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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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靑瓦臺 | Cheong Wa 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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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능
대통령 집무실[대통령실]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
국가안보실[대통령실]
대통령경호처[대통령실]
대통령 관저[1]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연혁
1948년 8월 15일 ,(경무대),
1961년 1월 1일 ,(청와대),
1991년 9월 4일 ,(신축 본관 완공),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기능 해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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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상징
4. 권역
4.1. 본관
4.1.1. 대통령 집무실
4.2. 영빈관
4.3. 관저
4.4. 수궁(守宮)터 (구 본관 터)
4.5. 상춘재
4.6. 녹지원
4.7. 여민관
4.7.1.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
4.8. 춘추관
4.9. 서별관
4.10. 시화문
4.11. 연풍문
4.12. 청와대 사랑채
4.13. 칠궁
5. 관람
5.1. 전면 개방 전
5.2. 전면 개방 이후
6. 개명·개축·이전
6.1. 청와대 건물과 입지의 문제점
6.2. 청와대 조직의 문제점
6.3. 대통령 집무실 이전 시도
6.5.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후
6.5.1. 조선총독부 관저 모형 복원 추진 논란
6.5.2. 청와대 화보 촬영 논란
7. 대중교통
7.1. 버스
7.2. 철도
8. 여담
8.1. 식단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청와대 전망.jpg}}}
청와대 본관

청와대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되었던 시설이며, 영빈관 등은 여전히 실무에 활용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세종로)에 위치한다. 광복 이래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집무실과 퇴근 후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가진 대통령궁(大統領宮)이자, 나아가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 및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구 대통령부(大統領府)를 의미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부터는 청와대 영빈관 같은 부분적 실용적 시설만 회의, 포럼 등 일부 실무와 행사용 목적으로 적극 사용하고, 그 외 대부분 시설은 국민에게 전면 개방하여 집무실 기능은 하고 있지 않다. 개방 후 청와대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와대관리활용추진단이 운영한다.[2]

이에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을 줄여서 청와대, 청(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3] 집무실이 이전된 이후에는 청와대라는 표현을 쓸 수 없고 용산 청사의 특별한 이름이 없어 이러한 고유명사보다는 기능적 명칭인 대통령실(大統領室)이 사용되고 있다.[4]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구 조선총독 관저를 이양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로, 조선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2공화국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고 해당 형태로 제5공화국을 지나 민주화를 통해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수립된 제6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노태우 정부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 말기에 민족의 자존을 높인다는 이유로 한옥 양식의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청와대에 근무하는 인원들은 국가원수를 보좌하고 명을 받아 행정부의 장관과 차관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하고 행정부로 돌아오는 경우에는 청와대 근무자, 정치인들과 친분이 형성되고 능력이 있으니까 청와대로 파견 간다는 인식도 있어서 청와대 파견 근무 자체가 경력이 되어 복귀 후 행정부 내에서 입지가 강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권부(權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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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 청와대 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경복궁 북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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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구 본관
해방이 되면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 총독 관저를 재활용하여 미군정 치하에서 미군정 사령관인 미합중국 육군 중장 존 하지 장군의 관저로 쓰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하지 장군이 물러나며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관저를 주면서 그렇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게 되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과거 경복궁 북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게 되었다.[5] 이곳에 입주한 첫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망치를 들고 가 모든 일본산 전구와 가로등을 깨버리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6]

서울특별시가 2차례 함락당한 6.25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임시 관저를 두었는데, 이 건물은 경상남도지사 관사를 거쳐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이 되었다.[7] 그리고 환도 이후 경무대가 다시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식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던 김영상[8]이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불려가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고, 김영상은 '화령대'와 '청와대'의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의미를 딴 '청와대'를 선택하였다.


대통령경호처 청와대 역사
대통령경호처 유튜브에서 청와대에 윤보선 전 대통령이 쓴 '청와대' 바위 각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라는 명칭을 황와대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색보다는 황색이 대통령에 걸맞는 의미의 색이라며[9] 논란이 일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름을 또 바꿀 수는 없다."며 기존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청와대를 'Blue Hous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영부인 육영수가 불쾌감을 표하여 청와대를 한국어의 발음대로, 'Chong Wa Dae'로 표기하게 했다고 한다.[10] 그러나 지금까지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은 Blue House, 약칭 BH로 부른다. 대통령의 지시를 'BH의 하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에는 협소하고 노후화되어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승만이나 윤보선은 청와대 건물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취임한 박정희는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증축하였다. 당시 청와대 1층은 집무 공간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서재 등이 있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건물이 노후화되고, 협소하여 외국 정상 방문 시 수행원이 머물 공간조차 없어서 청와대를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정희는 재건축 건의는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 시절에 청와대 구 본관을 다시 리모델링하였다.

이후 노태우 시절이 되어서야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4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사는 당시 이명박이 대표이사로 있던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많이 참고했고, 정주영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외국 유명 호텔들과도 비교해가며 직접 문고리 모양까지 고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11]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15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12]라고 쓰인 표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3년 2월 25일에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로 그 해 10월 구 본관이 전부 철거되었다. 현재는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북악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능선을 끊기 위해 해당 건물이 지어졌다는 풍수적 해석에 따라, 벽돌과 기와는 기존 능선의 복원에 사용하고 가구와 집기는 보존하는 한편, 샹들리에와 승강기는 대통령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분해 후 재사용을 전제로 경매에 내놨다. 당시 KBS 보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통같이 막힌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PC통신 하이텔에 '청와대 큰마당'[13]을 개설했고, 1995년에는 CI를 도입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집무실 및 비서실을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전날인 2022년 5월 9일 청와대에서 떠났다. 2022년 5월 10일 0시를 기해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 기능이 해제되었으며 당일부터 대통령실에 집무실 기능을,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에 관저 기능을 넘겨주고 개방되었다. 청와대는 미술관이자 역대 대통령들의 청와대 거주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 같은 건물이 되었다.


3. 상징[편집]


청와대 로고 변천사
파일:청와대 로고(1995-2005).svg
파일:청와대 로고(2005-2008).svg
파일:청와대 로고(2008-2013).svg
파일:청와대 로고.svg
1995 - 2005
2005 - 2008
2008 - 2013
2013 - 2022
이명박 정부 시절, 기존 로고의 낡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 다양한 사용 환경에 맞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디자인을 개선한 새 청와대 로고가 확정되었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청와대 본관 건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순화, 상징화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와 색상을 개선하여 균형 잡힌 유연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는 국민을 섬기는 청와대, 국민과 가까운 청와대를 시각화한 것이다. 기존 로고보다 밝고 투명한 청색 컬러를 활용하여 '투명한 청와대'와 '진취적이고 젊은 청와대'의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로고 타입도 보다 현대적인 서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획의 강약을 조정하여 이미지를 세련되게 현대화했다.'는 것이 작업 취지다.


4. 권역[편집]



파일:external/ph.sisain.co.kr/27695_54017_0244.jpg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기 전까지 청와대는 당연히 국방부 국가중요시설 및 방호 훈령에 따른 "가"급 국가중요시설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맨 첫 번째에 올라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2022년 5월 9일까지는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가능한 언론에 보도된 정도로만 서술할 수 있었으므로, 포털 사이트의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14][15]

물론 경복궁 바로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기도 했고, 구글 어스 등 해외 지도[16]에서는 선명하게 잘 나와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의 다 공개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7시간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청와대의 구조가 많이 공개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전면 개방됨에 따라 국토지리정보원·네이버 지도·카카오맵에서 청와대의 위치와 위성 지도를 공개했고, 로드뷰·거리뷰의 블러 처리도 해제했다.


4.1. 본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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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president.go.kr/b25b4159f6edd2686fc938db5fe3418d.jpg}}}
1991년 9월 4일에 완공된 청와대 본관
1층에는 무궁화실[17], 인왕실[18]이 있고, 1층 별채에는 충무실[19], 세종실[20]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백악실, 집현실[21]이 있다. 본관 앞에는 엄청나게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데, 대통령이 참석하는 야외 행사에 주로 사용된다. 국빈 환영식이 대부분 여기서 진행된다.

본관이 완공된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본관과 비서실이 위치한 여민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대통령과 비서관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청와대 본관을 리모델링해서 대통령 비서관들을 입주시키거나 본관 옆에 비서동을 새로 만들자는 안이 제출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22]

전직 대통령 비서관들의 말에 따르면 여민관에서 본관으로 가는데 차로 5분, 걸어서 최소 10분이 걸린다고 하며, 같은 청와대 경내임에도 불구하고 검색대를 따로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건물 안에서 대통령 비서관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백악관과는 천양지차.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여민관 문단 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여민관 간이 집무실이 주 집무실이 되면서 결국 본관 집무실은 국무회의 및 귀빈 방문 시에만 사용하는 보조 집무실이 되고 말았다.

옛 궁궐 양식에 대입해 보면, 전면 9칸에 지붕 처마 끝에는 잡상이 11개가 올려져 있어[23] 황제의 격에 맞는 건축이다.[24] 조선의 법궁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은 전면 5칸에 처마에는 잡상 9개를 올렸다.[25]


4.1.1. 대통령 집무실[편집]



파일:external/img.hani.co.kr/144817466412_20151122.jpg


참모들과 대화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독서를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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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전화 통화를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파일:external/jmagazine.joins.com/3696639864_tYL9vD30_1.jpg


업무를 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G20 특별화상정상회의
문재인 전 대통령

출입구부터 의자까지 15m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넓은데, 넓이가 약 100㎡가 넘는다. 백악관의 경우 그 거리가 8~10m 정도에 불과하며 천장 높이도 3m나 된다.

