관련 논쟁에서 KBS 1TV가 EBS와 더불어 지상파 채널 중 의무재송신 대상 채널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도 이의 흔적 중 하나이다.
- KBS를 공영방송이 아닌 '국영방송'으로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KBS측에서는 자사를 국영방송으로 칭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국영방송으로 정권에 종속되었던 과거[423] 편성 및 보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방송 언론인들이 헌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 시기에 받았던 정권의 억압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시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장전영 대변인이 KBS보고 "국영방송이 어쩌구" 했다가 소송맞고 사과한 후에 취하한 적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정부 관계자 등 높으신 분들이 방송국을 방문해서 국영방송이라 했다가 갑분싸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424] KBS에서 떨어져나온 EBS 역시 공영방송으로, '국영방송'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니까 주의. MBC는 KBS나 EBS처럼 칼같이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KBS를 깔 때 일부러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반감층도 있다.
- 공식적으로 규정된 업무는 아니지만 난시청과 공시청, 공시청 장비에 관한 업무도 본다. 케이블방송이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공시청 장비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을 복구하는 일이 많다. 이따금씩 광고도 하고. KBS 수신기술서비스[425]
- KBS의 일베 관련 논란으로는 개그콘서트의 부엉이 코너 관련 논란이나[426] 렛잇비 베충이 사건[427] , 일베 기자 채용 사건이 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일베 합성 로고를 노출시킨 적이 있었다.
- 2015년 4월 1일 네이버 실검에 'KBS 일베 기자'가 올라왔는데,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 일베저장소 활동 의혹을 받는 KBS 수습기자가 31일 정식 기자로 임용됐다는 내용의 진짜 기사다. 링크(네이버뉴스) 링크(소방방재신문) 이 경우 사규에 어긋나지 않고 외부 법률자문에도 문의결과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일단 해당 수습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일반직 4직급)으로 파견발령되었으며, 이 부서는 취재·제작 업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6년 3월에는 보도국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보기 2018년 2월에 춘천으로 발령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사보기 당연히 춘천지역 기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18. 관련 문서[편집]
19. 개요[편집]
한국방송공사, 영문약칭 KBS[431] 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 방송사로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을 운영하며, 자회사를 통해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한다. 본사 주소는 (우)0723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432] EBS처럼 메인 방송 채널이 1TV, 2TV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433]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공식 홈페이지 문구
2001년 3월 3일[434] 이후 약칭인 한국방송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방송공사.[435] 별명으로는 크브스, 케백수 등이 있다.
2023년 3월 3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였다.
20. 상징[편집]
20.1. 기업 정신[편집]
1973 ~ 2003[436]
- 사훈
품위있는 방송, 능률적인 경영, 협조 속의 단결[437]
1992
- 방송이념
문화의 샘터, 겨레의 길잡이[438]
- 경영목표
믿음주는 방송, 앞서가는 기술, 함께하는 경영
- 인재상
봉사하는 방송인, 탐구하는 창조인, 서로돕는 협동인
1993 ~ 1994
- 방송이념
인간 사랑, 자연 사랑, 나라 사랑 - 그린정신
2015 ~ 2019
- 비전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
- 미션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Beyond TV! Rock the World!)
- 핵심가치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 공정, 혁신, 열정, 소통
2019 ~ 2022
- 중장기 목표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신뢰, 창의, 혁신
- 5대 세부목표
독보적 신뢰, 압도적 영향력, 콘텐츠 도달률 강화, 글로벌 미디어로 변화, 창의적 조직으로 변화
2023 ~
- 중장기 목표
공영방송 50년, 국민의 KBS로 거듭나겠습니다
- 5대 핵심비전
개방, 신뢰, 안전, 품질, 다양성
20.2. 로고[편집]
KBS(한국방송공사) 로고 변천사 (사표-社票)
- 2세대 로고 (1973년 3월 2일 ~ 1984년 10월 28일): 문화공보부 산하 국영 중앙방송국에서 현재의 한국방송공사로 개편되면서 쓰게 된 로고. KBS 무대부에 있었던 변승우가 디자인했다.
- 3세대 로고 (1984년 10월 29일 ~ 현재): KBS의 최장수 CI. 디자인포커스 대표였던 정준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글씨체는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442] 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방송국 Cl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CI다.[446] 여담이지만 저 로고, 원래는 서울 올림픽 로고 경쟁작 중 하나였고, 낙선한 이후 한국방송공사가 써먹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회에 당선된 양승춘 디자이너는 이후 SBS의 초대(初代) 로고를 디자인했다.근거 1, 근거 2 로고피디아에 따르면 1983년판이 있다고 하는데, 영상이 삭제돼서 상세 내용은 불명.
- 4세대 로고 (2023년 ?월 ~ 예정): KBS가 CI 개정을 발표하기 1년 전 시점인 2022년에 이미 KBS CI 개정 용역을 입찰해 4곳의 브랜딩회사를 추려냈었다. 입찰공고, 입찰 후보 통지 KBS는 일단 2023년 3월에 CI 초안을 발표한 뒤에 개정 절차를 걸쳐 같은 해 9월부터 방송에 적용한다고 언론에 밝혔다.[447] 초기 KBS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미디어스 기사
그 후 한 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3년 5월에 KBS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플랫폼인 "KBS 국민패널" 회원들을 상대로 CI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2023년 7월 5일, 특허청에서 운영하는 KIPRIS에 새로운 CI로 추정되는 로고가 올라왔다.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된 상태지만, 아직 등록이 결정되지는 않았으며, 8월 시점 기준으로 KBS에서도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는 없다. KBS가 새 CI를 우선심사제도로 출원했다면 2023년 9~10월경에 등록 여부가 확인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표 등록의 평균적인 출원 기간인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 #
20.3. 마스코트[편집]
-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출처 voozclub에서 만들었다.(포트폴리오)[448]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디자인의 호불호가 꽤 많은 편으로, 루리웹에 올라온 글에서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난장판이다.
동글이 다시 데려와이 때문인지 초창기에만 많이 쓰이고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에는 올림픽 기간이나 몇몇 ID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다.
-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다들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방송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KBS 본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정식 이름은 K2다. 그런데 9년 전에 나온 KBS 스테이션 ID에 대한 홍보지에는 공이라고 쓰여있다.
2015년부터는 방송 안내나 SNS 페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이 마스코트에서 팔다리를 없엔 모습의 노란 공 디자인은 간간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 새 마스코트인 케빗에게 대를 이어달라는 말과 함께 13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인 깔깔티비에서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채널의 마스코트 노릇을 하고 있다.
20.4. 슬로건[편집]
20.4.1. TV[편집]
20.4.1.1.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세상[450]
20.4.1.2. 2003년 ~ 현재[편집]
- 한국인의 중심채널[451]
- 젋은 채널[452]
- 사랑하기 때문에[453]
- Beyond the TV! Rock the World![454]
- 다함께 KBS2[455]
- TV는 2TV가 재미있습니다[456]
- TV는 2TV, 재밌다[457]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458]
- 오늘을 담는 창[459]
- 내일을 여는 빛[460]
- Digital · Disaster · Depth[461]
- 오늘을 담고 내일을 열다
20.4.2. 라디오[편집]
20.4.2.1. 1970년대[편집]
20.4.2.2. 1980년대[편집]
- 슬기로운 생활의 벗[464]
20.4.2.3. 1993년 ~ 2002년[편집]
- 좋은 방송 밝은 내일[465]
20.4.2.4. 2003년 ~ 현재[편집]
21. 마케팅[편집]
21.1. 사가[편집]
KBS 사가
김수철 작사ㆍ작곡
밝은 미래를 함께 여는 우리는 KBS
새 시대 새로움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의 진실한 열정은 세계를 밝혀주리라
우리는 KBS 사랑과 정의를 전해주리라
우리는 KBS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리라
KBS 한국방송
맑은 지혜가 샘 솟는다 우리는 KBS
사랑과 믿음이 모여 동서남북 하나가 된다
우리의 인류애로 온 누리엔 평화의 꽃 피어난다
우리는 KBS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리라
우리는 KBS 이 세상 환하게 비춰주리라
KBS 한국방송
21.2. 로고송[편집]
KBS 노래 (1974년 ~ 1993년)
1974년 3월 1일부터 라디오 시그널로 쓰기 위해 노래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 쓴 곡이다. 일종의 로고송이다. 1970년대에 TV에도 중간중간에 나왔던 것으로 보이며, 1984년부터 1993년까지 KBS 9시뉴스 시작전 ID로고송으로 멜로디 일부가 나온 적이 있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방송시작 고지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며 1992년과 1993년 총 두 해에 걸쳐서 2TV ID 로고송으로도 쓰이기도 했다.[469] 2005년까지 KBS 사회교육 제1방송(972kHz. 현재 KBS 한민족방송)의 오후 1시 오프닝때도 이 음악이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는 실로폰음이 나왔다. 꽤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로고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KBS 로고송
21.2.1. TV[편집]
21.2.1.1. KBS 1TV[편집]
- 중앙방송국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전) #
- KBS 텔레비전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후 ~ 1980년 11월)
- KBS 제1텔레비전입니다 (1980년 12월 ~ 1984년)
-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 (1988년)
- 영원한 우리들의[470] KBS KBS (1991년 ~ 1993년)
- KBS KBS 제1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471]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472] (2001년 3월 3일 ~ 현재)[473][474]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 (2018, 2019년, 국경일)[475]
21.2.1.2. KBS 2TV[편집]
- KBS 제2텔레비전입니다 (1980년대 초반 ~ 1984년)
- 즐겁고 유익한 KBS 제2텔레비전 (1984년 ~ 1987년)[476][477]
-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제2텔레비전 (1987년 ~ 1991년)[478]
- KBS KBS 제2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년 6월 27일)[479]
- KBS KBS KBS 한국방송 (사랑해) (2003년 6월 28일 ~ 2009년 일자 미상)[480][481]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년)
21.3. 라디오[편집]
- 사랑하기 때문에 KBS(2007년 ~ 현재)[482]
- (반주) KBS 1라디오(2013년 ~ 2018년)[483]
- 대한민국 중심채널 KBS 1라디오(2018년 ~ 현재)[484]
-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KBS 해피FM(2007년 ~ 현재)[485]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2018 ~ 현재)[486]
- 너와나의 U-KBS MUSIC
- Listen to the music
21.4. 방송지표[편집]
22. 역사[편집]
23. 사옥[편집]
23.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 12. 1.(본관) / 1988. 6.(신관)~현재)[편집]
- 본관: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12,396.7m² 규모로 1976년 12월 1일 준공되었으며, 현재 전략기획실, 경영본부, 라디오센터, 아나운서실 등이 사용하고 있다. 또 견학관인 KBS ON도 4~5층에 자리잡고 있다.