너무 넓어서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으로 나오다 뒤로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전임 대통령들도 대부분 문제 인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처음 집무실을 둘러본 뒤에 운동을 해도 되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김영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예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싶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서관들과 소통하기 위해 비서동에 집무실을 설치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가끔 여민관(위민관) 집무실을 사용하였다고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무실과 관저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귀빈 방문 시에만 본관에서 업무를 보고 그 외의 평시에는 여민관에서 근무를 했다. 사실상 본관 집무실은 행사용으로만 쓰게 된 것이다. 상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집무실 사진이 집무 중 사진이 아닌 화상회의 사진인 이유도 그러한 이유이다. 해당 사진은 2020년 3월 26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펜데믹 수준의 대유행에 따라 G20 국가들이 긴급하게 화상회의를 가졌던 사진으로서 대한민국 측이 선택한 장소가 본관 집무실이었다. 본 회의는 윤석열 정부가 용산 대통령실로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청와대 집무실의 화상 회의가 되었다.


4.2. 영빈관[편집]



파일:external/www1.president.go.kr/landscape02.jpg

1978년 12월 준공된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건물로, 대규모 회의와 외국의 국빈들을 맞이하는 장소다. 민속 공연이나 만찬, 연회, 회의 등을 하는 곳. 석조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청와대 개방 이후에도 대통령실에서 사용 중인 건물이다.[26]

사진으로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볼 경우 굉장히 거대하다. 영빈관이 준공되기 이전까지 소규모 국빈 접객은 청와대 본관에서 이루어졌으며, 대규모 접객은 서울신라호텔의 영빈관[27]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 이후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은 증가하였지만 청와대 내에 만찬이나 연회 등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땅치 않아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또 국가 위상과도 걸맞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도 자주 열리게 되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청와대 내에 대규모 행사장을 갖춘 지금의 영빈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영빈관에 국빈이 묵을 숙소가 없어 국빈은 환영 행사 후 시내 호텔로 이동한다.

겉모습은 경복궁 경회루를 닮았다.

정작 내부는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건축 양식을 따라 부조화라는 지적이 존재한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직 퇴임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국빈행사장과 의전 행사장소를 둘러봤지만, 고백하건대 우리나라의 청와대 영빈관이 최악이다", "구민회관보다 못한 시설", "어떤 상징도 역사도 스토리텔링도 없다" 고 혹평했다. 이에 실내를 설계한 유희준 한양대 교수는 "탁 전 행정관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영빈관을 재설계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이 있고, 다시 봐도 스스로 감탄했다’고 말했다.

1층은 대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 행사를 치르는 곳이다. 만찬 행사시에는 음악과 무용 공연이 행해지기도 하며, 국빈 행사 외에 대규모 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부 정면 벽 중앙의 원형 속에 새겨져 있는 봉황 문양은 태평성대와 대통령을 상징하고, 천장의 원형은 대화합을 상징한다.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로서, 내부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월계수 등으로 장식하였다.


4.3. 관저[편집]


1990년 10월 25일 완공된 전통 한옥 양식의 건물.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생활 공간인 본채(내실), 접견 공간인 별채(외실),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완공되기 전에는 구 본관 2층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내실은 침실[28], 서재, 피트니스 룸[29], 소식당[30], 한실[31], 파우더 룸[32]으로 구성되었으며 박근혜와 윤전추[33], 김막업[34]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외실에는 경호실,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35]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관저 뒤편 산책로에는 통일신라 불상이 있는데, 흔히 '청와대 불상', '미남 불상', '미남 석불' 등의 별칭으로 불린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4월 20일에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란 정식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1977호에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던 불상이 청와대에 있는 이유는 일제가 약탈해서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에 둔 것을 광복 이후 그대로 있었던 것이고, 경주로 돌려줘야 한다는 운동이 꾸준히 있다. 원래 위치는 경주 이거사라는 절이라고 한다.

대통령경호처 유튜브에서 대통령 관저에 있던 한옥 '침류각'이 효명세자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4.4. 수궁(守宮)터 (구 본관 터)[편집]



파일:external/www1.president.go.kr/landscape04.jpg

경복궁 신무문을 지키기 위해 있던 수문사(守門舍) 터로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여기를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지었다. 나중에 이 총독 관사를 그대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한 것이 청와대의 시작이다. 새 본관과 관저가 완공된 뒤, 구 본관은 1993년 철거되었고 그 터를 옛 지형대로 복원하여 수궁터로 부르고 있다.


4.5. 상춘재[편집]



파일:external/www1.president.go.kr/landscape05.jpg

파일:상춘재내부.png
일제강점기 때는 이곳에 20여 평 규모의 "매화실"이라는 이름의 조선총독부 별관 건물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상춘실"로 이름만 바꿔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에 철거되었다. 1978년 3월 양식 목조 건물이 들어섰으나 다시 철거되고, 규모를 크게 키워 1983년 4월 5일 전통 한옥 양식으로 다시 지어 청와대 최초의 전통 한옥이 되었다.

당초 니스칠이 되어있었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니스칠을 벗겨내고 들기름으로 다시 바르는 등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여야 당대표를 초대하거나 기업인을 불러 호프 미팅을 하기도 했다.

내부 모습

대통령경호처 유튜브에 따르면 녹지원에서 상춘재로 올라가는 계단에 천록이 있다고 한다. 이 천록은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천록과 재질이 같다고 한다.


4.6. 녹지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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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특별한 날(특히 어린이날)이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녹지 공간. 큰 소나무가 있는 잔디를 깐 야외 행사장이다. 본관 앞 대정원이 국가적인 귀빈을 맞는 행사 등에 쓰인다면 이 녹지원은 좀 더 대중적인 행사에 주로 쓰인다. 어린이나 어르신, 장애인 초청 행사 등 국민을 초청하는 행사는 대부분 여기서 치러진다. 1995년에는 이곳에서 열린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본인이 국회의원 시절 만들었던 전산시스템인 노하우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청와대 사상 최초로 도입된 전산 시스템인 e지원은 녹지원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부는 텃밭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재배된 보리, 밀과 메밀로 만든 차를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전국 119 상황실에 선물했다.

녹지원 건너편에 위치한 한옥 건물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상춘재이다.


4.7. 여민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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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1관
與民館

국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곳

대통령비서실이 자리하던 건물로, 대통령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이 건물은 볼 거리가 별로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대통령비서실 행정을 위한 건물로 3개 동이 있다. 1관은 2004년, 2관은 1969년, 3관은 1972년에 지었다.

노무현 정부때 1관을 신축하면서 비서관과의 소통을 위해 3층에 본관집무실의 절반규모인 간이집무실을 설치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이 민정수석 시절 쓰던 10인용 원형탁자를 찾아내 배치하고 본집무실로 사용했다.

2008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철학을 담아 국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위민관(爲民館)'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여민관(與民館)'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바꾼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은 "구체적으로 대통령께 말씀을 듣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

2관과 3관은 너무 오래 돼서 안전 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시설 유지 보수 담당자는 재건축 심의에 적용되는 내진 설계 기준이 강화돼서 그런 것이라며, 2008년에는 2관이 C등급, 3관이 B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2관에 위치한 경제수석실 천장이 내려앉아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도 발생할 정도니 말 다 했다. 관련 기사

2015년, 재건축 및 재배치를 위한 예산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예산을 거절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가뜩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예산을 덜컥 받아버리면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될까 걱정됐던 모양. 관련 기사

여러 언론에서 실무진과 대통령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비서실 재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비서동에서 본관까지 가는데 2개의 관문과 경비초소를 지나야 하고 검색대까지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국회는 예산을 받으라고 재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긴급 상황 때 벙커에 모이려면 20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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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백악관의 건물 배치구도 비교
JTBC 팩트체크에서는 물리적 거리와 소통의 상관 관계에 관한 경영학 이론에, 다른 나라 행정부 수반의 집무실과 실무진 사무실 사이의 거리와 구조까지 비교하며 재배치의 필요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 #2


4.7.1.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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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기
이명박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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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과 참모진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오수 전 검찰총장과의 면담 (2022년)
노무현 전 대통령2004년 비서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당시 '여민1관' 3층에 설치한 간이 집무실이다. 본관 집무실의 절반 정도 크기인 87㎡이다.

처음 노무현 정부 때는 어두운 고동색으로 내장을 꾸몄고 창문을 가릴 수 있는 발을 설치했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본관 집무실과 비슷한 밝은 인테리어로 변경되었으나, 책상과 소파는 모두 그대로 사용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조찬을 겸한 수석비서관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 민정수석 시절 쓰던 10인용 원형 탁자를 찾아내 배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설치했다. 이후 책상의 위치가 측면으로 변경되었고, 의자가 크고 푹신한 중역용 의자로 교체되었다. 또 기존 알루미늄 창틀이었던 창문이 교체되었고, 일부 벽면 마감이 변경되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여민관 집무실에 있던 태극기는 없어졌다. 화분이 들어왔고, 책상 위 모니터가 증가했다. 2021년 9월 1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광주형 일자리 캐스퍼 예약 사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앉아 있을 때와 문재인 전 대통령 없이 집무실 책상의 컴퓨터가 촬영되었을 때 책상의 위치가 다르다. 창문 밖 배경을 위해 집무실 책상 위치를 옮겨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서관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주 집무실로 다시 쓴다고 밝히고 있다.


4.8. 춘추관[편집]


청와대 프레스센터로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곳에 출입하였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기자회견장도 여기에 있다.

비공식적인 쓰임새가 또 있는데, 바로 극장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대통령이 일반 극장에 방문한다는 인식은 생소해서 쉽게 방문하기 어려웠다. 한 번 극장에 갈 때마다 경호원들이 따라붙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경호 문제로 신경 써야할 게 많아지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컸다. 그래서 대통령과 그의 가족, 그리고 청와대 상주 직원들이 영화를 보려할 때 이 춘추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한다. 한 예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대흥행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춘추관에서 직원들과 함께 서편제를 감상했다. 물론 영화 상영을 위한 준비 또한 상당히 번거로운 관계로 춘추관에서의 영화 상영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대통령의 일반 극장 방문도 이루어지는 편이다. 한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반 영화관에서 넛잡: 땅콩 도둑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을 관람한 적이 있다. 또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일반 영화관에서 택시운전사1987을 관람하였다.

개방 이전에는 흑임자, 일명 임자라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춘추관 입구에 앉아있는 것을 직원들이 발견해 기르기 시작했다고 하며, 당시 출입 기자들과 직원들이 임자를 관리하기 위한 단톡방까지 만들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는 개냥이였다고 한다. 청와대 완전 개방 하루 전 출입 기자의 지인에게 입양되었다.


4.9. 서별관[편집]


본관 서쪽[36]에 위치한 건물[37]로, 1997년 거시정책 협의회가 이곳에서 열리며 알려졌다. 청와대에서도 중요한 비공개 회의를 자주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서별관 회의는 김영삼 정부 이후 20여 년간 각종 경제 정책의 지휘부 역할을 했던 비공개 회의로 경제부총리 겸 재무장관, 경제수석비서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한다. 비공식 회의이기 때문에 어떠한 회의록이나 기록물이 남지 않아 밀실 회의라는 비판이 있다. 2016년 6월 이래로 잘 열리지 않다가 2018년 12월에 한 번 열렸던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열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4.10. 시화문[편집]


시화문(時和門)은 경호처 업무를 수행하던 건물이다.


4.11. 연풍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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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문(年豊門)은 외부인이 공무 수행을 위해 출입 절차를 밟는 건물이다.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 시설이 있으며, 각종 국정 홍보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2009년 2월, 기존에 있던 북악안내실을 헐고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준공되었다. 옆에 있는 시화문과 짝을 이루어 "시화연풍"(時和年豊ㆍ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따른 지열 냉난방 시스템 및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독도 수호를 상징한 독도 CCTV 영상을 중계하는 시설 등이 설치되었다. 공무상 방문한 민원인에게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대외적 공간이었다. 몇몇 드라마나 동화에서 어린이들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려다 경찰관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 표현되는데, 연풍문에 있는 민원실로 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은행업계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NH농협은행 청와대지점도 이 건물에 있다. 지점코드는 1000.[38] 금융공동망 상의 지점 번호는 뭔가 위엄있어 보이는 숫자 0100007이다. 과거 농협은행 청와대 지점을 포함한 연풍문 건물 내부에 일반 시민이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사전에 명확하게 공무 약속이 잡혀야 했다. 2022년 5월 10일 전면 개방 이후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하였다.

2009년, 2012년, 2016년엔 이곳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4.12. 청와대 사랑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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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 있던 자리로, 1996년 2월 청와대 앞길 개방과 함께 대통령이 해외에서 받은 각종 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으로 개장하였다. 대통령이 해외, 그리고 외교 사절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은 국민을 대신해서 받은 것으로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며 외국 정상이나 외국인·외국단체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시가로 10만 원(미화 100달러) 이상이면 즉시 신고하고 국고에 귀속되도록 되어있으며, 대통령의 경우에는 더 엄격해서 받은 선물의 가치에 상관없이 신고 후 국고로 귀속되도록 되어있다. 대통령의 경우 국가와 국민을 대신해 선물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선물 자체가 정상회담의 중요한 사료가 되기 때문인 데다 선물 자체가 중요한 외교 수단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취식하는 음식물 등을 제외한 모든 선물은 국고에 귀속된 후에 바로 청와대 사랑채에 전시되는 것이다.[39][40]

원래 "효자동 사랑방"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전시관이었으나, 건물이 너무 작고 노후화되어 일단 허물고 새 건물을 지어 2010년 1월에 재개장하였다. 현재 청와대 사랑채 신축 건물이 들어선 부지는 서울시 시유지[41]였으며, 이름도 "청와대사랑채"로 바꿨다. 새 건물은 기존 전시관에 있던 전시물과 함께 국정홍보관 역할도 하고 있다.

늘 개방되어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구경이 가능하다.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던 때에도 인터넷 지도에 나오던 건물이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마지막 입장은 오후 5시 30분까지다. 입장료는 무료. 하루에 4회 전시 해설을 해준다. 자세한 것은 공식 홈페이지 참고.


4.13. 칠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칠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담 하나를 두고 영빈관과 붙어 있으며 청와대 권역에 포함되지만 청와대와 별도로 관람할 수도 있다.


5. 관람[편집]



5.1. 전면 개방 전[편집]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청와대 전면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신청을 통해 관람이 가능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화요일~금요일과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 무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개인 관람(10명 이하)과 단체 관람(11명 이상~200명 이하)이 가능하며, 토요일은 10인 이하의 개인 관람만 받았다. 관람은 1일 4회로 오전 10시, 11시와 오후 2시, 3시이다. 매년 7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는 오후 시간대가 1시간씩 늦춰져서 3시와 4시에 관람이 가능하다. 1회 350~450명(한국인 기준)까지 신청이 가능했다.

관람 희망일 6개월 전부터 최소 20일 전까지 신청이 가능했으며, 신청 정보가 변동되었을 시 내국인의 경우 관람일 전주 화요일, 외국인을 동반할 경우 관람일 기준, 2주 전 일요일까지 수정이 가능했다. 관람 당일 인원 추가 및 교체는 불가능했다.

인기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봄이나 가을 같은 시즌에는 1~2달 전에 신청해야 할 정도이며 관람 시간은 90분 정도다. 경복궁 바로 위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왕 경복궁에 가는 김에 같이 청와대에 들렀다 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 편이었다. 홍보관(춘추관 옆)과 녹지원, 수궁터(구 본관 터), 본관, 영빈관, 칠궁 순으로 둘러보는 코스다. 홍보관 외에는 건물 외부만 둘러보는 코스이며 간단한 기념품도 제공되었다. 그리고, 관람한다고 해서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을 확률은 매우 적었다.[42] 그러므로 청와대의 외관만 살짝 둘러본다는 마음으로 가야 했다.

아무래도 국가 중요 시설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이 엄격했던 편.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이 가능했고, 동영상 촬영은 아예 불가능했다. 을 제외한 음식물의 반입도 금지됐었다. 또한 망원렌즈, 대형가방(여행용 가방 및 캐리어 등), 애완동물, 담배나 라이터, 주류, 악기, 정치적 표현물(플래카드 포함), 무전기, 기타 위험물 등도 반입이 금지됐었다.

과거에는 공개가 이루어진 시절도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인 1954년부터 봄철에 2~3일씩 일반에게 경무대 공원을 공개했고 수천 명씩 관람을 오곤 했다. 윤보선, 박정희 시절에도 이 전통은 이어져서, 1주일의 봄철 청와대 개방 기간 동안 청와대를 구경하러 온 국민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던 박정희와 마주쳐 "대통령이다!" 하고 법석을 떨자 "공부 열심히 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고, 즉석에서 수학 문제를 내어 답을 맞힌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43] 하지만 1.21 사태 이후 경호가 강화되면서 청와대와 그 주변 지역은 수십 년간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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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예약, 행사 등으로 청와대에 방문하면 기념품을 준다. 위의 사진은 이명박 정부 때의 기념품이다. 성인에게는 볼펜, 미성년자에게는 수첩을 주었다. 보면 매우 고급스럽다. 위의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형태의 볼펜은 정부 관련 시설 기념품의 필수 품목인 것처럼 똑같이 생긴 것만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성인에게는 지갑, 미성년자에겐 '대한민국 청와대'라고 적힌 지구본을 주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성인에게는 사람이 먼저다가 쓰여있는 머그잔, 어린이는 어린이용 버스카드 지갑을 준다.

관람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는 경우 일반인은 청와대로까지만 진입할 수 있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때에 청와대 앞길, 효자동, 궁정동 등 근처 도보 허용, 경내 단체 관람 허용 등을 일부 시행하긴 했지만, 이후 경비는 더 강화됐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에는 청와대 앞길 및 인왕산 등산로의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궁정동 안가를 철거해 '무궁화동산'으로 조성하는가 하면,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에는 개인 및 외국인 경내 관람을 허용시켰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부터 경내 관람객을 위해 의장대 시범 등 볼 거리를 제공하고 2007년에 북악산 성곽로까지 개방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 경비가 더 강화됐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7년 6월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5.2. 전면 개방 이후[편집]


윤석열 정부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라 2022년 5월 10일부터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예방 및 개방 초기 방문객 몰림 현상을 막기 위해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 당첨되면 해당일에 입장하는 방식이다. 본격 개방하는 5월 10일부터 5월 22일까지는 개방을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청와대 내에서 이루어졌다.