- 신관: 지하 2층, 지상 9층, 연면적 63,987m² 규모로 1988년 6월 준공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 용도로 지어졌으며 현재 편성본부, 보도본부, 제작1본부, 예능센터, 기술본부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489]
- 공개홀
- KBS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10,890m², 좌석수 1,661석 규모로 1991년 9월 7일 개관하였다. 현재 열린음악회, KBS 연기대상, KBS 가요대축제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공연 대관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간 관객 입장이 끊겼다.
- 본관 TV 공개홀(TS-1): 현재 아침마당, 누가 누가 잘하나, 시사 직격, KBS 119상 시상식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이 이루어진 곳이다.
- 신관 TV 공개홀(TS-15): 2000년 준공되어 현재 뮤직뱅크, KBS 연예대상, KBS 내 삶을 바꾸는 선택, 더 시즌즈에서 사용하고 있다.[490] 역시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일반 관객들은 입장이 허용되지 못했다.
- 별관 공개홀(TS-D): 현재 가요무대와 각종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 KBS 아트홀: 구 라디오공개홀로 1985년 개관하였다.
- 연구동 : 지상 2~5층 규모의 건물 4동(3~5동, 관리동. 1~2동은 결번, 연면적 15,487.63m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77년에 완공되었다. 본래 국회 의원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1990년에 양도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나 사택으로 생각하는 그 건물이다.[491] 현재 미디어기술연구소, 심의실 및 본사 건물에 입주하지 못한 각종 부서들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개그콘서트 연습실도 있었으나, 종방이후 미사용.
사옥 개방은 다른 지상파 3사에 비해 개방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오전 5시 부터 ~ 밤 12시 까지 건물 개방이 된다. 출입가능 범위는 신관, 본관 1층 로비 등은 자유로이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나 라디오 스튜디오가 오픈스튜디오 방식이라서 매일밤 DJ 진행자의 팬들이 모여서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크게 문제없이 이용이 가능하긴 하나, 일부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잠긴다.
2016년 고대영 사장 시절 기존의 연구동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66,891.30㎡ 규모의 '미래방송센터'를 세우고 이후 기존 본관과 신관을 리모델링하여 여의도 별관과 수원센터의 기능을 죄다 흡수하려 했으나,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이듬해 고 사장 퇴진으로 표류 상태이다. 게다가 양승동 사장 체제 이후에도 재원조달 문제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관련 부서인 미래방송센터추진단이 아예 공중분해까지 되어 신사옥 건립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사실 KBS의 여의도 신규 사옥 건립은 여러 번 추진된 바 있으나, 본관과 별관의 거대한 규모로 인해 번번히 무산돼왔다. 본관은 40년이 넘은 노후 건조물이지만, 연면적이 11만 제곱 미터가 넘고, 신관의 연면적은 63,000제곱미터이다. 2014년 개장한 MBC 글로벌미디어센터의 연면적조차도 15만 제곱 미터에 못미치기 때문에, KBS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신규 사옥의 필요성으로 '공간 부족'을 절대로 주장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N(케이블 채널)은 2007년 기어이 상암 미디어센터를 건설해 본사를 옮겼기 때문에(#)[492] 여의도 사옥의 대규모 리모델링이나 신축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TV스튜디오는 본관에 7개(1~7), 신관에 4개(11~14), 별관에 3개(A, C, D)가 위치해 있다. 라디오스튜디오는 본관에만 있다.
23.2. 여의도 별관 (1980. 12. 1.~현재)[편집]
1980년 4월 준공되어 동양방송의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다가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사라지자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드라마센터, 공영미디어연구소, 콘텐츠사업 관련부서, KBS 사우회, KBS한국어진흥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23.3. 수원센터 (2000. 11.~현재)[편집]
연면적 75,460.47㎡ 규모로 2000년 11월 준공되었다. 현재 드라마센터[493] , KBS경인방송센터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교양 및 예능도 여기서 녹화한다. 인재개발원, 방송박물관, KBS수원아트홀도 같은 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계동행정복지센터도 세들어서 위치하고 있다.
23.4. 상암 미디어센터 (2007. 12.~현재)[편집]
24. 특징[편집]
24.1. 법인현황[편집]
- 설립근거: 방송법 제43조 1항 외 관련 법령
- 임무 및 기능: 동법 §43~§68 참조[494]
- 조직현황: #KBS 홈페이지 조직도 참조.
- 인력현황: 사장 포함 상임임원 10인[495] , 비상임임원(이사) 11인[496] , 정규직 총원(T/O) 5,548인 중 현원 4,726인.(2019년 말 기준)[497]
- 직원평균보수: 기본급 5,011만 원 + 수당 등 4,688만 원 = 합계 9,699만 원[498]
- 2020년 손익현황: 수입 1조 4,341억 6,200만 원[공적재원 6,922억 700만 원(수신료 6,790억 2,400만 원+정부보조금 131억 8,300만 원), 자체수입(광고+콘텐츠판매+협찬+자산매각 등) 7,419억 5,500만 원)] / 지출 1조 4,014억 7,200만 원, 당기순이익 326억 9,000만 원
기타 정보는 KBS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항목 참조.(#)[499]
24.2. 조직도[편집]
- 김의철 사장
- 김덕재 부사장 겸 제작2본부장 - 비서실
- 인적자원실(인사기획/운영, 인재개발원), 심의실, 성평등센터, 시청자센터(서비스/사업)
- 노사협력주간, 지역정책실, KBS공영성강화프로젝트팀
- 전략기획실(최선욱 실장) - 법무실, 데이터정책
- 전략기획국 - 정책기획, 전략개발, 계열사협력, 예술인고용보험프로젝트팀
- 예산국, 대외협력국(대외협력, 커뮤니케이션), 공영미디어연구소
- 편성본부(신재국 본부장)
- 보도본부(손관수 본부장) - 기획, 뉴스전문위원실, 재난미디어센터, 남북교류협력단, 보도그래픽, 선거방송기획단
- 제작1본부(이재오 본부장) - 제작기획1부, 제작운영
- 제작2본부 - 제작기획2부
- 예능센터(조현아 센터장) - 1CP(뮤직뱅크), 2~9CP, 예능사업,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
- 콘텐츠사업국(콘텐츠사업, 지식재산권), 광고국(기획/마케팅)
- 드라마센터(황의경 센터장) - 1~7CP, 드라마사업
- 기술본부(김병국 본부장) - 미디어기술연구소, 미디어송출
- 기술관리국(기술기획, 기술운영, 장비관리), 미디어인프라국(제작시설, 시스템구축)
- 방송네트워크국 - 네트워크운영, 송신시설, 송신소(소래/남산/관악산/김제/당진/화성)
- 제작기술센터(오종연 센터장) - 후반제작
- TV기술국(총감독1~4), 보도기술국(총감독1/2), 중계기술국(총감독1/2), 라디오기술국
- 경영본부(박연 본부장) - 안전관리실, 신청사추진단
- 총무시설국(총무시설, 건축가전, 전력운영), 경영관리국(재무, 구매, 자산운용, 후생)
- 수신료국 - 수신료운영, 사업지사(강북/강남/인천/경기남부/경기동부/경기북부)
- 경영정보국 - 경영정보, 정보인프라
- 이사회(남영진 이사장) - 이사회사무국
- 감사(박찬욱 감사) - 감사실(기획/방송/기술/경영)
24.2.1. 조직[편집]
24.3. 편성정책[편집]
25. 지배구조[편집]
26. 임직원[편집]
출처는 여기
26.1. 임원[편집]
26.1.1. 공사화 이전 (1927~1973)[편집]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
- 윤백남 (1932~1933)
- 김정진 (1933~1936)
- 심우섭[501] (1936~1939)
경성방송국 제2방송부장
- 이혜구 직무대행 (1942)
- 노창성[502] (1942~1943)
조선방송협회장
- 이정섭 (1945~1948)
공보부 서울중앙방송국장[503]
- 이혜구 (1945~1947/1949)
- 홍양명 (1947~1948)
- 이관희 (1948~1949)
- 노창성 (1949~1953)
- 이운용 (1953~1960)
- 조흔파 (1960~1961)
- 윤길구 (1961~1963/1966)
- 김재연 (1963/1966~1968)
- 이홍수 (1963~1966)
공보부 서울국제방송국장[504]
공보부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장[506]
- 황기오 (1962)
- 이홍수 (1962~1963)
- 김재연 (1963~1965)
- 김진영 (1966~1968)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장[507]
26.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편집]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됨.
- 송지영 (1984~1988)
- 노정팔 (1988~1993)
- 김태길 (1993~1996)
- 김채윤 (1996~1998)
- 이세중 (1998~2000)
- 지명관 (2000~2003)
- 이종수 (2003~2006)
- 김금수 (2006~2008)
- 유재천 (2008~2009)
- 손병두 (2009~2012)
- 이길영 (2012~2014)
- 이인호 (2014~2018)
- 변석찬 이사장대행 (2018)
- 전영일 이사장대행 (2018)
- 김상근 (2018~2021)
- 남영진 (2021~2023)
- 서기석 (2023~)
사실상 한국 방송계를 선도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방송협회 회장 및 지상파UHD방송추진협회(UHD코리아) 회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1973년 이후 역대 사장 중 암묵적인 외압이나 내부 반발에 의한 사임 등은 제치고 공식적으로 사장에서 해임당한 사례는 정연주와 길환영, 고대영 사장 세명이다. 정연주 사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 길환영 사장과 고대영 사장은 각각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보도 통제 논란 등과 보도국장으로 재직시 금품수수 및 보도 누락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 등 여러 논란로 인한 공영성 훼손으로 이사회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배임은 훗날 무죄로 판명났고(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 실제 의도는 윗선에서의 언론통제라는 평가가 대다수. 이어 고대영 역시 취소소송에서 승소하여, 문재인 정부의 위법한 해임처분이었음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이원홍과 정연주 두 사장은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칭호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 제작 등에 있어 시시콜콜 개입했기 때문(...)[513] 그리고 사장들 대부분은 기자 출신이며,[514] 이병순 이후 내부 출신이 사장이 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방송법 일부 개정에 따라 사장 선임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부사장
- 최창봉 (1973~1976)
- 김재중 (1976~1980)
- 윤혁기[515] (1989~1990)
- 손영호[516] (1990~1994)
- 최동호 (1994~1998)
- 이형모[517] (1998~2000)
- 강대영 / 김형준[518] (2000~2003)
- 안동수[519] (2003~2005)
- 김홍 (2005~2008)
- 이원군[520] (2007~2008)
- 김성묵[521] / 유광호 (2008~2009)
- 조대현 / 김영해[522] (2009~2011)
- 길환영 (2011~2012)
- 전홍구[523] / 류현순[524] (2013~2014)
- 금동수[525] (2014~2015)
- 전진국 (2015~2017)
- 조문재[526] (2015~2016)
- 조인석[527] / 이종옥 (2017~2018)
- 정필모 (2018~2020)
- 임병걸 (2020~2021)
- 김덕재 (2021~)
감사
- 노정팔 (1973~1977)
- 이치순 (1977~1980)
- 임진택 (1980~1982)
- 김수득 (1982~1986)
- 유태완 (1986~1990)
- 차종호 (1990~1992)
- 조봉균 (1992~1994)
- 이철호 (1994~1998)
- 방원혁 (1998~2000)
- 전준모 (2000~2003)
- 강동순 (2003~2006)[528]
- 변원일 (2006~2009)
- 이길영 (2009~2012)
- 김승종 (2012~2015)
- 전홍구 (2015~2018)
- 김영헌 (2018~2021)
- 박찬욱 (2021~)
편성책임자
TV는 편성본부장, 라디오는 라디오센터장이 책임자 위치에 있다. 1973년 공사창립 당시 방송총국이 책임지다가 1976년경부터 '방송담당이사' 호칭으로 변경되었고, 1980년 언론기본법 제정 이후 방송편성책임자 공표가 의무화되어 1981년에는 1TV, 2TV, 3TV-라디오담당이사로 3분할되었다가 1984년 사업본부제 도입 후 '방송본부'로 통일되었다.