개방 첫 날인 5월 10일부터 대규모의 관람객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어두운 면도 있었는데, 개방 둘째 날인 5월 11일에 청와대 경내의 문화유산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개신교 신자에 의한 테러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

대통령실 측에서는 장기적으로 경복궁처럼 누구나 청와대를 관람할 수 있도록 상시 개방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용산 청사 이전의 문제를 떠나 청와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산책할 만한 곳이 늘었다, 가볼 수 없던 곳을 갈 수 있게 되었다면서 대부분 만족스러웠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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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분별하게 통제도 없이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취식, 훼손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처음 청와대 개방 시 경제 효과가 연 2천억 원이 될 거라고 예측했으나, 개방 1년도 안 되어서 한산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 다만 주말에 날씨 좋은 날은 단체관람 또는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온 관광객들로 여전히 인산인해이다. 예약한 시간보다 늦게 들어가면 본관 관람을 위해 청와대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야할 수도 있으니 유의할 것.

개방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당일에 예약을 해도 여유롭게 예약이 가능하고 아예 예약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예약을 해서 들어가도 굉장히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줄을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정도로 굉장히 한산해진 상태이다.


6. 개명·개축·이전[편집]



6.1. 청와대 건물과 입지의 문제점[편집]


청와대 본관은 1991년 9월 4일 완공 이래 수십 년간 이따금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주로 내부 소통이 어려운 구조라서 리모델링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나온다. 논란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건물의 이름, 배치, 구조 및 형태, 자리 잡은 터 문제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보안상의 어려움이 있다.

  • 한국은 전통적으로 각종 건축물을 세울 때 그냥 기능과 편의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나 철학(哲學)을 담고자 건물의 배치나 각종 상징이나 명칭 등에 그러한 뜻을 관철시켜 놓았다. 예를 들자면,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의 경우 임금의 공적인 근무처이니만큼 “부지런한 가운데 맑은 정치를 하라”는 뜻을 그 명칭에 부여한 것이고, 편전인 사정전(思政殿)도 “임금이 깊게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백성을 굽어 살필 수 있도록 취해야 할 마음가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44] 그런데 청와대는 단순히 푸른 기와가 얹혀진 집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그래서 건축물의 소재를 작명에 썼으니 당연히 국가 기관의 이름을 정하는 데 고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청와대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본관 건물은 전통 목조 건물 구조에 팔작지붕을 올리는 등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커서[45]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지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이라고 평가하는 건축가도 있다. 당시 설계를 맡았던 정림건축의 김정식 대표(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이사장)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청와대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며 “본관을 2층으로 하려니 지붕을 어떤 형태로 하느냐를 놓고 서양식이냐 한국 스타일로 전통적인 양식을 취할 것이냐 하다가 전통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게 전통 한국 건축의 기본인데 청와대 건물은 주변의 지형이나 앞에 있는 경복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 본관 좌우로 배치된 별채의 이름이 실로 엉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나는 세종실이고, 또 하나는 충무실인데, 아무리 대통령 공관일지라도 후손된 도리로서 그들의 이름을 좌청룡 우백호의 건축물에 빗대어 마치 신하를 거느리듯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쪽 별채가 충무실이고, 서쪽 별채가 세종실인데, 본채가 남향할 경우 음양오행 이론상 왼편인 동쪽이 문(文)이고, 오른편인 서쪽이 무(武)다. 그런데 문을 상징하는 세종실을 서쪽에, 무를 상징하는 충무실을 동쪽에 두어 위치를 서로 바꿔 놓았다. 경복궁의 융문루(동쪽·좌측)와 융무루(서쪽·우측) 배치 상태와, 삼문 출입 시 가운데 문을 기준으로 동쪽 문을 문관, 서쪽 문을 무관이 각각 이용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것은 한국 건축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건물 내부의 경우 업무 공간이 지나치게 커서 사람을 압도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만 한 크기에 책상과 회의용 탁자가 집기의 전부다. 구조 자체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고위 관료가 뒷걸음질쳐 나오다 넘어졌다거나 너무 긴장해 뒤로 넘어져 쓰러진 일화가 있을 정도다.

  • 대통령이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지시를 해야할 비서실 직원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근무하는 불통과 비효율 문제도 계속 지적되어 왔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여민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본관의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러 가려면 아직도 두 개의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 청와대 경내에는 대통령이 마음을 가다듬거나 닦을 수 있는 상징물이 없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백악관과 제퍼슨 기념관,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이 각각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런 건축물은 대통령이 수심(修心)하고 자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조선왕조 때에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배치된 동서축의 종묘사직단, 남북축의 북악신사와 목멱신사가 있었다. 종묘는 왕실의 조상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올바른 정치를, 사직단은 토지신에게 풍년을 빌어 백성의 살림살이를 궁핍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애민(愛民)정신을 왕에게 심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현 청와대 경내에는 기껏해야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 식수해 놓은 나무와 푯돌, 그리고 세종실 입구에 걸어 놓은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전부다. 대통령의 수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 청와대가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해 주변 개발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경비를 위한 군부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까지 합하면 엄청난 땅이 사실상 청와대 때문에 묶여있으나, 청와대를 옮기면 그 터와 주변 지역이 강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경복궁의 후원이었다는 역사성을 감안하면 주거용지로의 개발은 불가능할 것이지만,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서울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청와대를 본래대로 경복궁의 후원으로 복원한다면 서울의 4대문 안 전역을 관광 자원화할 수 있다.

  • 청와대가 서울 시내에서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중심인 종로구에 있지만, 바로 뒤로는 북악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으로는 경복궁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서[46] 중심이라면 중심인데 중심이 아닌 느낌. 그래서 서울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구로 청와대 이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특히 용산기지 이전으로 청와대의 용산 이전론이 제시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청와대가 옮겨갈 만큼 넉넉한 부지가 용산 이외에는 없을뿐만 아니라 기존 지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한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용산기지에 자리한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였다.

  •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터가 좋지 않아[47]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대부분 나쁜 것이라며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48] 굳이 풍수지리가 아니더라도 본래 청와대 터가 조선시대 칠궁과 같은 사당이나 호위무사 연습 터로 쓰던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기사. 이와 함께 조선일보는 청와대 터가 문제 없다는 상반된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기사 이후 내부가 공개되면서 터가 문제라기보단 구중궁궐에 필적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곳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그 환경에 적응되어 국민들과 소통이 어려워졌다는 의견이 많다. 사람이 사는 환경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앞 내용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청와대가 너무 크고 넓다는 것에 있는데, 이것 때문에 경호상에도 문제가 있고,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사항들을 보좌진들도 몰랐을 정도로 대통령이 작정하고 숨거나 뭔가를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구중궁궐 같은 공간으로 악용하기 딱 좋은 관저이므로 대통령의 업무에만 쓸 수 있는 적절한 새로운 공간을 대통령 관저로 쓰고 청와대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기되었다.

  • 이것 때문에 대만 총통부처럼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를 분리하는 게 좋다는 말이 많다. 집무실은 용산역 뒤 국제업무지구 또는 미군기지 부지에 새로 짓고 관저는 이촌동이나 외교부장관, 대법원장 관저가 있는 한남동으로 옮기는 안이 제시된 적도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외교부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게 되면서 실현되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보다 부지가 크고 외진 곳에 들어가 있다. 미국 백악관은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작으며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어서 접근성도 매우 뛰어나다. 중국 중난하이는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크지만 그래도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 역시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크지만 역시 지하철역 앞에 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좋다. 독일 총리의 집무실인 연방수상부도 대한민국 청와대 규모의 ¼에 불과하며 독일 국회의사당역 앞에 있다. 일본 수상관저(칸테이)도 국회의사당역 바로 옆에 있으며 청와대 부지의 20% 수준밖에 안 된다. 대만 총통부 관저도 청와대보다 훨씬 작고 샤오난먼역에서 고작 걸어서 6분 거리이며, 베트남 주석궁(Phủ Chủ tịch)도 청와대의 절반 정도 크기에 도심 한가운데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있어 접근하기 매우 편하다. 게다가 영국 총리관저인 다우닝 가 10번지 건물은 3층짜리 단독주택 하나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영국 여왕, 일본 천황과 같은 국가원수로서 역할도 있기 때문에 단독주택에서 살라는 건 무리지만 그래도 위에 말한 백악관, 중남해, 크렘린 등은 모두 시가지 가운데의 평지에 있어서 바로 뒤에 산을 낀 청와대보다 훨씬 개방적인 위치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청와대마냥 크고 외진 곳에 위치한 집무실은 북한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49], 미얀마[50] 정도밖에 없기도 하다. 그마저도 이 둘은 집무실을 옮기면서 비슷하게 된 경우로, 이전에는 도심 한복판 접근하기 쉬운 공간에 집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도 도심 한복판에 대통령부를 둘 뻔한 적이 있는데,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이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며 운현궁을 압류해 대통령부로 사용하려 했으나 운현궁의 주인인 흥선대원군 종손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결국 경무대는 비어있던 옛 조선 총독 관저 자리로 들어왔고 그 부지가 청와대로 이어졌다.

원인이 어찌되었든 청와대의 비효율적일 정도로 넓은 부지와[51] 경복궁 후원이었던 장소에 세워진 특성상 일국의 정치 중심지치고는 너무도 외진 곳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문제로 꼽혔다.


6.2. 청와대 조직의 문제점[편집]


대략 1,0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는다. 그 중 경호처 소속 직원이 절반 조금 넘고 나머지 400여 명의 비서실 소속 직원이 있다. 기타 안보실 관련 직원도 있는데 직제상 인원은 20~30여 명이지만 업무에 따라 정부 각 부처 소속으로 파견나와 있는 직원도 있어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어 경호처 직원이 500명이 넘는 상황인데도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채용되었는지 예산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민이 투표로 직접 선출한 정당성 있는 조직이 아니기에 내부에 문제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다.