1986년 조직개편 때 TV-라디오본부로 이원화되었다가 1991년 '방송총본부'가 생기면서 그쪽 예하로 재편되었고, 앞서 말한 두 본부에 각자 속했던 매체별 편성실이 분리/통합되어 '편성실'로 개편되었다. 1993년 방송총본부가 해체되어 그 임무가 편성운영본부로 넘어갔다.
1998년 편성운영본부가 해체되어 그 기능은 산하 기구였던 편성실에 넘겨졌고, 동년 12월에는 신설된 방송정책실이 맡기 시작하여 편성실도 그쪽 예하로 가면서 '편성국'이 되었다. 2000년에는 편성본부로 넘겨졌다가 2010년 조직개편 때 편성본부가 편성센터로 격하되었고, 일부 핵심 기능은 신설된 사장 직속기구 '편성실'로 넘겨졌다가 2013년 이 둘이 합쳐져 편성본부로 다시 확대되었고, 2016년 방송본부로 또 개편되어 TV와 라디오편성을 모두 담당하였다.
- 최서영 (1980~1981)
- 윤혁기 (1981~1984(1TV) / 1984~1985)
- 손영호 (1981~1984(2TV) / 1985~1986)
- 정순일 (1981~1983, 3TV 및 라디오)
- 차종호 (1983~1984, 3TV 및 라디오)
- 김도진 (1986~1988, TV) / 박근주 (1986~1988, 라디오)
- 장한성 (1988~1991, TV) / 전영효 (1988~1991, 라디오)
- 강병우 (1991, 1993~1996)
- 박성범 (1991~1993)
- 안국정 (1996~1998)
- 최충웅 (1998)
- 이석우 (1998)
- 강대영 (1998~2000)
- 이흥주 (2000~2001)
- 김승종 (2001~2003)
- 이원군 (2003~2005, TV)
- 조원석 (2004~2008, 라디오)
- 장윤택 (2005~2006, TV)
- 남성우 (2006~2008, TV)
- 최종을 (2008~2009)
- 이혁주 (2009~2010)
- 서재석 (2010~2012)
- 서재원 (2012)
- 전진국 (2012~2014)
- 권순우 (2014~2015)
- 김성수 (2015~2017)
- 김영국 (2017~2018)
- 황용호 (2018~2020, TV / 2018~2019, 라디오)
- 국은주 (2019~2020, 라디오)
- 한창록 (2020~2021, TV) / 최봉현 (2020~2022, 라디오)
- 강희중[529] (2021~2023, TV)
- 신원섭 (2023, 라디오)
- 정일서 (2023~, 라디오)
- 신재국 (2023~, TV)
26.2. 직원[편집]
공채는 공사 출범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서울중앙방송국 시절에 관리직은 문화공보부 공무원[530] , 전문직은 임시직이었으나, 1973년 공사 출범 이후부터 사원 신분으로 하고 있다. 다만 1984년에는 공채 없이 134명을 특채했다.[531]
26.2.1. 보도본부[편집]
26.2.1.1. 기자[편집]
26.2.1.2. 기상캐스터[편집]
26.2.1.3. 장애인 앵커[편집]
26.2.2. 아나운서[편집]
- 일러두기
-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기수(공사화 이후 기준) 및 성별(동일 기수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순, 지역권은 지역권순 우선)로 나열합니다.
- 단, 지역권 아나운서는 계속 지역방송(총)국에서 머물게 됩니다.
- 취소선은 사망(재직 전후),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직), 전향(타 부서, 일반관리직 영전), 이직(다른 직종), 이적(다른 방송국)한 아나운서 입니다.[532]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아나운서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CBS(기독교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언론통폐합 전에 퇴사한 아나운서는 기재하지 않습니다.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아나운서입니다.
[※]
26.2.3. 성우[편집]
26.2.4. 탤런트[편집]
- 일러두기
- 활동중인 탤런트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혹은 무명 및 특채 탤런트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탤런트입니다.
26.2.5. 코미디언[편집]
- 일러두기
- 활동중인 코미디언을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혹은 무명 및 특채 코미디언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탤런트입니다.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탤런트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코미디언입니다.
26.2.6. 프로듀서[편집]
볼드체로 표시된 인물은 임원에 속한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라디오, 편성
- 1945년 입사:
노정팔[679] ,이상만 - 1961년 입사:
고성원,김재형[680] ,이남섭[681] ,황정태 - 1963년 입사:
차재영[682] - 1964년 입사:
김영희 - 1965년 입사:
김연진[683] ,박철[684] ,이정훈[685] - 1967년 입사:
이흥주 - 1968년 입사:
최선규 - 1969년 입사:
강일파,이유황,이진욱,정영철,주일청[686] - 1970년 입사:
박경식,안국정[687] - 1971년 입사:
김승종[688] ,김충길,김현숙,김홍종,백재하,장기오,장형일,최상식 - 1972년 입사:
김수동[689] ,정선언 - 1973년(1기) 입사:
최상현[690] ,곽명세,금웅명[691] ,김재현,김종건,정수웅[692] ,박현순,조의진,홍성룡,이종하,한신평,이석우,박윤행,윤기호,장병도,박건삼[693] ,김균태,윤재동,장동선,장병기,주대식,안경은,박인배,김광식,강동순[694] - 1974년(2기) 입사:
이양구,조원석[695] ,윤창환,윤상문,이철용[696] ,손장권,유시창 - 1975년(3기) 입사:
송영구,강진호,이윤선,홍성우,양성수,이동순,홍성용,차갑진[697] ,류시형,김세근 - 1977년(4기) 입사:
이원군[698] ,허규,방진혁,박진수,강진환,박수창 - 1978년(5기) 입사:
경명철#[699] ,박현정,이순철,이영국,임웅빈,변연식,박영규,조대현,김혜경,박준남,장충길 - 1979년(6기) 입사:
김영신,박희정,윤종배,이규환,이양훈,이원익,김시연,이승원[700] ,진병윤,현정주 - 1980년(7기) 입사:
강성철 - 1981년(8기) 입사:
신상용[701] ,고희일,공영화[702] ,권순우[703] ,길환영,김대화,김영선[704] ,김철수A[705] ,김현준,박수동,성준기[706] ,송주하,송희일,안상윤[707] ,엄기백,오동석,이녹영,이상여,이영돈,이영희,이응진,이종한[708] ,이현석,전용길[709] ,진기웅[710] ,최길규,홍성덕,황우섭[711] ,최수형[712] - 1982년(9기) 입사:
김상기,김종식,박영주,신현수,오진규,윤명식,이민홍,장해랑[713] ,정을영,주병대[714] ,채치성,이상우 - 1983년(10기) 입사:
박해선[715] - 1984년 입사:
나상엽,박태호[716] ,정훈[717] ,허성룡 - 1985년(11기) 입사: 고영탁, 김명욱,
김성환,김종선[718] ,김철수B[719] , 남현주,문창석,노윤갑, 박정미[720] ,서재석[721] ,윤석호[722] , 이덕건,이상요[723] , 임주빈, 임혜선,전기상[724] ,전산,전진국[725] ,허웅[726] ,현상윤[727] ,홍혜경[728] - 1985년(특채) 입사:
변석찬[729] - 1986년(13기)[730] 입사:
구수환,조인석[731] , 정성효[732] ,함형진[733] - 1987년(14기) 입사:
김영진,민영문[734] ,박중민[735] ,신경섭[736] ,이기원[737] ,이상운[738] ,이성주,이용우[739] ,이은수,황용호[740] - 1987년(15기) 입사:
고흥식[741] , 곽기원,국은주[742] ,김정수,우종택[743] ,오세강[744] , 이강현 - 1989년(16기) 입사: 김창범,
양승동, 어수선,이재영, 장영주 - 1990년(17기) 입사: 김덕재 (부사장)[745] , 신재국 (편성본부장), 공용철,
이강택[746] ,문보현[747] , 조해달, 최철호, 홍성협,권혁만[748] - 1991년(18기) 입사:
강일수,김종창, 신창석, 윤태호, 이원희, 임세형, 최지영,표민수[749] ,한창록[750] - 1992년(19기) 입사:
김석윤, 김영도,김평중, 심광흠, 이재우,최봉현,한정석[751] , 한준서 - 1993년(20기) 입사: 황의경 (드라마센터장)[752] , 황대준 (대전방송총국장),
강희중, 류지열[753] , 배경수[754] , 손현철, 유건식[755] ,이건준[756] ,이훈희[757] ,정해룡[758] - 1994년(21기) 입사: 김호상 (울산방송국장), 김성근[759] , 배경수, 윤선원,
이욱정,이형민[760] , 최기록, 한경천[761] , 홍석구[762] ,황대준 - 1995년(22기) 입사: 이재오 (제작1본부장), 정일서 (라디오센터장), 김정환 (국제방송국장), 서용하 (멀티플랫폼전략국장), 양홍선 (부산방송총국장), 이내규 (시사교양1국장), 한경택 (협력제작국장), 최재복 (1TV 편성부장), 고정훈, 고찬수[763] , 권오훈,
권용택[764] ,김규태[765] , 김민철, 김상무,김영삼[766] , 김윤환, 김은주, 김정록, 김진수, 김창회, 김한석, 김현기, 김현수, 김현철, 김형석, 김형준, 나원식, 류송희, 민노형, 박건, 박기현[767] , 박성철, 박유경, 박정수, 박충원, 배용화,서수민[768] , 성준해, 손성배, 송웅달, 송주미, 안종호, 안주식, 유태진,윤성식[769] , 윤성도, 윤중경, 이경묵, 이계창,이명한[770] , 이민호, 이병창, 이선동, 이재혁, 이정수, 이진서, 이황선, 임기순, 임현진,전창근[771] , 전희수, 정현모,정희섭[772] , 최기석, 한응식, 홍경수, 홍진표 - 1996년(23기) 입사: 박융식 (멀티플랫폼편성국장), 김은정, 김종석, 김형주, 김희수, 남유진, 문석민, 박성용, 박은희, 백종희, 손종호, 손준영, 연종우, 오인교, 은경수, 이병용, 이제석, 장영우, 정승우, 최용수, 한상준
- 1997년(24기) 입사: 조현아 (예능센터장), 김정은 (제작기획1부장), 박성주 (편성제작부장), 강병택[773] , 강성훈, 강요한,
곽정환[774], 권계홍[775] ,권재영[776] , 기민수[777] , 김강훈, 김광수[778] , 김상휘[779] ,김석현[780] , 김신일, 김영선, 김원, 김정규[781] , 김정희, 김진환, 김필준, 나영, 류명준, 문소산, 문준하, 민일홍, 박기호, 박일해, 박창, 백주환, 신동조, 오수진, 원종재, 유경숙, 유웅식, 유현기, 유희원, 윤영식,윤현준[782] ,이동희[783] , 이세희[784] , 이원규, 이정환, 전우성[785] , 정택수, 정혜경,조승욱[786] , 조정훈, 최근영,최재형, 최지원, 최필곤, 하태석,함영훈[787] , 홍기호, 홍순영, 황응구 - 1998년(25기) 입사: 김영동,