청와대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순간 장관들과 차관들을 지휘하는 대한민국 권력의 최상위층이 됨에도 외부의 인사검증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행정부의 장관급과 차관급이 임명되면 국회에 출석하여 국회의원들의 질의와 견제를 받으며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 것에 비해, 청와대에 임명되는 자들은 국회에 출석하지도 않고 인사청문회를 거치지도 않으며, 신분조회도 받지 않는다. 또한 청와대 근무의 임명과 해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아서 기자들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언론들도 지금까지 청와대에 누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슨 일을 하면서 근무하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행정부의 장관과 차관급이 임명되고 해임되는 것은 모두 알 수 있는 정보화 시대임에도 장관들과 차관들을 지휘하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권력자의 신원들은 언론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한 폐해도 있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이 청와대에 수백번 출입하였음에도 청와대 내부의 어떠한 견제도 없었으며, 언론과 기자들도 청와대 출입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최순실은 청와대에 출입하면서 대통령의 명을 빙자하여 청와대 행정관들을 움직여서 행정부의 장관들과 차관들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이 있다.

또한, 청와대에서 나오는 사사로운 이야기들조차 대통령의 의중으로 확대해석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서 상당히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수많은 환관들이 중국의 황제의 명을 빙자하여 권력을 농단하고 매관매직, 양민 수탈, 성범죄 등 수많은 악행들을 저질러왔다. 최고 권력자의 권력을 농단할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 시스템의 큰 문제점이다.


6.3. 대통령 집무실 이전 시도[편집]


  • 참여정부 시절 행정수도 계획에는 종국적으로는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계획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행정수도 반대파가 제기한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52]으로 인해 이전이 불가능한 관계로 세종시에 제2집무실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세종시에는 비록 건물은 지어지지 못했으나 청와대 제2집무실 부지와 국회의사당 분원 부지[53]는 남겨놓은 상태다. 혹시 나중에 개헌해서 서울시에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철거한 뒤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고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세종시에 새로 짓기로 결정할지 모르니까.

  • 2015년 10월 29일 박근혜 정부 당시 열린 국회 운영위 예산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내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건물 재배치 추진 예산을 주겠다" 라는 안이 청와대 예산 신청만 하면 서로 반대만 하던 여야 양측의 이례적인 합의로 통과됐는데, 청와대측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의 답변으로 거부되었다.

  •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도 이구동성으로 당선되면 집무실부터 정부서울청사 등 보다 소통이 원활한 장소로 옮기고, 장기적으로는 대통령 관저 자체를 이전하고 청와대는 박물관 등의 공간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약했다.

  • 2017년 5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공약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 지하 벙커, 영빈관 등은 대통령 시설로 사용하되 본관, 관저, 녹지원 등은 대통령박물관, 시민공원 등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약했다.[54]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투표일 다음날부터 바로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우선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 업무를 보는 비서동인 여민관 집무실에서 일상 업무를 보게 되었다. 여민1관 3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되었다. 참모들과 함께…비서동으로 출근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 시설, 부지, 경호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됨에 따라 임기 말까지 여민1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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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는 이전의 가장 유력한 시설인 정부서울청사는 주위에 고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어 경호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대통령이 집무를 하기 위해서는 각종 시설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며, 경호처가 입주할 공간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백악관은 주변이 보안구역이고 영국의 다우닝 가 10번지는 건물은 허름할지 모르지만 주변은 정부청사 건물로 둘러싼 안전지대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둘러싼 일본의 수상관저는 2000년대 초반 무려 7천억 원을 들여 건축하면서 보안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이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리한 공약으로 인해 대통령 경호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은 편이었다. 이로 인한 문제 때문인지 대통령 공약에 불구하고 보안 시설, 지휘 시설 등을 갖출 때까지는 기존 청와대 집무실을 이용할 예정이다. # 정부서울청사 안에 대통령 집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를 사용하던 행정안전부 등 일부 부처가 추가로 세종시 정부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 2019년 정부세종청사 2청사와 민간 건물 임대로 이전이 완료되었다.

  • 정부서울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시 대통령 관저문제도 불거지는데, 당장은 관저는 그대로 이용하고 집무실만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자는 안과 옮길 거면 다 옮겨야 하기에 국무총리는 세종시에 제2공관이 마련된 관계로 삼청동 공관을 대통령 공관으로 바꾸자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므로 대통령의 거주지인 관저도 함께 이전해야 하는데, 역시 예상대로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했었다. #기사 말미에 언급 이럴 경우, 국무총리공관은 세종시에 제2공관이 이미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세종시로 이사 가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 2019년 1월 4일, 유홍준 전 광화문 대통령 시대 자문위원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시설, 부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통령 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끝난 후에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 # 이후 2022년 11월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던 청와대 이전이 관저가 풍수지리상 너무 안좋았기에 것이 이유였다고 밝혔다. #


6.4.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윤석열 정부 이후 새로 이전한 용산 대통령실
파일:한남동대통령관저.png}}}
윤석열 정부 이후 대통령 관저로 쓰일 외교부장관 공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은 이전 문재인 정부 초의 계획처럼 청와대는 공원, 박물관 등 국민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하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를 개수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로, 삼청동 총리공관이나 한남동 3군참모총장 공관, 정부 소유 안전가옥 등 기타 장소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 # 기존 청와대에 하루도 발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로 대통령실의 이전을 서둘렀다.

그러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는 주변 빌딩들이 많아 보안 문제가 있고[55] 유사시 사용할 지하 벙커가 없다는 점 때문에 2022년 3월 16일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외부와의 차단이 용이하며 지하 벙커가 존재해 유사시 경호 문제가 없기 때문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 이후 중앙일보의 단독 기사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김은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으나 3월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 신청사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1394년 조선의 한양 천도 이후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56] 620여 년간 줄곧 서울 4대문 안에 있던 국가원수의 정식 집무 공간이 처음으로 사대문 밖으로 옮겨지게 된다.[57]


6.5.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후[편집]


2022년 3월 31일 인수위에서 청와대를 K-POP 및 전통음악의 합동 공연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 행사 공간으로 조성, 국민들이 즐겨찾는 산책로가 될 수 있도록 둘레길·경내길 코스 개발, '리얼(Real) 현대사' 체험관 조성, '한글'을 테마로 한 역사 문화 공간을 청와대 안팎에 조성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 #2


6.5.1. 조선총독부 관저 모형 복원 추진 논란[편집]




파일:조선총독부 관저 복원.png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개방된 청와대에 1993년 김영삼 정부역사바로세우기로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조선총독부 관저) 모형 복원 계획을 밝혔다. 정확히는 원본을 축소한 미니어처 모형을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결과적으로는 원본의 ½, ⅓에 해당하는 크기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

야권인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를 졸속 개방해 쓰레기장으로 만든 것도 부족해서 활용 방안마저 문화, 예술, 자연, 역사라는 말로 현혹시키며 역사성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우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강력 반발하였다. #

문체부는 건물 복원이 아니라 미니어처 제작을 검토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 김영삼의 차남이자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던 김현철은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해체된 총독부 관저를 모형으로 만든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오늘 문체부장관과 통화해 ‘절대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며 문체부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음을 확인했다. #

홍익표 전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미니어처 복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며 "문체부가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처음부터 모형 제작이라고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복원이라고 해서 과거 총독부를 다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그러나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의 주장처럼 치욕스러운 일제 야욕의 복원이 아니라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냐”며 조선총독 관저 복원 계획을 옹호했다. #

이 과정에서 계속 해명이 바뀌어 논란이 되었다. 이미 사진 있는데 또? 갈수록 황당해지는 문체부의 ‘청와대 구 본관 복원’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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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청와대 화보 촬영 논란[편집]


패션 잡지인 보그에서 8월 22일에 30여 장이 공개되었다.[58] 문화재청이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하나로, 문화유산인 한복과 청와대 개방을 홍보하기 위해 보그 코리아와 협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를 적절하게 활용했는지, 촬영된 옷이 과연 한복이 맞는지, 왜 청와대에서 일본인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었는지, 청와대를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되는지 등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2022년 8월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화재청장에게 질타가 쏟아졌다. #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거주하며 업무를 수행하던 공적인 공간을 민간기업에게 대여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며, 일제강점기 시절 창경원이 연상된다고 지적하였다. #, #


7. 대중교통[편집]



7.1. 버스[편집]


  • 서울 버스 01[59]


7.2. 철도[편집]




8. 여담[편집]


  • 공식 명칭은 Cheong Wa Dae이나, 외국에서는 보통 Blue House로 많이 알려져 있다. 관가(官街)에서는 "BH"라는 약자를 종종 사용한다. 정부의 보고서에 BH라는 약자가 사용되었다면 100% 청와대 혹은 대통령을 지칭한다.

  • 청와대 밖 가로수나 가로등, 배관, 지중선, 청와대 내 쓰레기 운반 처리는 종로구에서 도맡아서 하고 있다. 연 수십억 원에 달하는 큰 비용이고 이걸 종로구민들의 세금으로 쏟아붓고 있는 셈이라 종로구청에서는 청와대와 서울시에 돈을 좀 보태라고 수차례 요구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진 적은 없다. # 특히 종로구정부서울청사 등 주요 행정기관이 몰려있기에 다른 기초자치단체보다 이 문제에 민감하다.

  • 청와대 근처에서의 시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60]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청와대는 1㎞ 이내에서도 시위를 하지 않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퇴진 요구 시위가 2016년 11월 27일 기준 청와대 앞 200m까지 허가를 받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12월 3일 집회 때는 청와대 앞 100m까지 허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기존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집무실, 삼청동 또는 한남동 관저 체제로 변경될 경우에는 모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고 집회권 보장 필요성 때문에 법률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본관 정원 쪽에는 사슴 일가족이 살고 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정말 운 좋을 때 한 번씩 볼 수 있다고 하나, 가끔 정원에서 튀어나오면 앞쪽 도로가 차단되고 사슴을 다시 정원으로 돌려보낸다. 그 외에도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와서 한가롭게 떠다닐 때도 있다.