김정민, 박용석, 이동우, 이정섭, 이혁휘, 조준희, 지병현, 지형욱, 한동규 - 2000년(26기) 입사: 김연미, 김영조, 김용호, 박정연, 손승현, 유광태, 이소연, 이승하, 이형진, 이호경[788]
- 2001년(27기[789] ) 입사:
김성윤[790] , 김영균,김원석[791] , 김호상,나영석[792] ,모완일[793] , 박정유,박현석[794] ,신원호[795] , 황인혁 - 2002년(28기) 입사:
고민구[796] ,김수아[797] , 김지연, 김형주, 노상훈, 문성훈,송현욱[798], 신미진, 이성범,이응복[799], 윤병준 - 2003년(29기) 입사: 강윤기, 고세준, 기훈석, 김경정, 김상미, 김세원, 김영민, 김자현, 김진원, 김홍범, 박지영[800] , 박진호, 안준용, 염지선[801] , 오은일, 이기리, 이진희, 이태웅, 이현정, 전인태, 정미영[802] , 정효영, 조성숙, 허양재
- 2004년(30기) 입사: 강남경, 김광수, 김대현, 김무성, 김민희, 김승욱, 김영숙,
김진우[803] , 김한솔, 김해룡, 남진현[804] , 류종훈, 박덕선, 박석형, 박성재, 박용훈, 박정훈, 백상훈, 백승철, 손지원, 양자영, 양천호, 윤진영, 이기연, 이동은,이예지[805] , 이은형, 이은진, 이정윤, 이준화, 이지운, 이충언, 이형일, 임병석, 전수영, 정경아, 정범수, 정희선, 조민지, 조지호, 지성찬, 최수영, 최승화, 최형준 - 2005년(31기) 입사
- 2006년(32기) 입사: 김미해, 남상원, 박진석[811] , 손자연, 유재우, 유지윤, 장윤선, 지우진, 하종백
- 2007년(34기) 입사: 김동휘, 김영우, 김윤정, 김정하, 김정현, 김태두, 박수정, 박지은, 박현진,
유종선, 윤민아, 이선희, 이재훈, 이태헌, 장효선, 전온누리, 조영중, 진정회, 홍아람 - 2008년(35기) 입사: 김근해, 김민경, 김범수, 박민정, 서승표, 안상미, 안지민,
원승연[812] , 유정아, 유혜진,유호진[813] , 이명희, 이윤정, 정연희, 정현재, 현재성, 황초아 - 2009년(36기) 입사: 김은비, 손수희, 심정애, 안상은, 이주영, 이호, 임종윤, 최윤석
- 2010년(37기) 입사: 김민정, 김아리, 유경현, 유희진, 이지희, 전진, 최진영, 하동현
- 2011년(38기) 입사: 길다영, 김가람,
김민석[814] , 김은곤, 문지혜, 박병길, 박상욱, 상은지, 손성권[815] ,유일용[816] , 이승문, 이원식, 이정규, 임효주, 정재윤, 최승현 - 2012년(39기) 입사: 강민채, 김민회,
김성[817] , 김희선, 이해돈, 배선정, 장민석, 전혜란, 조나은, 조현웅, 최지훈 - 2014년(41기) 입사: 구상모, 김승용,
방글이, 이다솔, 이은규, 이인건, 최윤영, 최현정 - 2015년(42기) 입사: 권재오, 문경원, 박정환, 이상혁, 조애진, 정승안, 최승범, 최유빈
- 2016년(42기) 입사: 서지원, 이승민, 이이백, 이지웅, 이현정, 장민구, 전아영, 최윤화
- 2018년(44기) 입사: 신민섭, 유혜진
- 2019년(45기) 입사: 정용재
- 2021년(48기) 입사: 강재훈, 김미래[818] , 김상엽, 노준호, 임지수, 임현정, 조수민
- 그 외:
강민구,김성수[819] ,김시규[820] ,김영국[821] ,김진홍[822] , 김충[823] ,오용한,이원규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제작
1991년 이후 이들은 KBS 미디어 소속이다.
-
공승환[824] - 구혜선[825]
- 김웅종
- 김정욱
- 박소영[826]
- 서원석
- 이경숙[827]
- 이영주[828]
- 이재길
- 임근택[829]
- 장경수[830]
- 하인성
- 허이선[831]
- 현혜원[832]
26.2.7. 엔지니어[편집]
- 이인관: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5년 8.15 광복 후 서울중앙방송국 발족 당시 연희방송소장을 맡다가 1948년 체신부 전무국 무선과장으로 이동됐다가, 1950년 공보처 방송국 송신과장으로 다시 옮긴 후 1953년부터 공보실 ~ 공보부 방송관리국 기감으로 수년 간 재직했고, 1968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돌아왔다가 1970년부터 3년여 간 방송관리국 기술담당관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6년 간 이사 겸 기술총국장을 역임했고, 1991년부터 4년 동안 KBS 사우회장을 지냈다. 1960년 방송문화상을 비롯 홍조근정훈장(1960), 녹조근정훈장(1967), 국무총리표창(1970), 대통령표창(1971), 옥관문화훈장(1977) 등의 수훈을 받았으며 2007년 2월 23일 작고.
- 한기선: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4년 청주방송국 개국요원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45년 8.15 광복 후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계장으로 발령났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전시방송국 기술과장으로 있다가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장을 맡기도 했다. 1956년 공보실 방송관리국 시설과장으로 옮긴 뒤 1968년 기술담당관으로 승진했고, 1970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또 옮기고 1973년 소래송신소장으로 내려가 이듬해 정년퇴임했다. 저서로는 <음학공학(1961)>, <건축의 음향설계(시릴 M. 해리스 & 번 O. 너드슨 공저 / 번역)>, <소리와 빛(1984)> 등이 있으며, 방송문화상 기술부문(1961), 한국방송대상 공로상(1974), 홍조근정훈장(1975) 등을 받았다. 2001년 작고.
- 박경환: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기술부 제1중계과 등지에 몸담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을 비롯, 1949년 백범 김구 국민장, 1958년 경부역전 및 경인역전 마라톤, 5.16 혁명 기념 시가행진 등지 현대사 속 중요한 사건들의 실황중계를 맡았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올림픽 중계방송 업무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총국 조정국 라디오조정부장을 비롯해 제작기술국 중계부장(1977~1979), 당진송신소장(1979~1980), 소래송신소장(1980), 제작기술국장(1980), 기술이사(1980~1983) 등을 두루 거쳤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KBS 민선 1기 이사를 지냈으며 2016년 7월 22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었다. 1982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 김성배: 기자와는 동명이인.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1950년 6.25 전쟁 당시 대전, 대구, 부산으로 각각 피난다니며 중앙방송을 도왔고, 1951년 서울 수복 후 정동으로 돌아와 선임으로 일하다 1960 로마 올림픽 때 기술요원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1962년 기술과 계장으로 올랐다가 1967년 공보부 시설과로 옮겨 시설담당관을 맡은 후 운용계장(1968~1972), 시설과장(1972~1973) 등을 거쳐 1973년 공사 창립 당시 기술국 기술관리부장으로 몸담았다. 그러고서 시설국장(1976~1980), 소래송신소장(1980) 등을 맡다가 1980년경 퇴사했고, 1987년 KBS 사우회 창립 당시 부회장을 1년 맡은 후 1995년까지 감사를 맡았고, 한국방송인동우회 부회장도 맡았다. 2016년 7월 29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 1979년 대통령표창 수훈.
- 송재극: 1956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1963년 이리송신소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오른 후 1968년 남양송신소로 발령나 500kW 대출력 건설에 참여했고, 연희송신소를 1971년 경기도 부천군 소래읍 미산리(현 시흥시 미산동)로 옮기는 데 주도한 바 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기술총국 시설부장을 비롯, 기술국장(1976~1980), 시설국장(1980~1981), 남산송신소장(1981), 기술본부장(1981~1983), 방송기기종합정비실(소)장(1983~1985), 기술정책개발반 국장(1985~1986), 종합조정실(1986) 등을 거쳐 1986년 말 KBS의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자 방송망사업국장으로 있었고, 1988년 5월 KBS 방송연수원 교수로 돌아와 연말까지 맡고 퇴직했다. 이후 한국데이타통신 연구위원,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위원 및 이사, 고문, 한국방송공학회(현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1991~1993년 및 2001~2003년까지 두 차례 KBS 이사를 지냈고, 2021년 2월 3일 작고. 대통령표창(1972 / 1976), 한국방송대상 기술상(1983), 국민포장(1986) 등 수훈.
- 강진구: 195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 개국 당시 그쪽으로 옮긴 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삼성전자 및 삼성반도체통신 대표이사, 삼성전기 회장 등지 역임. 2017년 8월 19일 작고.
- 조찬길: 1957년 공보실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시절부터 공채 입사한 이래 운암송신소장 등을 지냈고, 1973년 공사화 후 중계부장을 시작으로 김제송신소, 시설1차장 등을 거쳐 방송망관리실장(1981~1983/1988(부본부장대우)), 방송기기종합정비실장(1983~1984), 방송망감시실장(1984~1986), 라디오기술국장(1986~1988) 등을 두루 거친 후, 1988년 11월 서영훈 사장 취임에 따라 기술본부장까지 승진했다가 1991년 촉탁으로 전환되면서 제작지원단준비단장으로 발령나 자회사 'KBS 아트비전'의 창립을 주도한 뒤, 초대 사장으로 선임되어 2년간 지냈다. 이후 KBS 제4기 이사로 재직했으며 2014년 12월 17일 작고.
- 안흥식: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1년 공보부 방송관리국으로 이동되었다가 이듬해 MBC로 이직.