  •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부대에서 복무 중 자신이 연대장/주임원사/대대장/중대장/행정보급관/소대장/분대장 등 지휘관이 된다면 연대장/대대장/중대장/소대장/분대장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이곳을 견학한다. 참고로 부연대장/부대대장/부중대장/부소대장/부분대장은 견학 기회가 없다. 사실 수방사가 청와대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는 이유는 수방사가 대통령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청와대 정문의 석등이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양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확산되었다. #

  • 국가 지도자의 관저를 '궁(宮)'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영문식 행정 용어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의 번역어로, 프랑스의 경우에는 엘리제 궁이다.[61] 또, 나라에 따라서는 아예 대통령 관저 공식 명칭이 그냥 대통령궁인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기관명으로서 '대통령부(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입법부(府), 행정부 등의 예에서 유래한 용법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언론에서 '대통령부', '대통령궁' 등의 용어도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청와대라는 명칭을 두고 따로 '한국 대통령궁' 또는 '한국 대통령부'로 부르지는 않는다. 단, 외국의 같은 격(格)에 해당하는 기관 또는 청사는 '궁' 또는 '부'를 붙여서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따로 이름이 없는 외국의 지도자 청사를 언론이나 방송에서 소개할 때 한국어로 '○○국 대통령궁'으로 칭하기도 한다.

  • 대만에서는 '青瓦臺', 중국일본에서는 '青瓦台'로 표기한다. 다만 이는 청와대라고 지칭할 일이 있을 때뿐으로, 언론에서는 "한국 대통령부"(중화권) 혹은 "한국 대통령 관저"(일본)로 표기하는 편이다. 특히 NHK에서 대통령 취임식 카 퍼레이드를 생중계할 때는 한국 대통령 관저 중계라고 자막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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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남도 합천군 정원테마파크에 68% 규모로 축소해서 건설된 청와대 본관 세트장이 있다. 겉모습만 만든 게 아니라 내부 구조도 실제 청와대 본관의 방 배치와 똑같이 만들어서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할 수도 있는 등 합천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영화 강철비에서 청와대 외부 장면 촬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2년 5월 10일에 청와대가 개방되고 집무실이 서울특별시 용산구로 이전하면서 꿩 대신 닭이 되어버렸다. 향후 메이저 작품도 서울에서 접근성이 높은 청와대에서 촬영이 예정되있다 보니 합천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게 된 셈. 그래도 합천영상테마파크 세트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 청와대 근처에서 비행 물체를 띄우면 군인과 경찰들이 뛰어와 말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62] 사실 말리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일정 고도를 넘어가면 수방사 제1방공여단 및 모 극비 방공부대가 즉시 격추하도록 되어 있다. 띄운 사람은 당연히 철컹철컹.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이 북촌한옥마을에서 드론으로 한옥마을 사진을 찍으려다 적발되어 대통령 경호처 경호원들과 경찰, 군인이 출동한 적도 있었다.


  • 1995년 개설 당시 홈페이지 주소는 'www.bluehouse.go.kr'이었으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뒤 공식 주소가 'www.cwd.go.kr'로 바뀌었다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의 주소인 'www.president.go.kr'이 공식 주소가 되었다.



파일:external/db.kookje.co.kr/20130625.99002144931i2.jpg

  • 청와대 홈페이지 서버 다운 알림창이 매우 고급스럽다. 사진은 2013년 청와대 홈페이지가 해킹으로 서버가 내려졌을 때 모습.

  • 2016년, 북한이 청와대를 본뜬 모형 건물을 만들어서 타격 훈련을 하기도 했다. # 이후 부서진 채로 있다가 2020년에 다시 만들어졌다. # 그리고 이 모형 건물을 중심으로 200m 정도의 원 표적을 새로 그렸는데, 원 표적은 포격 훈련 때 사용하는 것이다. 이외에는 7월에 무인도에 청와대 또는 국방부 청사를 축소시킨 모형 건물을 설치한 정황이 미국 정보 당국에 포착되었다. #

  • 청와대는 특별한 허가가 없으면 숙식은커녕 일반인(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1급 중요 경계 시설이지만, 2017년 3월 10일부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민간인이라도 청와대 시설 관리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처장의 승인이 있으면 숙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반인의 숙식 기간 또한 2017년 5월 시점으로는 별다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시설 관리자인 대통령의 승인만 있으면 이론상으로는 무제한 숙식도 가능하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10.26 사태가 일어난 후 두 동생들과 한동안 청와대에 있었고, 2017년에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일반인 자격으로 56시간 동안 체류하다가 여론의 비판으로 퇴거했다. 이는 이전 유고인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전 대통령의 하야 선언 이후 퇴거까지 걸린 46시간의 기록을 10시간 경신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이 청와대에서 거주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집사 역할을 한 김막업에 따르면 접견실에서 주로 머물뿐, 자고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철저히 혼자 있기를 원해서 내실에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한다.[63] 당시에 실제로 청와대에 거주했던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전추, 그리고 김막업 3명뿐이라고 한다. 윤전추는 당시 제2부속비서관실 행정관 신분으로, 김막업은 총무비서관실 계약직 신분으로 지내며 24시간 옆에서 상주했다고 한다. #

  • 현재의 청와대 공식 SNS 계정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다시 새로 만든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SNS 계정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인 2017년 3월 14일 아침을 기해 일제히 계정이 삭제되었다. 기존 청와대 SNS 계정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10년에 개설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 기관의 공식 계정은 물론, 그 시점까지 수시로 게재하면서 축적된 8년 간의 대통령 사이버 기록물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마치 사유물처럼 날려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비판을 의식한 모양인지 2017년 3월 25일 기점으로 다행히 공식 트위터는 복구되었으나, 정권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새로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졌다.

  • 문재인이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에 바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 '거울방' 때문이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거울방을 치운다고 입주를 미뤘다는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뉴스가 많이 나와 욕을 먹었으나, 이후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문제의 거울방은 러닝머신과 운동 기구들이 놓여있는 단순 피트니스 룸이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윤전추와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 2017년 8월 17일, 청와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추어 국민 소통 플랫폼으로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하였다. 플랫폼 활용과 컨텐츠 구성에 있어 비주얼적인 면이 보다 크게 강조되었으며, 기존 브리핑 코너를 확대 개편한 청와대 뉴스룸 메뉴와 더불어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 및 제공하는 효자동 사진관 및 국민 청원과 제안, 인재 추천[64], 토론이 가능한 국민소통광장 메뉴가 신설되었다.

  • 2020년 5월 5일, 평소라면 어린이날 행사가 진행되었겠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만나지 못하자 마인크래프트에서 맵으로 구현되었다. 폭파시키니까 바닥에 금괴가 나왔다고 해서 예전에 잠시 돌던 금괴 루머와 연관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후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해당 맵을 제작한 업체가 기초 공사를 금블럭으로 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마인크래프트/맵/도시 문서 참고. PC 버전 NE 버전

  • 윤석열 정부집무실 이전에 반대해온 민주당은 재집권하면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되돌릴 것이라고 송영길 전 대표가 공언하는 등의 정황으로 보아 추후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를 청와대로 다시 옮기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미 주요 시설을 해체하고 개방한 청와대를 원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65] 당초 집무실 이전 반대 여론의 주요한 이유로 엄중한 시기에 예산 및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점과 너무 급하게 이전을 밀어붙이는 것에 우려와 반감 때문이라는 응답이 여러 여론 조사에서 높게 나왔다. 그러나 그러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이미 개방을 해버렸는데, 굳이 또다시 원복하겠다고 하면 비슷한 이유의 반대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전면 개방 이후 많은 관람객들이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하루 관람객을 최대 4만 명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66]



8.1. 식단[편집]


한식, 중식, 일식, 양식 4명의 주방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식모 1명과 11명의 주방 인원을 거느리고 있었다.[67] 국가적인 행사나 외국 정상을 접대할 때 해당 국가 음식을 잘 하는 셰프를 외부에서 초청하기도 한다.

청와대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의 식단도 전시되어 있다. 역대 식단 MB 식단, 라면 에피소드 물론 상식적으로 매일 저 식단만 먹었을 리는 없고 대체로 이런 음식들을 좋아했다고만 생각하자.

  • 이승만은 미국 유학 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답게 양식을 좋아했다. 주요 식단이 피자, 햄버거, 치킨, 샌드위치, 와인, 카스텔라, 커피 등. 이는 본인의 선호도 있지만 같이 밥을 먹는 프란체스카 도너 영부인의 영향도 있었다. 한식 중에서는 타락죽현미떡국을 좋아했다고 한다.[68] 아침에 샌드위치나 토스트 한 조각으로 때우는 등 당시 기준으로는 소식, 서양식을 선호하였다.

  • 윤보선은 귀족적인 성격에 걸맞게 비교적 화려하게 먹었다.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 전골, 송이산적 등 궁중 식사 스타일로 매우 푸짐하게 먹었다. 다만 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특이하게도 부유한 유력 양반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쌀밥이 아닌 잡곡밥만을 먹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청빈해야 한다는 양반가다운 집안 가르침의 영향이었다. 이 금주와 잡곡밥이라는 건강한 식단을 그의 장수의 비결로 꼽는 사람이 많다.