- 장용섭: 1959년 6월 전주방송국 입사. 1962년 서울국제방송국 기술과로 올라온 후 1967년부터 3년 동안 문화공보부 방송관리국에 몸담은 바 있다가 이후 중앙방송국 시설과로 배치되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기술국 기술관리부에 배속된 후 1976년 시설국으로 옮겨 차장으로 승진했고, 1979년 청주방송국 기술부장으로 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 감사실 검사역으로 본사에 돌아왔다. 그 뒤 수원송신소장(1981~1987), 기술관리국 방송망시설부장(1987~1988), 라디오기술국장(1988~1989), 방송망관리실 운용국장(1989~1990), 방송망관리국장(1990~1992) 등을 두루 거치다가 1992년 12월 22일부로 정년퇴임한 후,[833] 1993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이사로 임명되어 1년을 지내다 1994년 마포종합유선방송 기술이사로 영전되었고, 1997년 전무까지 승진해 2년을 지냈다. 1991년 한국방송대상 송출기술상 수상.
- 오승룡: 성우와 동명이인. 대한방송(HLKZ-TV) 출신으로 1959년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한 후 1961년 TV방송 개국 당시 비디오맨으로 활동했고, 1962년에 보수반장 및 중계기술 감독을 했다가 1963년부터 KBS 제1차 시설확장공사 책임기사를 맡아 남산 사옥 스튜디오 확장공사를 이끌었다. 이후 전주방송국 이리송신소장, 제1조정계장 등을 거쳐 1968년 MBC로 이직했다가 1972년 KBS 제2조정과로 돌아왔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국 라디오조정부장으로 올랐다가 이후 중계부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1976년 이후 미국 웨스팅하우스로 옮겼다가 1978년 연수원 연구실로 돌아온 후, 부산방송국 기술부장(1979~1981), 기술국 기술보전부장(1981~1984), 올림픽방송본부 기술개발실 기술기획담당(1984~1985), 기술부장(1985~1987), 텔레비전기술국 부국장(1987~1988), 방송망관리실/기술본부 시설국장(1988~1991), 방송연수원 교수(1991~1993) 등을 두루 거쳤다.
- 홍기준: 1960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영선: 성우, 정치인과 동명이인. 1960년 목포방송국 입사 후 중앙방송국 기술과로 옮기기도 했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1979년 기술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보전부장(1980~1981), 운용기술부장(1981~1982), 소래송신소장(1982~1983), 방송망관리실장(1983), 당진송신소장(1983~1987), 김제송신소장(1987~1989), 라디오기술국장(1989~1990), 방송기기정비센터 국장(1990~1991), 기술본부장(1991~1992) 등을 두루 거쳐 1992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다. 1995년 중앙케이블비젼 설립 후 초대 대표이사를 수년 간 맡으며 1995년부터 4년 동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까지 맡았다. 1992년 국민포장 수훈.
- 김순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로 옮겼다가 1969년 MBC로 또 옮겼다.
- 최인열: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윤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광식: 1961년 7월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남산TV송신소 공사현장에서 근무한 바 있고, 1968년 제2부조정과에도 몸담았다. 1973년 공사화 후 건설본부 기술부장을 비롯 제작기술국 텔레비전중계부장(1977~1979), 제작기술국장(1979~1980), 시설국장(1980~1983), 기술본부장(1983~1988), 올림픽기술본부장(1987~1988), 기술상담역(1988~1991) 등을 두루 거쳐 1991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감사로 내려가 2년을 지냈다. 1993년 KBS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도 역임했으며, 2017년 2월 15일 작고.
- 서정원: 축구인과 동명이인. 1961년 대전방송국에 입사한 후 식장산중계소장 등을 맡다가 1981년 기술부장까지 올랐고, 1982년 감사실 검사역으로 본사에 입성했다가 1984년 강릉방송국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그 뒤 기술본부/기술관리국 기술기획부장(1985~1988), 화성송신소장(1988~1992), 시설국 기술위원(1993), 기술관리국장(1993~1994), 중계기술국장(1994~1995), 기술본부장(1995~1997) 등을 두루 거쳐 1997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1987년 국민포장 수훈.
- 고흥복: 1962년 공보부 방송관리국 시설과에 입사한 후 이듬해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로 발령났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이일로: 1963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에 입사 후 1968년 중앙방송국 출범 당시 그쪽으로 이동되어 한동안 기술부에서 일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시설국 관리부 차장으로 승진하여 1976년 기술부로 옮기기도 했고, 1979년 춘천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장(1980~1984), 기술본부 방송망관리실 시설운용담당(1984~1986), 전송시설관리담당(1986), 기술관리국 방송망관리부장(1986~1988), 운용국장(1988~1989), 텔레비전기술국장(1989~1990), 제작기술국장(1990~1991), TV기술국장(1991~1993), 기술본부장(1993~1995)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2년을 지낸 뒤, 1997년 KBS 영상사업단 고문으로 추대되어 1년 간 지냈다. 그 뒤 한국멀티넷 기술부문장(2000~2001), 한국디지털위성방송 기술고문(2002~2005), KBS 경영평가위원(2003~2005) 등을 맡다가 2003년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현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 설립을 주도하여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2009년부터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TV프로그램 제작기법(1983)>, <뉴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1984)>, <방송기술의 이해(1992)>, <디지털 방송기술사전(1995, NHK방송기술연구소 저 / 번역)> 등이 있으며, 공보부장관 표창(1965), 제6회 백제미술대전 사진부문 대상(1987, 체육부장관상) 등 수훈.
- 김순길: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기술과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오정수: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윤재덕: 극단 드라마센터 출신으로,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으로 입사했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조동근: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이종성: 196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선권: 1973년 11월 무선기술B 직종으로 입사한 이래 여수방송국 신원송신소(1974~1978), 순천방송국 고흥중계소(1978~1980), 광주방송국 비아송신소(1980~1984) 등지를 전전하다가 1984년 방송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면서 그 쪽으로 배치되었다. 1988년 원주방송국 현업기술부 소속으로 KBS에 돌아와 이듬해 제작기술국 TV제작기술부로 올려졌으며, 1990년 광주총국 라디오기술부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1993년 시설국 자동화사업부 차장을 거쳐 제주총국 기술국장(1999~2001), 기술관리국 장비관리부주간(2001~2003), 방송망기기정비국 검사부주간(2003~2004), 남산송신소장(2004~2008), 소래송신소장(2009~2010) 등을 거쳐 2010년부터 2년 동안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을 지내고 퇴사.
- 안동수: 1974년 11월 전기직으로 입사한 이래 올림픽방송본부 관리국 자료관리부 등지에 몸담다가 1989년 제2기 KBS 노동조합(1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1990년 KBS 사태 당시 총파업을 지휘하다 구속 후 1991년 해고 처분을 받았고, 1993년에 사면 후 복직되어 1994년 부장급 기술위원, 1999년 기술연구소장, 2000년 남산송신소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까지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후보 신청도 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2018년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창립 시부터 수석부회장을 역임 중이고, 콘텐츠웨어 회장, 서울벤처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유비쿼터스미디어콘텐츠연합 수석부총재 등도 맡고 있다.
- 임정규: 자황중학교 교사 출신. 1974년 11월 무선직A로 입사한 후 초기에는 제주방송국에서 순환 근무하다 1979년 청주국으로 옮겼고, 1983년 한국언론연구원 주관 하에 영국 연수를 거친 뒤 1983년 본사 보도본부 보도기술부로 옮긴 이래 1990년 한-소 수교 및 1992년 한-중 수교,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등 역대 대통령들의 정상외교 과정을 TV 화면에 담아내는 데 기여해왔다. 1990년 국제부로 갔다가 1993년 전주방송총국 기술관리부장으로 처음 간부직을 맡아 1994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현업총감독으로 본사에 복귀한 후, 위성기술총감독(2000~2001), 제작본부 TV기술국 주간(2001~2002), TV기술국장(2002~2003), 기술본부장(2003~2004) 등을 두루 거쳐 2004년 KBS 아트비전 감사로 발령나 1년을 몸담았다. 이후 2012년 KBS 이사회 경영평가위원을 거쳐 동년도부터 3년여 간 이사까지 맡았다. 저서로는 <역대 대통령 정상외교(2014)>가 있다.
- 김영해: 1978년 입사 이래 TV기술국 편집관리부와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등지를 전전하다가 1995년 보도기술부 감독으로 올랐고, 2003년 영월방송국장을 비롯해 보도기술팀장(2004~2006), 춘천방송총국장(2006~2008), 기술본부장(2008~2009)을 거쳐 2009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을 역임했다. 2022년 8월 23일 작고.
- 김순기(金順起):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시흥송신소장을 시초로 연천중계소장(1983~1985), 방송망감시실 유무선통신망 관리담당(1985~1986), 시설운용담당(1986), 수원송신소장(1987~1988), 시설국 자동화사업부장(1988~1992), 위성방송준비국 방송부주간(1992~1993), 방송기기정비실장(1993~1994), 방송망관리국장(1994~1997), 기술본부장(1997~1998) 등을 두루 거쳐 1998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고, 2003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 이일성: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이곳에 배치되어 1981년 차장으로 승진했다가, 1990년 군산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뉴미디어국 기술부주간(1993~1994), 기획예산국 기술부주간(1994), 김포송신소장(1994~1997) 등을 지냈다.
- 조해남: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이곳에 배치된 이래 2003년 기술개발국 장비관리부주간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장비보전팀장(2004~2005), 방송기술연구팀장(2005), 중계인프라팀장(2005~2008), 남산송신소장(2009), 기술본부장(2009~2010) 등을 두루 거쳐 2010년 KBS 비즈니스 감사로 발령났다, 2011년 JTBC 기술센터장으로 영전된 후 기술부문이 'JTBC미디어텍'으로 분사되면서 초대 대표이사를 5년여 간 맡았다.
- 김석두: 1981년 입사한 이래 TV기술국을 비롯 여수방송국 망운산중계소(1990~1993), 기술관리국 기술관리부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방송망관리국 개봉송신소 감독으로 간부직을 처음 맡은 후, 춘천방송총국 기술국장(2001~2005), 정책기획센터 난시청해소프로젝트팀장(2005~2007), 기술전략기획팀 부장(2007~2008), 기술전략기획팀장(2008), 기술관리국장(2009~2010), 네트워크관리국장(2010~2011) 등을 거쳐 2014년 기술본부장까지 올라 1년여 간 맡았다.
- 이종화: 1982년 입사한 이래 기술연구소에서 일해 오며 1994년 차장으로 승진했다가, 1999년 기술관리부 기술협력부주간을 시초로 기술기획부 기술협력부주간(2000~2001), 기술관리부 기술기획부주간(2002~2003), 기술연구소 연구부주간(2003~2004), 디지털미디어센터 멀티미디어팀장(2004~2005), 미래미디어전략국장(2010~2011), 기술전략국장(2011~2012), 제주방송총국장(2012~2013) 등지 역임. 1999년에 출간된 <HDTV 이론과 기술>의 공저자이기도 하며 동년도에 다산기술상 수상.
- 이종옥: 1985년 입사한 이래 2006년 대전방송총국 기술팀장을 시초로 방송시설국 제작시설부장(2010~2011), 방송시설국장(2011~2012),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기술본부장(2012~2014) 등을 각각 거치다가 2014년 KBS 비즈니스 이사로 이동했고, 2017년 본사 경영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이듬해 양승동 사장이 취임하면서 사임했다.
- 진종철: 1987년 입사한 이래 대구방송총국 기술팀 등지를 돌며 엔지니어로서 일할 적 KBS노동조합(1노조,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제4~5대 대의원, 6~8대 안동지부장, 대구-경북 시도지부장 등을 거쳐 2005년 위원장까지 오르며 반 정연주 성향의 선두에 있었으며, 2008년 정연주 사장 퇴임 후 2009년 1월 KBS홀 팀장을 시초로 시청자사업팀장(2009~2010), 시청자권익보호국장(2010~2011), 네트워크관리국장(2011~2012) 등을 거쳐 2012년 (재)디지털시청100%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다.
- 박병열: 철도청, 한국전기통신공사 출신으로, 1987년 입사 이래 2006년 광주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2010년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기획부장, 2011년 기술기획부장, 2012년 원주방송국장 등을 거쳐 2013년 퇴임 후, 2014년부터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코리아) 사무총장을 맡다가 이듬해 기술본부(제작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지만 2016년 노조 측의 70% 불신임으로 2017년 1월 면직됐다. 이후 2017년부터 3년 동안 KBS 비즈니스 감사를 지냈다. 2020년 안세기술 상무이사로 영전.
- 김순기(金舜基): 1987년 입사 후 2005년 춘천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TV제작본부 TV편집기술팀장(2007~2008), 기술본부 기술관리국 기술기획팀장(2009~2010),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운영부장(2010~2011), 제작리소스센터/제작기술센터 보도기술국장(2011~2014), 제작기술센터장(2014~2016), 네트워크센터장(2016~2017), 제작기술본부장(2017~2018) 등을 거쳤다. 2018년 퇴임 이후 2019년부터 자유미디어국민행동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7년 방송의 날을 기념해 국무총리표창 수훈.
- 김용덕: 1989년 입사 이래 엔지니어 시절 용문산중계소, TV중계부, 관악산송신소 등지에서 일하며 KBS기술인협회 사무처장,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사무국장, 제6대 KBS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2018년 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다가 2019~2021년까지 KBS 비즈니스 이사를 지냄.
- 김병국: 1989년 입사 후 울산 무룡산 송신소 근무를 시초로 엔지니어 외길을 걸으며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부산지부장 등지에 몸담기도 했고,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네트워크본부장을 시초로 처음 간부직을 맡아 2019년 지상파UHD방송추진위원회(UHD코리아)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고, 2020년 제주방송총국장을 거쳐 이듬해 김의철 사장 취임 후 기술본부장으로 등극했다.
26.2.8. 기타[편집]
- 이장춘: 1963년 서울국제방송국 PD로 입사한 이래 1998년 퇴직 시까지 중앙출장소장, 업무국장, 기획조정실 기획예산관리담당 부장, 방송편성위원회 방송자료센터부장, 관재국장, 전산정보실장, 제주방송총국장 등을 두루 거친 방송 전문가로, 퇴사 이후 (사)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등지를 역임함.(블로그[834] )
- 이일구: 1980년 미술직 입사 후 1991년 KBS 아트비전 설립 당시 합류. 용의 눈물, 개그콘서트, 인간극장, 아침마당 등 자사 프로그램 타이틀로고 디자인을 맡아왔고, 서예에도 능해 2001년 제24회 원곡서예상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2002년 KBS 아트비전 그래픽부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경영기획국(팀)장(2003~2008), 미술제작국장(2009~2010), 의상제작부장(2011~2012), 상임이사(2012~2013) 등지 역임. (다음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1997년 조선일보 인터뷰)
- 전홍구: 1981년 행정직 입사. 1993년 춘천방송총국 총무부장을 비롯해 개혁기획단 차장(1998), 인사관리부주간(1998~2000), 인사/임금제도부주간(2000~2003), 총무국(팀)장(2003~2006/2009), 관재팀장(2006~2008),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2009~2013), 부사장(2013~2015), 감사(2015~2018) 등을 지냈다.
- 금동수: 1982년 행정직 입사. 1999년 노무부주간을 비롯해 2014년 3월 정년퇴임 시까지 KBS SKY 사장(2002~2005), 편성본부 저작권팀장(2005~2006), 노사협력팀장(2006~2008), 인적자원센터장(2008), 인력관리실장(2009~2010), KBS 미디어 사장(2010~2011), 글로벌전략센터장(2011~2012), 창원방송총국장(2012~2014) 등을 거쳤다. 2014년 5월 조대현 사장 취임 후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1년여 간 맡았다.
- 지한규: 신필름영화예술학교 출신으로 상업사진을 찍다가 1977년에 선배의 조언으로 수중촬영에 발을 들였고, 1984년 수중촬영전문기사로 입사한 이래 <한려수도 해저1천리>, <형사 25시>, <검생이의 달>, <용의 눈물> 등 드라마, 다큐멘터리 프로의 촬영을 맡았다. 2006년 그리메상 공로상 수상.[835]
- 은문기: 1985년 경영직 입사. 2002년 편성본부 콘텐츠정책보조관을 비롯해 2004년 KBS 인터넷 이사 및 글로벌센터 글로벌전략팀장, 2007년 KBS 아메리카 사장, 2011년 감사실장, 2012년 스마트KBS추진단장, 2014년 창원방송총국장 등을 거쳐 2017년 KBS 시큐리티 사장을 7개월 동안 맡았고, 2018년 이후 재원관리국(수신료국) 강북사업지사로 내려간 후 2020년 3월 31일 정년퇴임.
- 이석인: 1985년 미술직 입사. <달려라 하니>, <명탐정 번개> 등 여러 TV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함. 보도그래픽부 제작위원, 영상그래픽부 차장, 보도그래픽부장(2011~2013) 등을 맡아왔고, 그 외에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 지평캘리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함.
- 이완성: 동양정밀 출신. 1985년 입사 이래 2018년까지 속초방송국 총무부장, 경영본부 노무부주간, 사내근로복지기금 파견직원, 라디오 제작운영팀장, 노사협력팀장(주간), 정책주간, 청주방송총국장, KBS 시큐리티 사장, 시청자본부장 등을 거쳤다. 이후 아이텍 사외이사 역임.
- 지연옥: 1985년 특채 입사 이래 홍보실에서 근무하다 방송문화연구원 차장, 수원센터 연수2부주간 겸 교수, 시청자센터장 등을 거쳐 2009년 경영본부장까지 오름으로써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KBS 임원직에 올랐고, 2010년 시청자본부장, 2011년 KBS 비즈니스 이사 등지 역임.
27. 채널[편집]
참조 사항: 2002년 5월 이전까지는 뉴스,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KBS 로고(워터마크) 표시가 없었다. 이후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가[836] , 2003년 12월 1일 ~ 2010년 12월 31일까지 로고(워터마크) 위치가 왼쪽,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오른쪽에 표출중이다. 2018년 9월 3일부터 1TV와 2TV의 로고(워터마크)가 바뀌었다. 2020년 10월 20일부터 로고가 좀 더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지역국 폰트는 KBS 내부에서 사용하는 폰트로 변경하였다. 예전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엔딩 크레딧에 '제작' 폰트로 사용된 바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TV에서 사용하지 않고 내부용 폰트로 썼다가 30년 만에 TV에서 다시 쓰이게 된 셈이다.
27.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편집]
- 2023년 기준 운영중인 채널
- KBS 1TV(U-KBS STAR, ⓤKBS★)
- KBS NEWS D(UHD MMS)
- KBS 제1라디오(보이는 라디오, UHD MMS)
- KBS 2TV(U-KBS HEART, ⓤKBS♥)
- KBS 1TV(U-KBS STAR, ⓤKBS★)
- 2022년 기준 폐지된 채널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당시 화재로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던 DBC 대한방송의 TV 장비와 인력을 인수하였고, DBC가 원래는 KORCAD-TV(HLKZ)라는 RCA 제휴 민간방송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후덜덜한 방송장비를 갖고 있었다.[839]
현재 지상파 TV채널로는 KBS 1TV과 KBS 2TV를 운영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교육방송인 KBS 3TV도 있었지만[840] 1990년에 독립해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되었다.[841]
참고로 KBS1에는 한국의 지상파 TV채널 중 유일하게 상업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842] 하지만, 1994년 10월 1일 이전에는 상업광고를 했었다. KBS1에서 대놓고 9시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XX약품 광고가 나왔다.)[843][844] 다만 아무 시간대나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주로 스포츠 중계방송이나 특집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편성하거나 특정시간대를 정해서 광고를 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10월 8일 05:00부터 KBS 1TV의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상파로서는 최초다.[845]
KBS2의 경우 1980년에 내려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명시된 신문-방송 겸영 금지로 과거 민영방송이었던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로 이관되며 추가된 채널이다.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은 기존의 KBS 채널이었던 KBS1에서 담당하고 있었기에,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KBS2에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적었으며, 심지어 각종 대형사건 및 중요 행사와 관련하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뉴스속보나 생중계를 내보내는데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규방송을 당당하게 방송해 주던 단 둘 뿐이였던(EBS 포함) 지상파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KBS2는 전쟁이 나도 드라마나 쇼프로를 방송해 줄 거라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
2003년부터 KBS1은 푸른색(한색) 계열 '큐브' 디자인을, KBS2는 비슷한 시기부터 노란색(난색) 계열 '서클' 다자인을 BI로 쓰고 있다. 2015년 이 CI를 중심으로 방송 디자인이 개편된 적이 있었는데, KBS 9시 뉴스의 2015년 오프닝이나 KBS2 NEXT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이후에는 대놓고 채널 로고와 방송 디자인에 적용되어 있는 상황이며 표어도 각각 '오늘을 담는 창', '내일을 여는 빛'이 붙었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UHD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9-2번에 KBS NEWS D를 송출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시청할 수 있는 KBS 월드라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제작이 아니라 그냥 방송콘텐츠에다가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온 영문 자막을 그대로 덧씌워서 내보내는 형식이다.[846] 시청 국가 및 지역에 따라 편성표는 각각 운영된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에겐 꽤 인기있는 모양이다.[847]
KBS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음을 돌려쓴다.
27.2. 지상파 라디오 방송[편집]
- 2023년 기준 운영중인 채널
- 2022년 기준 폐지된 채널
과거에는 '사회교육방송'이란 것도 존재했으며[852] , 섬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전 9시 45분부터 방송되는 일기예보를 듣고 실제로 일기도를 그렸다. 물론 대략 80년대 얘기이며, 이제는 매시 58분마다 KBS 제1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다.[853][854]
하지만 국가기반 공영방송국 주제에 KBS 2FM은 광고방송을 이유로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855] 그래서 지방에서는 U-KBS MUSIC이라는 T-DMB V-Radio방송을 들어야하는데 한 프로그램만 릴레이를 하지 않고 자체방송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든 프로를 청취할 수 있다가 면허문제로 두 프로그램 대신 새 자체 프로그램이 송출되고 있다.