  • 박정희는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의 습관이 들어있어 비교적 소박하게 먹었다. 편육, 순두부, 막걸리, 열무김치 정도에 불과했다. 경기가 어려우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하도 식탁이 볼품이 없어져서 아예 큰 접시에 뷔페마냥 여러 종류의 반찬을 담아서 내기도 했다고 한다. 가난했던 출신답게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았고 좋아했던 메뉴는 된장찌개비름나물 비빔밥이었다고 한다.[69] 비교적 마른 인상답게 식사량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술은 막걸리를 거의 매일 마실 정도로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몰래 청와대 밖 선술집에서 안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간 일화도 있을 정도. 음식은 군인 출신이기도 하고 시골에서 오래 산 경험이 있어 아무 것이나 잘 먹고 흔히 말하는 서민 음식들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부인이던 육영수의 사망 이후 양주 같은 독한 술을 마셨으나, 10.26 사건 당시 술상도 일국의 대통령치곤 사치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편육, 인삼, 전복, 갈비 주로 마시던 양주도 평이한 양주인 시바스 리갈이 나왔다. #


  • 전두환은 강골의 군인 출신답게 육식과 음주를 좋아했다. 불고기, 편육, 육회, 생선회, 조개구이, 떡갈비, 청주고기 위주의 식단이었고 칼칼하고 자극적인 메뉴를 좋아했으며 동동주, 양주 등 술도 종류별로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70] 육식과 음주를 즐기는 좋지 않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90대까지 나름 장수했다.

  • 노태우는 전두환과 식단은 비슷하지만 스케일이 더 작았다. 갈비구이, 생선튀김, 두부조림, 복분자주, 맥주 정도다. 나물류도 좋아해서 전두환보다는 밸런스가 맞게 먹었던 것 같다. 그 외에 몸이 좀 안 좋다 싶을 때 보양식 삼아 고향 음식인 갱시기를 찾았다고 한다. 노태우도 군인 출신이니 크게 가리는 건 없었다고 한다.

  • 김영삼은 전두환 못지않게 잘 먹었다. 그를 상징했던 칼국수를 비롯하여 양갈비구이, 설렁탕, 랍스터, 야채 샐러드, 전복죽, 와인 등이 포진되어 있다. 바닷가 출신답게 해산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해산물이 들어간 미역국[71] 많이 먹었다. 앞서 서술했지만 칼국수 또한 엄청 찾았다고 한다.[72] 청와대 요리사 이근배 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면을 좋아하셨지만 3~4년 동안 계속 면을 드실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죠라고 말하기도했다. 그야말로 칼국수 매니아. #

  • 김대중출신지의 명물인 홍어 삼합을 비롯해 우거지갈비탕, 된장찌개, 해물전골, 매운탕, 냉면 등 주로 국물 음식을 즐겼다. 김영삼처럼 바닷가 출신답게 해산물을 좋아했으며 특히 대게와 새우를 즐겼다. 그 외엔 중국 음식인 탕수육, 짜장면, 짬뽕 등을 좋아하여 그가 취임하면서 청와대에 중식 쉐프가 추가 영입되었다.[73] 아침 식사가 끝나고 간식으로 등을 즐겨먹기도 했고 밤에 간식으로 컵라면도 즐겨먹곤 했다고 하는데, 당시 고령이었음을 생각하면 옛날 사람인 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대식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흑산도산과 칠레산 홍어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미식가이기도 했다고 한다. 전직 청와대 조리부에서 근무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미식가였다는 이야기를 꼽는다.

  • 노무현은 서민적인 소박한 식단을 선호해 대체로 박정희와 비슷했다. 삼계탕, 해물탕, 강냉이, 군고구마[74] 등이 포함되어 있다. 주로 고향 경상도 음식을 좋아했으며 주된 식사는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나물 등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담백한 맛을 선호했던 것 같다.[75] 노무현 하면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어서 술도 즐겼을 것 같지만, 재임 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만찬시 건배용 술 정도 빼면 식탁에는 술이 올라오지 않았다. 본래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재임 중에는 술을 끊었던 것. 우리가 아는 막걸리 사발을 든 노무현의 이미지는 퇴임 후 좋아하던 술을 마음껏 마시면서 생긴 것이다. 식사시간 외에 따로 간식으로 주전부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래에 쓰여진 라면 에피소드 등. 그 외에는 아무리 맛있게 먹은 반찬이라도 빈 반찬 그릇은 리필을 못하게 했다. 더 갖다 주면 남기게 되고 결국 버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식사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 평범하게 먹었던 듯. 그래도 식사 외에 라면 등[76] 주전부리를 자주 했다는 걸로 보아 넉넉한 인상답게 소식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 이명박은 이승만과 비슷했지만 건설회사 CEO 출신답게 더 잘 먹었고 가리는 것도 거의 없었다. 이승만과 비슷한 호리호리한 체격에도 식사량도 상당했다. 먹방의 대표 주자답게 그를 상징했던 국밥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미국 음식인 피자, 햄버거, 치킨 등의 메뉴와 샌드위치, 바게트, 나물, 냉면, 배추김치 등도 좋아했고 그냥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해외에 나가서도 굳이 한국 음식을 찾지 않고 현지식으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식사량도 대식가답게 많이 먹는 편이었다고 한다. 다만 잡곡밥만큼은 먹지 않고 흰 쌀밥을 고집했는데, 즐겨찾는 특식도 흰쌀밥에 날계란과 간장을 뿌린 간장계란밥이었다. 주변인들은 쌀밥을 마음껏 먹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렇지 않겠냐는 추측을 한다고 한다.[77] 그 외에 냉면처럼 원래 차게 먹는 음식을 제외하면 찬 음식, 미지근한 음식도 좋아하지 않아서 음식을 굉장히 뜨겁게 먹는데, 후식으로 나오는 커피도 한 번 더 데워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건강에 별로 좋은 식습관은 아니지만, 이 역시 어린 시절 먹고 남은 찬 음식을 자주 먹던 것에 한이 맺혀서 그렇다. 또한 기업인 출신답게 이곳저곳 출장을 많이 다니며 식사를 많이 해서 맛집을 잘 알고 있어 맛집에 가장 싸인이 많은 전직 대통령으로도 손꼽힌다. 대부분은 서울시장 시절 남긴 것들이다. 다만 특이하게도 청와대에서 라면을 먹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명박의 먹방 관련 내용을 보면 라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청와대 입성 전에도 라면을 먹지 않은 듯하다.[78]

  • 박근혜는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청와대 식단을 먹었으나, 자신의 기준에서 특별한 날에는 만찬을 즐겼다.[79] 요리연구가 김막업이 음식을 전담했다.[80] 아침에는 윌 요구르트, 대관령 우유, 견과류, 흑임자 죽, 원두커피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전날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면 박근혜가 다음 날 아침으로 TV를 보면서 혼자 먹는다고 한다. 밀가루 음식은 입에 절대 대지 않고 국물 요리는 거의 즐기지 않으며 식사량은 굉장히 적게 먹는 편이었다고 한다. 단, 싫어하는 음식 부분을 보듯 본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음식을 꽤 가리는 편인 듯하다.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에서 라면을 먹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81]

  • 문재인은 담당 셰프가 해주는 음식보다는 종종 여민2관 직원 식당에서 식권으로 참모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주로 식사를 했고 해외순방 중일 경우 현지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지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조달해서 먹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긴급 회의가 있거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오찬 및 만찬 자리를 갖는 특수한 경우. 선호하는 음식은 거제도 출신답게 생선회해산물 종류이다. 그 외에 청국장 집에서 식사를 했다는 에피소드 등으로 봐서 전임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저씨 입맛으로 보인다.

  • 경호상 이유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이 음식을 직접 요리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는 주말마다 요리사들도 조금 쉬어야 한다고 직접 라면을 끓였지만 본인이 편히 끓여먹을 수 없어서 운영관에게 라면을 끓이게 하고 반 개씩 나눠서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 구내 직원식당도 잘 되어있다. 1990년대 초반에도 화려한 뷔페식 식단인 것은 물론, 식판이 아니라 개인용 접시와 찌개 냄비가 1인당 1개씩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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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A B C D 2022년 5월 10일부로 대통령실로 이전했다.[1] 2022년 5월 10일 기능이 해제되었고, 동년 11월 7일부로 현재의 대통령 관저로 이전했다.[2] 과거에는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운영했었다.[3] 미국의 대통령 관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기구들을 통틀어 백악관이라 표현하는 것과 같다.[4] 개방 초기에는 청 대신에 대통령실의 대를 넣어 라는 표현을 썼으나, 현재는 대를 빼 당정이라고만 한다.[5] 1, 2, 1948년 정부 수립 직전 대통령의 관저가 '景武臺(경무대)'로 결정되었다는 신문기사[6] 콘센트를 부수라 지시했다는 말도 있다. 이승만/평가에는 조선총독부라고 적혀있으나, 경무대가 맞다.[7]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저택으로 내부가 당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임시수도 관련 문서,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부터 이곳까지 임시수도 기념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박물관)와도 가깝다.[8] 1917년생.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나 일본 릿쿄대학 졸업 후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였고, 광복 후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국장으로 활동했다. 절대 이 분이 아니다.[9] 황색은 황제의 색이기도 하다. 말인즉 대통령을 전제군주처럼 보는 시선이 남아있었다는 것.[10] 당시 로마자 표기는 Chong Wa Dae였고 추후 'Cheong Wa Dae'로 바뀌었다.[11] 공교롭게도 본인이 진두지휘한 본관을 20년뒤에 직접 입주하게 된다.[12] 여기에서의 복지는 복지국가할 때의 복지(福祉)가 아닌 '복스러운 땅', 즉 좋은 땅이라는 의미의 복지(福地)이다.[13] 해당 통신망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글들 중 일부는 <우째 편지가 이리 많노>라는 책으로 엮어져 출판되었다.[14] 단, 카카오맵·네이버 지도에서 지적편집도를 켜면 제1종 주거 지역이라고 나온다.[15] 위성 사진으로 찾아보려 해도 절대 찾을 수 없는 이유가 그냥 청와대를 으로 바꿔놨었으며, 화질을 흐리게까지 해놨었다.[16] 이것은 맵퀘스트나 얀덱스 지도도 마찬가지. 대한민국 Google 지도는 위성 지도일 때 확대하면 일정 부분에서 저화질인 상태로 유지되지만, 해외 Google 지도그런 거 없다.[17]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벽에 역대 영부인의 사진이 걸려있다.[18] 간담회나 소규모 만찬장으로 사용된다.[19] 대규모 인원의 수여식이 열린다.[20] 국무회의가 열린다. 세종실 전실에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있다.[21] 정상회담장.[22] 예산 사용에 대한 부담감 혹은 공사 기간 동안 청와대 밖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등.[23] 출처: 도서 "우리시대의 궁궐 청와대", 백승철 지음.[24] 실제 중국 황제의 경우 11칸 정전에 잡상 11개를 올려 건축했다. (자금성 태화전)[25] 과거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에는 잡상 9개로 세어지나, 현재는 7개가 올려져 있다. 확인[26]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영빈관 신축을 검토했으나, 비용 문제 등 반대 의견으로 인해 청와대 영빈관을 재사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청와대 개방 이후에도 행사가 없을때, 영빈관 내부는 1층만 관람 가능하다.[27] 원래 정부에서 운영하던 시설이었으나, 삼성에 불하되어 지금의 신라호텔이 되었다.[28] 집사 노릇을 했던 김막업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기서 업무를 주로 봤으며, 입구엔 팩스 기기가 있다고 한다.[29] 운동기구가 있다고 한다.[30] 6인용 식탁과 TV, 전자렌지, 커피메이커 등 간단한 조리기구만 있다고 한다.[31]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기서 기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32] 정씨 자매가 올림머리를 해주는 공간이라고 한다. 1인용 침대가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종종 여기서 치료를 받았다.[33] 처음엔 출퇴근을 하다가 나중엔 아예 거주했다. 당시 제2부속비서관실 행정관 신분.[34] 요리연구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총무비서관실 계약직 신분.[35] 최순실이 주로 머물던 공간으로, 8인용 탁자와 6인용 식탁 등이 있었다고 한다.[36] 한겨레신문이 만든 이미지 때문에 영빈관 서쪽 건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KBS에서 확인해 주었다.[37] 대통령이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38]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NH농협은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9] 물론 예외는 있으며,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으로부터 받은 송이버섯 선물은 실향민에게 전달되었다.사실 송이버섯은 음식물이라 전시하면 여러 문제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날로 먹기에도 애매한지라 그렇게 한 듯. 물론 이 경우에도 언론이나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해당 선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해당 선물에 관한 최종 수령인의 개인정보가 누설되지 않는 선에서 상세히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40] 북한에서도 용도가 비슷한 국제친선전람관이라는 건물이 있다.[41] 2013년 2월 25일까지 무상 사용 기간이었으며, 그 이후 유상계약으로 바꾸면서 세종시로 이전하여 빈 건물이 된 국세청 남대문별관 부지와 교환이 이루어졌다.[42] 대통령이 바깥에 나와있을 경우 지극히 운이 좋으면 우연하게 만나는 일이 이론적으로야 가능하기는 한데, 안내원조차 수년 동안 많은 횟수의 관람을 지도하면서도 몇 번 마주치기 힘들다고 한다. 관람을 다녀온 어느 사람의 블로그 포스트에 따르면 자신을 인솔한 안내원은 2년째 근무하면서 딱 한 번 만나 인사를 나눴다고.[43] 박정희가 즉석에서 수학 문제를 낸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래 군인을 하기 전에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였기 때문.[44] 그런데 대한제국 시기에 그냥 돌로 만든 궁전(...)이라는 의미의 '석조전(石造殿)'도 세워진 것을 보면 이것도 좀 애매하긴 하다.[45] 약 25㏊(253,504㎡)에 이르는 청와대 터는 미국의 백악관(7.3㏊)보다 3.5배가 더 크고 중국의 중남해(3㏊)보다 2.5배가 더 크다.[46] 경복궁 자체는 많은 관람객이 찾는 시설이지만, 경복궁은 꽤 넓고 일반 관람객은 남쪽 정문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청와대와 맞닿은 경복궁 북쪽 담장은 경복궁에서 가장 외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47] 조선시대에는 귀신과 혼들이 노니는 음기가 강한 곳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48]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로비스트 데보라 심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49] 이전에 사용하던 주석궁은 지하철 광명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50] 천도 전 사용하던 총리 집무실은 양곤순환선 양곤 중앙역에서 1㎞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51] 고급 가구와 미술품이 즐비한 백악관이나 진짜로 왕가의 궁전이었던 크렘린과 엘리제 궁전 등 청와대보다 넓거나 호화로운 정부 수반 관저는 널렸으나, 청와대는 현대 건축인데도 효율 문제가 있었다. 1997년 2월 4일에 지어진 독일 베를린 연방총리청 같은 경우는 집무실과 비서실이 15걸음 거리에 있을 정도로 부서 간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52] 서울대한민국수도라는 사실이 관습헌법이라고 선언하여, 수도 기능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은 이전할 수 없으며, 수도 이전을 하려면 개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53] 현재는 국회세종의사당이 확정되어 공사 중이다.[54] 집무실 이전지 후보로는 정부서울청사, 서울지방경찰청,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이 있다.[55] 일본 수상관저도 나가타초 빌딩숲 속에 있지만, 수상관저를 신축하면서(2002년에 완공) 경호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상당히 면밀한 설계를 거쳤다.[56] 1398~1405년 태종 이전 조선 초기의 양경 체제와(사실상 임시 복귀기간을 제외하면 수도는 한양이였다.) 일시적인 개성 복귀로 인한 개성부, 1592~1593년 임진왜란으로 인한 임시 수도 의주부, 1950~1953년 6.25 전쟁으로 인한 임시 수도 경상남도 부산시[57] 용산은 조선시대에도 한양에 속해있었지만, 도성 밖 10리 지역에 해당하는 성저십리 지역이었다.[58] 현재 삭제됨.[59] 효자동 삼거리 밑에 청와대 정류장이 있으며, 서울 버스 01만 운행 중이다. 예전에 서울 버스 8000도 운행했으나 폐선되었다.[60]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61] 물론 프랑스는 진짜 왕들이 쓰던 궁궐을 사용 중인 것이다.[62] 청와대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63] 평소 밤 9시가 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독립 공간 사이에 설치된 유리문을 잠근다고 한다.[64] 이렇게 선발된 인원들은 별도로 분류하여 정부 드림팀이라 부른다.[65]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개방하고 있고, 포털 사이트 지도상에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 전에는 국가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아예 빠졌다.[66] 2022년 5월 27일 기준.[67] 직원 식당 요리사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직 대통령 및 배우자의 식단만 챙긴다.[68] 김구이승만과 정반대로 중국 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답게 주 식사가 중화 요리였다고 한다. 주요 식단이 탕수육, 백주, 월병이다.[69] 위에 서술한 대로 가난하기도 했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즐겨먹었다고 한다.[70] 상식적으로 육식만 했을 리는 없고 당연히 채소류와 나름 균형을 맞췄다. 그럼에도 본인이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듯.[71] 경상도식 미역국은 가자미 등 어류를 고기 대신 넣고 끓이기도 한다.[72]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멸치 사업을 많이 해서 멸치칼국수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나, 특이하게도 칼국수는 멸치 기반 육수가 아니라 서울식 육고기 기반의 육수를 사용한 칼국수를 좋아했다고 한다.[73] 이때 영입된 쉐프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던 천상현 전 총괄 쉐프다. 청와대에 오기 전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일했던 그는 김대중 대통령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21년간 대통령 5명의 식사를 책임졌다고 한다.[74] 이건 노무현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기도 한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먹을 게 고구마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고구마를 실컷 먹고 싶어했는데 이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75] 소고기국밥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청와대에서 찾았던 게 아니라 퇴임 후 봉하마을에 있는 동네 식당에서 자주 찾던 것이었다. 서거 후 해당 메뉴는 대표 음식이 되었다.[76] 일주일에 5번이나 먹은 적이 있을 만큼 자주 먹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봉지라면에 콩나물계란을 넣은 해장라면 느낌의 옛날식 라면을 즐겼다. 가끔씩 직접 끓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77] 지금에 와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 가운데는 이명박과 같은 이유에서 잡곡밥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다.[78] 아마도 잡곡밥을 안먹는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으로 추측된다.[79] 구치소 음식을 입에 안 맞아 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에는 실은 줄곧 호화 식단만 먹어온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는데, 구치소 식단은 연도별로 차이는 있지만 1끼 예산이 2,000원이 채 안 되는 저질 밥이라서 꼭 평소에 호화 식단을 먹어오지 않았더라도 입에 맞는 게 이상한(...) 만큼 억지에 가깝다.[80] 2000년부터 인연을 맺어, 이후 종종 만찬을 해줬고, 대선 당일 저녁도 맡았다고 한다. 청와대에 함께 들어가서 구속 직전까지 함께 살며 밥을 해줬다고 한다.[81] 밀가루, 국물 있는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다.