27.3. PP(KBS N)[편집]
- KBS drama
- KBS joy
- KBS N SPORTS
- KBS Story: 2013년 1월 1일 개국. 케이블TV 각 SO에서 기존 KBS Prime을 송출하던 번호를 배정받았다.
- KBS Kids
- KBS LIFE: 2015년 3월 8일자로 KBS Prime에서 변경.
- KBS N PLUS: 2017년 6월 개국한 OTT 전용 채널.
지상파 채널 외의 계열 방송사로는 KBS N이 있으며, 케이블 채널로 KBS drama, KBS joy, KBS N SPORTS, KBS W, KBS Kids, KBS N LIFE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KBS위성1,2를 관할하는 위성방송 PP로 출범했으나 해당 채널들이 전부 폐국하면서[856] 2006년 이후 유료방송 PP로 노선을 전환했다.
27.4. 인터넷 방송[편집]
- KBS NEWS D (舊 KBS 24시 뉴스)
KBS N 전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성하는 OTT 전용 채널, 2017년 6월 개국했다. myK, wavve 등에서 볼 수 있다.
27.4.1. esports KBS[편집]
e-스포츠 전문 유튜브 채널.
27.5. 유튜브 채널[편집]
운영 소관 부서는 편성본부 멀티플랫폼편성국이며, 2016년부터 3년 동안 미래사업본부 산하 디지털서비스국이었으나, 2019년 조직 개편 후 편성본부 산하로 이동되어 '디지털미디어국'이 됐다가, 2021년 조직 개편으로 현 명칭이 되었다.
- 공식 채널
- 뉴스
- 시사: 구 시사기획 창
- 선거방송기획단: 구 정치합시다
- 남북의 창
- 사사건건
- 질문하는 기자들 Q(종영)
- KBS추적: 구 시사멘터리 추적(2022년 8월 25일 이후로 KBS 시사와 통합)
-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 머니올라 - 구 사건 탐구: 사탐 티비
- 체크살 - 구 팩톡: 가짜뉴스 퇴치 프로젝트(폐쇄)
- 크랩: KBS DIGITALNEWSLAB
- 윤창희의 생존경제: 구 속고살지마
- 보다 VIEW(폐쇄)
- KBS News Sao Paulo
- KBS 교양
- KBS LIFE
- 다큐멘터리, KBS 다큐
- 해보라: 구 KBS지식 / 해 볼만한 아침 M&W
- 생방송 심야토론(종영(2022년 6월 25일 방영분 이후 업로드 중단))
- 국악한마당
- 인간극장
- 동물의 왕국
- 걸어서 세계속으로
- 생로병사의 비밀
- 역사저널 그날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 더 라이브
- 추적60분: 추적 60분이 2019년에 종영 직후 시사 직격으로 변경되었으나 2023년에 다시 복귀.
- 어린이
- KBS HUMAN: 뭉클티비: 구 KBS my K
- 클래식
- 허스토리
- KBS 실험실
- 세상의 모든 다큐: 구 디지털 시청자칼럼((2018년 9월 10일~2021년 8월 17일), 구 기막힌 티비(2021년 8월 18일~2022년 10월 8일) 2022년 10월 8일 이후로 KBS 실험실과 통합. 2023년 부터 현재 계정으로 변경.)
- 파일:KBS Entertain 로고.png 예능
- [파일:깔깔티비 채널 프로필 이미지.png 깔깔티비
- 크큭티비
- [파일:애니멀포유 유튜브 채널.jpg 동물티비: 애니멀포유
- KBS StarTV: 인물사전
- [파일:KBS 퀴즈 매니아 프로필.jpg 퀴즈 매니아(폐쇄)
- 슈퍼맨이 돌아왔다
- [파일:구라철 시즌3 로고.png 구라철
- 굿보스: 구 뻔타스틱(중단)
- 근슐랭가이드: 구 도니스쿨(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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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ain 가요톱10: KBS KPOP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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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K
- 아이돌 인간극장: KBS Kpop에서 독립한 채널
- 드라마
- KBS Drama Classic: 구 KBS 안테나
- 몬스터유니온: 구 KBS Drama(2020년 12월 24일 이후로 업로드 중단)
- 케미 TV
- KBS WORLD
- KBS WORLD News
- KBS WORLD Vietnamese
- K-Series : STORY & MUSIC: 구 KBS WORLD Latino / WE K-POP
- KBS America
- KBS WATV
- KBS World Arabic
- KBS WORLD Indonesian
- KBS WORLD Spanish
- KBS KONG
- 스포츠
- 옛날티비: KBS Archive
- [파일:esports KBS.png esports KBS
- KBS교향악단
- KBS국악관현악단
- KBS성우극회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27.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편집]
1995년 10월 9일에 한국 방송사로서 최초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7년 뉴스클립 다시보기 서비스, 1998년 본격적인 VOD 서비스 시작 때부터 2001년 초반까지는 주로 리얼 플레이어를 통해 회원가입/로그인 없이 무료로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857] 이후 회원제로 전환되었고, 2006년에 라디오 전용 프로그램인 Kong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다. 2012년경에 myK가 출시되어 이제는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를 막아놓은 MBC와 3분마다 광고를 봐야 하는(...) SBS와도 차별화되는 부분. 한국교육방송공사도 EBS Play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BBC의 iPlayer(플래시 기반)와 다르게 K플레이어는 그놈의 ActiveX 설치를 요구하기에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에서만 사용가능(...). 다만 일반적인 AOD, VOD는 2012년경 방영분부터는 WMA/WMV기반이 아닌 AAC/MP4 기반이기에 크롬 등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도 이용 가능. 홈페이지 자체는 2002년부터 자회사 KBS 인터넷(구 크레지오닷컴)이 위탁 운영을 맡기 시작했고, 2011년 그 회사가 KBS 미디어로 합쳐지면서 KBS 미디어가 운영 중이다.
KBS의 VOD 서비스가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저화질에 한해 무료라는 점. EBS마저도 일부 VOD가 유료이다. 그러나 KBS만큼은 무료 VOD 서비스를 고수하고 하는데, 고화질 다시보기의 경우 WMP 시절에는 일정 기간 동안 300K까지 제공했다가 2005년경 이후 '고화질(700K)'을 추가시켜 KBS 미디어의 유료 VOD 사이트인 콘피아와 연동되게 했고, 2010년대 들어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wavve로 연결되게 했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된 이후에는 드라마(일일 드라마를 제외한 월화 드라마/수목 드라마 등 평일 및 주말 드라마들)와 해피선데이, 해피투게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3주 정도 유료 서비스를 하다가 기간이 지나면 저화질에 한해 무료로 전환된다.[858] 수신료를 받는 마당에 이거라도 무료로 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타 방송사도 무료 VOD/AOD 서비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문화방송과 SBS는 라디오 AOD 서비스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시행 중이고, 지역방송과 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TV 프로그램일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대부분 프로그램의 VOD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서비스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전 방송분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이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859] 이로 인해 옛날 프로그램 매니아들은 당연히 불만을 품어왔고, 일부는 비싼 돈 들여가며 KBS 미디어를 통해 프로그램 복사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들어 홈페이지에서 옛날 프로그램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SBS, MBC와 비교해 더욱 까이나, 2019년부터 '옛날티비', '깔깔티비', '크큭티비', 'KBS Drama Classic', '같이삽시다', 'KBS실험실' 등지 유튜브 채널들에 옛날 프로그램 업로드를 분산시키고 있다.[860]
이곳에서 독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중계해 준다.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서울특별시청 등지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영상이다.[861]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 D-50 특별 생방송도 방송 이후 다음날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27.7. 팟캐스트[편집]
2013년까지는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한 후 별도의 프로그램(ActiveX)을 설치하여 로그인후 다운로드해야 하는 등 BBC, MBC와 비교해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으나 2014년부터는 아이튠즈 체제로 전환하여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8. 방송 현황[편집]
28.1. 프로그램[편집]
28.2. 재난 방송[편집]
언젠가부터 KBS는 자사의 특보방송이나 재난 대비용 spot 홍보영상 등에 "KBS는 재난주관방송사입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 실제로 KBS는 태풍, 산불, 폭설 등 기상 재난재해 관련 주관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영어로 된 뉴스 티커 자막도 제공 중이다.[862]
아직은 지진재난방송에 대해서는 비교적 미흡하다. 옆나라 일본을 보면 지진 2초 후 세부적인 지도, 상황, 앵커의 대처, 지진전문방송으로 넘어가는 등 대처에 적극적이다. 아무래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흡한 편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12월에 발생한 ‘제주 서남서 41km 해역 지진’에서 대처하는 모습은 ‘경주 지진’, ‘포항 지진’ 때의 보도보다 훨씬 나아졌다. 방송 송출 중, 경보와 대략적인 지진 상황을 알리고, 3~4분 후에 지도를 포함한 지진파가 미치는 지역, CCTV 등 지진 피해 현황이 담긴 세부적인 내용을 송출, 보도하는 등 많이 발전했다고는 보여지지만 이건 지진에만 해당되는 사항.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 장마/호우 등의 재난의 경우에는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당시의 논란과 같이 아예 재난주관방송사의 임무를 망각한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된 적 있으며, 2022년 중부권 폭우 사태/수도권/논란 항목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수도권, 그 중에서도 서울 위주의 재난방송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재난관련 속보는 타 방송사 자막속보를 보는 것이 더 빠른 경우도 있다. 실제로 태풍이 한반도를 직격할 때 가만히 보면 수도권을 강타할 경우와 아닌 경우 방송편성 자체가 확연히 차이날 정도이다. 2023년 현재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보도본부가 속보체제로 들어가는 시간은 빨라야 20분 내외로, 이웃나라 NHK와 비교해보면 너무 많이 차이나서 할 말이 없을 수준이다.[863]
28.3. 방송망[편집]
28.4. 네트워크[편집]
서울 외에도 지방에 9개 방송총국, 9개 방송국, 1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3개 해외지국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또한 각 지역방송국은 MBC-지역 MBC, SBS-지역민방처럼 네트워크 협력관계가 아닌, KBS라는 단일조직 내에 있다. 따라서 순환발령을 통해서 본사 직원이 지역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지역방송국 직원이 본사로 올라올 수도 있다. (다만, 신입사원 선발시에 전국권 TO와 지역권 TO를 분리해서 뽑는데, 전국권 TO만 서울본사로 바로 발령이 가능하고, 지역국 TO로 입사한 경우 최소 5년간 서울 본사로 전출이 불가능하다.)[864][865]
2004년 감사원 지적사항으로 지방 방송국 통폐합이 이루어 지면서 군산시, 남원시 (이상 전주), 속초시, 태백시 (이상 강릉), 영월군(원주)[866] , 공주시(대전), 여수시(순천) 7개 방송국이 인근 방송(총)국으로 합쳐졌다. 그런데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라디오 주파수 목록에는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이 7개 방송국이 독립된 방송국으로 적혀있다(...).[867] 당시 각 지역에서 반발이 많았으며, 여러 사연도 많았다. 여수방송국은 전라남도 동부권에서 순천방송국보다 훨씬 먼저 생겼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여수국은 철거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태백국 역시 철거되어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며, 전라북도에서는 2개의 지역국이 문을 닫으며 전주총국만 남게 되었으며, 충청남도에서도 공주국이 문을 닫으며 대전총국이 대전·충남 전역을 책임지게 되었다.[868] 그리고 유일하게 군에 있던 영월국이 없어졌다. 참고로 폐국된 영월국이 이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로 쓰인 바 있다.
라디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본사에서 지역국으로 시보나 방송시작멘트를 넘길 때 나는 효과음(띠리리리~ 띠리리리~)이 난 적이 있었다. 2016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역국 멘트를 송출할 때 서울 본사 멘트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었다.
2019년 8월 들어 KBS 본사 측에서 적자 경영개선 대책 중 하나로 지역방송국 기능축소를 제시해 구성원들의 반발이 크다. 2020년부터 지역방송국(경인, 강릉, 울산 제외)의 뉴스를 비롯한 TV 로컬방송을 폐지시키고 모두 상부 총국으로 이관하는 이른바 거점센터 기능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국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송출과 수신 개선 서비스, 수신료 징수 등의 반쪽 기능만 가능하게 된 셈이다. 당장 이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지역 언론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몇몇 구성원들은 삭발시위까지 했다. 심지어 여수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옆동네 KBS순천방송국의 기능 축소 문제를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KBS는 2020년 2월 3일부로 지역총국 중심 뉴스 통합 정책을 밀어붙여 시작했다. 매주 월-목 KBS 뉴스 7은 본사 뉴스를 받지 않고 40분 통으로 지역뉴스를 진행하며[869] 다만 을지역국의 경우 KBS 뉴스 9 로컬방송은 살려 놨다. 그러나 애초에 을지역국의 취재인력이 취재기자 2명, 영상기자 1명(...)으로 확 줄었기 때문에 을지역국에서 만들 수 있는 리포트기사는 꼴랑 1~2꼭지에 불과해 이거 말고는 그냥 총국에서 만든 기사를 중계하는 셈이 되었다. 게다가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KBS가 재난방송 체제로 접어들자, 여기에 총국중심으로 전 취재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뉴스9 로컬도 총국에서 모두 때우고 있다.
28.5. 계열사[편집]
- 현존
- 해산/매각
- KBS 문화사업단: 구 한국방송사업단. 1999년 KBS 영상사업단으로 합병.
- KBS 인터넷: 구 크레지오닷컴(2000년 설립). 2002년에 사명(약칭 KBSi)이 변경되었고 2011년 KBS 미디어로 합병.
- KBS 제작단(현 한국방송제작단): 1999년 코네스컨소시엄으로 매각.
- KBS LA: 구 미주한국방송(KTE). 기존의 SBC(중앙일보 계열)와 KTB(한국일보 계열), TV 코리아 3개 방송사를 합병한 방송사로 2008년 KBS 아메리카에 합병.
- 한국방송출판: 구 KBS 미디어 출판사업부. 《TV 유치원》 및 《굿모닝 팝스》 등의 발행처다.
28.6. 공익재단[편집]
- KBS 강태원복지재단
29. 간행물[편집]
29.1. 기록물[편집]
- KBS 연감 (1961~1973/1995~)[870]
- KBS 연지 (1975~1995)
29.2. 정기간행물[편집]
29.2.1. 잡지[편집]
- 여성백과[월간] (1981~1993)
- 월간 방송[월간] (1981~1984)
- 텔리비전[월간] (1984~1985)
- 문화정보[월간] (1985~1989)
- KBS 저널[월간] (1988~2005/2010~2012)
- TV유치원[월간] (1991~)
- 굿모닝 팝스[격월간] (1991~)
- 지구촌 영상음악[월간] (1993~2005)
- FM매거진[월간] (1993~1996)
- 게임피아[월간] (1995~2003)
29.3. 교재[편집]
30. 평가[편집]
31.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32. 노동조합[편집]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교섭대표노조): 민주노총 소속. 2009년 KBS 1노조의 우경화에 반발한 젊은 조합원들이 1노조를 탈퇴한 뒤 만들었으며, 2018년부터 1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로 승격되었다. 특히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투쟁에 앞장섰던 노조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해 공영방송이 아닌 노영방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2018년에는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방송차량서비스 노조)를 통합해 '방송차량지부'로 개편시켰다.
- KBS 노동조합: 1988년 결성. 미가맹. 원래 메인노조이자 언노련의 핵심이었으나, IMF 시대에 지역방송국 통폐합 과정에서 기술직들이 대거 갈려나가면서 기술직 출신 조합원들과 아나운서, PD 출신 조합원들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결국 기술직들의 지지를 받아 2006년 당선된 박승규 노조위원장(전 스포츠국장)이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사장 축출 시도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면서 언론노조에서 제명되었다. 2009년 언론노조 KBS노조가 생긴 후 대항 노조 자리를 굳히고 있으며,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좌천되거나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옛 간부나 사원들이 이 노조에 많이 있다.
- KBS 공영노동조합: 미가맹. 2011년 복수노조 허용 후 무보직 1직급 직원들이 결성한 노조.
- KBS 같이노동조합: 2023년 MZ세대 청년 직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노조.#
33. 교통편[편집]
33.1. 본관ㆍ신관[편집]
지하철
버스
- KBS 정류장 : 부천 버스 10, 부천 버스 70-2,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5615, 서울 버스 5618
- 국회의사당역 정류장 : 고양 버스 108, 용인 버스 7007-1, 광역급행버스 M7625,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260,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463, 서울 버스 6713, 서울 버스 7613, 서울 버스 영등포10
- 여의도공원/전경련회관 정류장 : 고양 버스 871, 광명 버스 11-1, 광명 버스 11-2, 부천 버스 83, 부천 버스 88, 부천 버스 700, 시흥 버스 530, 안산 버스 301, 안산 버스 320, 서울 버스 160, 서울 버스 360,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600, 서울 버스 662,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713, 서울 버스 6623, 서울 버스 6628, 서울 버스 6654
- 국회의사당 정류장 : 김포 버스 1002
33.2. 별관[편집]
지하철
버스
- KBS별관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261, 서울 버스 262,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505,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33, 서울 버스 5634, 용인 버스 7007-1, 광역급행버스 M7625, 부천 버스 700, 서울 버스 영등포11
- 샛강역.앙카라공원/진주아파트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505,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33, 서울 버스 5634, 서울 버스 영등포10, 고양 버스 108
- 샛강역1번출구.여의도자이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261, 서울 버스 262,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753,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23, 서울 버스 6713, 광역급행버스 M7625, 서울 버스 영등포11
- 샛강역4번출구.여의도자이 정류장 : 서울 버스 162, 서울 버스 163, 서울 버스 361, 서울 버스 461, 서울 버스 503, 서울 버스 753,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18, 서울 버스 5623, 서울 버스 6713, 서울 버스 영등포10
34. 메일 주소[편집]
사원들의 이메일 주소가 비범하다. 박대기(waiting)를 필두로 최선중(best-ing), 신선민(freshmin), 김빛이라(glory), 정새배(newboat), 안양봉(beebee), 이지은(easy), 노태영(lotte0), 김진화(evolution), 이효용(utility), 정해주(seyo)(...) 등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재미있는 이메일 주소를 만든다. 단순히 이름을 따서 ptk(박대기) 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그대로 직역해 주소로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
박대기가 트위터에서 밝힌 바로는 본인들이 직접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이메일 주소가 더 쉽게 각인이 될 것이고, 그러면 제보가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은 것이라고. 개중에는 면접 당시부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온다는 열정적인 지원자들도 있다고 한다.
35. 여담[편집]
-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가맹사이며 2002년부터 이사국 지위를 지녔고, 2011~2018년 및 2021년부터 두 차례 회장사를 맡을 정도로 일본 NHK, 중국 CCTV 등과 더불어 아시아 방송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 간혹 영국의 BBC와 독일의 ARD, ZDF, 도이칠란트 라디오와 프랑스의 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PBS, NPR 등 해외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 역할이나 개념상으로 일본의 NHK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제작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871] 과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NHK의 방송 포맷을 많이 벤치마킹하기도 했고, 현재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이처럼 일본 NHK와 닮은 방송성격 때문에 아직도 기성세대에서는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확한 법인격적 성질은 국영이 아닌 영조물법인체로서의 공사(공기업)이다.[872] 예산과 인사문제는 KBS이사회에서 심의, 의결하며, 결산에 있어서만 방통위 제출 후 감사원 검토 및 국회 의결 절차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KBS이사 임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할 뿐, 민주화 이전처럼 재정과 인사에서 통제를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공공기관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만 전시방송 및 재난방송을 주관하는 방송사인 점, 대북방송을 송출한다는 점 등은 과거 내무부 산하 국영방송 시절의 흔적이고, 여전히 정부와 밀접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다. 케이블의 지상파 관련 논쟁에서 KBS 1TV가 EBS와 더불어 지상파 채널 중 의무재송신 대상 채널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도 이의 흔적 중 하나이다.
- KBS를 공영방송이 아닌 '국영방송'으로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KBS측에서는 자사를 국영방송으로 칭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국영방송으로 정권에 종속되었던 과거[873] 편성 및 보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방송 언론인들이 헌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 시기에 받았던 정권의 억압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시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장전영 대변인이 KBS보고 "국영방송이 어쩌구" 했다가 소송맞고 사과한 후에 취하한 적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정부 관계자 등 높으신 분들이 방송국을 방문해서 국영방송이라 했다가 갑분싸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874] KBS에서 떨어져나온 EBS 역시 공영방송으로, '국영방송'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니까 주의. MBC는 KBS나 EBS처럼 칼같이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KBS를 깔 때 일부러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반감층도 있다.
- 공식적으로 규정된 업무는 아니지만 난시청과 공시청, 공시청 장비에 관한 업무도 본다. 케이블방송이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공시청 장비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을 복구하는 일이 많다. 이따금씩 광고도 하고. KBS 수신기술서비스[875]
- KBS의 일베 관련 논란으로는 개그콘서트의 부엉이 코너 관련 논란이나[876] 렛잇비 베충이 사건[877] , 일베 기자 채용 사건이 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일베 합성 로고를 노출시킨 적이 있었다.
- 2015년 4월 1일 네이버 실검에 'KBS 일베 기자'가 올라왔는데,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 일베저장소 활동 의혹을 받는 KBS 수습기자가 31일 정식 기자로 임용됐다는 내용의 진짜 기사다. 링크(네이버뉴스) 링크(소방방재신문) 이 경우 사규에 어긋나지 않고 외부 법률자문에도 문의결과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일단 해당 수습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일반직 4직급)으로 파견발령되었으며, 이 부서는 취재·제작 업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6년 3월에는 보도국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보기 2018년 2월에 춘천으로 발령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사보기 당연히 춘천지역 기자들은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